런던으로 가신다고요?

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할 그림_두 번째 이야기

by 사이


굳이 그림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가는 도시에 있는 유명한 미술관을 그냥 지나치자니 괜히 찝찝합니다. 막상 들어가도 아는 그림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까지 하면서 다니기엔 먹고 마시고 사진 찍을 시간도 부족하죠. 그런 당신을 위해 제가 대신 공부했어요. 이왕 가는 미술관, 그냥 가긴 그러니까 알고 가자고요. 이 글을 읽는 5분이면 당신의 런던 여행이 조금 더 즐거워질 거예요.

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편>부터 보기

https://brunch.co.kr/@dontjust/7



북관 바로크 시대 (1600-1700)


6. "칼 맞은 비너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이 그림은 1651년 스페인에서 그려진 최초의 누드화입니다. 주변 국가들에 비해 훨씬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에서 여인의 나체를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어요. 그래서 스페인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애인 플라미나아 트리바를 신화 속 미의 여신인 비너스로 그렸습니다. 심지어 뒷모습으로요.


이마저도 조금 불안했는지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를 그려 넣어 "나 여신 그린 거야^^ 여자 사람 아니야!"를 한번 더 강조했습니다. 쫄릴만도 했던 것이 150년쯤 뒤 프란시스코 고야는 인간 여자의 나체를 그렸다는 이유로 궁정화가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종교재판에 회부되거든요. 19세기에 이 정도였으니 당시에는 얼마나 더 엄격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그림 속 비너스는 침대에 누워서 아들 에로스가 든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희고 부드러운 살결, 가녀린 몸매를 따라가다 보면 여자인 저조차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모습과 얼굴을 상상하게 되죠. 마침 거울 속에 그녀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데 거울 속 비너스는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어요. 스스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에게 감탄하는 관람객들의 시선에 도취된 겁니다. 짝사랑하던 누군가를 훔쳐보다 딱 걸린 것처럼 머쓱해져 태연하게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려는데 비너스 등에 웬 흉터가 있습니다.

때는 1914년, 영국 정부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도자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구속하겠다고 발표하자 그녀의 지지자였던 메리 리처드슨은 식칼을 들고 내셔널 갤러리로 들어가 비너스를 난도질합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미술관을 나와 말하죠.

나는 살아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 팽크허스트를 파괴한 정부에 대한 항의로
신화 속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 비너스를 파괴했다.


메리는 구속되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고,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사망한 1928년에는 모든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가 생겼어요. 다행히 <거울을 보는 비너스>도 등에 희미한 상처를 남기고 거의 완벽하게 복원되었습니다.




7.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feat. 이상민)"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자화상>

여기 비너스처럼 상처를 지닌 또 다른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답게 빛과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렘브란트는 일찍이 초상화가로 성공했습니다. 초상화 연습을 위해 자신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고, 평생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겼. 이 작품은 그가 죽던 해인 1669년에 그려진 마지막 자화상입니다. 성공한 화가의 표정 치고 어딘가 쓸쓸해 보이지 않나요?

렘브란트의 자화상 1669년 작

렘브란트는 제분소 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20대에 이미 능력을 인정받아 명문가 출신 아내와 결혼했고, 그림 주문도 끝없이 몰려들었어요. 마침 네덜란드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한창 성장하고 있던 때라 돈도 많이 벌었죠.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 그렸던 자화상을 보면 사회적 지위, 명예, 부를 모두 가진 자의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1640년 작(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공과 함께 자신만의 예술관이 뚜렷해지면서, 그림 주문자와 충돌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돈을 받았으면 원하는 대로 그려줘야지 왜 니 맘대로 그리냐 이겁니다. 그림 주문은 점차 줄어들지만 한번 커진 씀씀이는 계속 커져만 갔습니다. 이 와중에 사랑스러운 아내 사스키아마저 아이를 낳고 사망하면서 렘브란트의 삶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죠.


자택은 경매로 넘어가고, 전재산이 몰수당하자 렘브란트는 어린 아들과 함께 빈민가로 쫓겨갑니다. 자신만의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긴 했지만 아들마저 먼저 세상을 뜨면서 렘브란트는 정말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1년 후, 렘브란트는 화구 몇 점만 남기고 쓸쓸히 죽습니다.


