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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의 계엄령, 3시간 천하로 끝난 이유는?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서 #1 :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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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4. 2024
지난 12월 3일 밤 11시경,
잠을 청하던 내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응? 누가 뭘 했다고?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접하고 영화 속에서나 봤던, 그 계엄령?
모든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전혀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뉴스 속보로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건 현실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였다.
처음에는 혹시 북한이 군사행동을 한건 아닐까 우려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아래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긴급 브리핑의 일부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 이후에 전혀 유례없던 상황입니다.
...
이는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
친해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저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명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출처 : 대통령실
야당의 탄핵 추진과 예산 폭거가 반국가행위라고 했다가,
갑자기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지킨다고 했다가,
극우 유튜브 썸네일에 나올 법한 단어들이
대통령의 입에서 실시간으로 흘러나왔다.
참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약 1시간 후 계엄사령관으로 육군참모총장 박안수 대장이 임명되고
다음의 계엄 포고령을 선포했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2024.12.3.(화)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
출처 : JTBC 뉴스
잠시 후 군용 헬기와 장갑차가 국회로 모이고 있다는 속보와 함께
몇 번의 헬기 지나가는 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여의도 부근, 특히 꼭대기층에 살고 있어 더 크게 들렸다.
휴,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네 하고 체념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곧이어 사상 초유의 무장병력의 국회 진입 사태로 이어졌다.
국회 본청 앞에서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몇 안 되는 보좌진들과 일부 취재진들만으로
완전무장한 공수부대 군인들을 막을 수 있을 리가.
결국 유리창까지 깨고 본청 안으로 진입하는
모든 과정을
실시간 뉴스 중계로 지켜보면서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게 정말 현실이 맞나, 2024년의 대한민국이 맞나,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다행히도,
통제를 뚫고 담장을 넘어 국회 본회의실로 진입한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에 만장일치로 의결하였고
헌법상 해제 의무에 따른 대통령실의 계엄령 해제 선언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대통령실에서 국회 의결 이후 계엄령을 해제하기에 앞서
국회의 해제 요구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었다는 기사도 있던데
참,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쭉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과거 군부독재 시대와는 계엄 이후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책에서, 그리고 영화에서 그동안 봐왔던 계엄 이후의 모습은
무장군인들이 최루탄을 터뜨리고 시민들에게 총탄을 퍼붓고
군용 헬기와 전차를 동원해서 시위대를 무참히 짓밟는 등
정말 비참하고 잔인했다.
이번에도 무장군인들이 소총을 지닌 채 민간인과 대치했고,
잠깐이지만 국회 복도에 가스가 퍼졌다. (다행히 보좌진들이 던진 소화기였다.)
도심 한복판에 군용 헬기와 전차가 나타나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원들인 만큼
충분히 더 강하게 밀고 들어가서 진작에 의결을 방해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고 최대한 충돌을 피하려고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상부의 지시에는 따라야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들도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순간 많은 갈등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서울신문
계엄 해제 직후 철수하는 군인들의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한 언론사의 허재현 기자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늘 항의하러 국회 앞으로 몰려온 시민들에게 허리 숙여 “죄송합니다” 말해주고 간
이름 없는 한 계엄군인이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너무나 반듯하게 생