훗날 렘브란트가 빈민촌에서 고독에 맞서며 그렸던 <유대인 신부>, <돌아온 탕자>는 엄청나게 유명해지고, 네덜란드 정부는 부랴부랴 렘브란트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팔아치웠던 120여 점의 작품들을 구매해 렘브란트가 살았던 집에 전시합니다. 렘브란트는 결국 삶의 영광도 고독도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았던 걸까요? 마지막 자화상 속 모든 것을 잃은 렘브란트는 희미하게 웃고 있습니다.




동관 로코코~ 후기 인상주의(1700-1930)


8. "소녀는 죄가 없다."
폴 들라로슈 <제인 그레이의 처형>


앞서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을 볼 때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영국 왕 헨리 8세는 엄청난 바람둥이였습니다. 왕비를 여섯 번 갈아치운 걸로 모자라 그중 2명은 바람을 피웠다며 목을 쳤죠. 헨리 8세는 죽는 날까지 제멋대로 잘살았고, 세 번째 왕비가 낳은 유일한 10살짜리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에드워드 6세는 병약하여 16살의 나이에 죽고 맙니다.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헨리 8세는 이혼한답시고 종교를 가톨릭에서 영공 성공회로 바꾸었습니다.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 아들 역시 성공회 지지자였죠. 하지만 이제 유일한 아들은 죽었고, 다음 왕위 계승자는 첫 번째 부인의 딸 메리입니다. 엄마가 독실한 가톨릭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공회에서 이혼을 용인해 엄마가 쫓겨났습니다. 당연히 메리는 성공회를 아주 아주 싫어하는 급진적 가톨릭으로 자랐습니다.


에드워드 6세가 죽자 신하들 사이에서 난리가 납니다. 우리가 지금 다 같이 헨리 8세를 따라 영국을 성공회 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한 놈들인데 메리가 여왕이 된다면?... 큰일 났다. 빨리 다른 사람을 찾아 왕위에 앉히자. "안 그러면 우린 다 죽는다."

그렇게 왕위에 앉게 된 사람이 바로 제인 그레이입니다. 제인 그레이는 헨리 8세의 먼 친척이었습니다. 16살 어린 소녀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의 부모는 대단한 야심가였습니다. 억지로 딸을 왕비로 만들었죠. 하지만 9일 뒤 메리가 군대를 일으켜 메리 1세로 등극하고 제인은 런던탑에 갇히고 맙니다.


메리는 제인에겐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죠. 하지만 어린 소녀는 이제 더 이상 어른들의 싸움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메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폴 들로라슈는 1554년 2월 12일 제인이 처형당하기 직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죄 없는 열여섯 소녀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더듬더듬 목을 둘 단두대를 찾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가톨릭 신부가 도와주고 있네요. 뒤쪽에는 제인의 보모가 망연자실하게 먼 산을 바라보고 있고, 하녀는 차마 보지 못하고 벽으로 돌아섰습니다. 사형 집행인마저도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도 마음이 아파 더 이상은 못 보겠어요.




9. "영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그림"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호>

쾌쾌한 연기를 내뿜는 증기선에 힘없이 끌려오는 허연 배는 테메레르호입니다. 테메레르호는 나폴레옹이 스페인과 연합하여 영국으로 쳐들어왔을 때,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전함입니다. 그럼 영국의 거북선인거냐? 하면 그건 아니고 영국의 거북선 격인 빅토리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빅토리호와 영국의 이순신이라고 불리는 넬슨 제독을 구하러 달려간 '신에게 남은 12척의 배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트라팔가 해전 당시 영국에는 27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트라팔가 전투에서 대승한 영국은 제해권 굳히기에 들어갔고,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을 포기하는 대신 영국과의 교역을 금지하는 대륙 봉쇄령을 내리게 되죠. 영국과의 무역 규모가 상당했던 러시아가 여기에 반발하자 나폴레옹은 무리해서 러시아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이 좌절되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그림은 30여 년 뒤 낡아버린 테메레르호가 퇴역하여 해체장으로 가는 장면입니다. 한 때 국가의 영웅이었던 전함이 붉은 석양을 뒤로한 채 예인되는 모습이 영국인들의 마음을 울렸는지 BBC 조사에서 '영국이 소장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그림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순간을 그린 윌리엄 터너는 여전히 영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하늘을 따라 붉게 물든 바다가 조금 뒤면 짙푸른 어둠에 뒤덮일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빛에 따라 변하는 색채와 희미한 윤곽선의 사용이 어쩐지 인상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네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실제로 젊은 시절 잠시 영국에 머물렀던 프랑스 화가 모네는 터너의 작품에서 날씨와 풍경, 빛과 색채를 표현하는 법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국뽕 맞은 일부 영국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군요. "인상주의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클로드 모네 <웨스트민스터 하구에서 본 템스 강> (내셔널 갤러리 소장)




10. "진실은 언제나 익숙한 곳에"
존 컨스터블 <건초 수레>

존 컨스터블은 윌리엄 터너와 함께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두 사람은 한 살 터울로 동시대를 살았고, 자연을 그린 풍경화가지만 작업 스타일도 삶도 상당히 달랐습니다. 터너가 자연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에 집중하여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전체적인 느낌과 순간의 색채에 집중했다면, 컨스터블은 익숙한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변하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행을 자주 다니며 독특한 풍경과 극적인 자연의 모습을 찾아다녔던 터너는 일찍이 영국에서 성공하여 왕립 아카데미 원장까지 지낸 반면, 평생 영국에만 살면서 소박하고 진실한 고향의 풍경을 화폭에 담은 컨스터블은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는 프랑스 살롱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외젠 들라크루아와 바르비종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치죠.


바르비종파는 파리 근교 바르비종 지역에서 활동한 프랑스의 풍경화가들을 말합니다. <만종>으로 유명한 밀레가 대표적인 바르비종파 화가입니다. 이 당시에는 풍경화라도 실내에서 그리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컨스터블은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커다란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갔고,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연한 갈색으로 칠하던 나무를 처음으로 초록색으로 칠해버립니다.


바르비종파도 컨스터블을 따라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인상파 화가들도 아뜰리에에서 나와 쏟아지는 빛 아래 달라지는 색채를 보며 작업합니다. 결국 상당히 달랐던 터너와 컨스터블은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그동안 비주류로 취급되던 풍경화의 자리매김과 인상주의의 탄생에 일조한 거죠.

요즘 서울 공기가 너무 나빠져서 피부도 뒤집어지고, 마음도 울적해진 저는 이분이 초록색을 발견해주신 게 그렇게 고맙습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평생 미세먼지 가득 낀 것 같은 누런 갈색 풍경화만 보고 살았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벌써 갑갑해요. 동네 돈가스 집에나 걸려 있을 법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거 취소할게요. 달그락거리며 지나가는 수레를 보고 차마 뛰어들지는 못하고 물가를 맴도는 점박이 강아지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곳에 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
41번 방부터 44번 방


그림을 보지 않아도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알게 될 거예요. 19세기의 끝, 인상주의의 방에 도착했다는 것을. 내셔널 갤러리에는 마네부터,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쇠라, 반 고흐, 고갱 등 인상주의의 시작부터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까지 정말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에두아르 마네 <막시밀리안의 처형>, 르누아르 <극장에서>

앞서 이야기한 작품들만큼이나 훌륭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많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1. 미술사조를 대표하는그림, 2.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봤을 때 감동이 크게 달라지는 그림, 3. 영국 런던에서 만났을 때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그림을 기준으로 작품 10점을 선정했어요.

조르주 쇠라 <아스니에르의 물놀이>,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폴 세잔 <목욕하는 사람들>

인상주의 그림은 미술 하나도 몰라도 너무 좋을뿐더러 파리에서 시작되었으니 나중에 오르세 미술관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때 한번 자세히 해볼게요. 그럼 다들 가볍고 즐거운 내셔널 갤러리 나들이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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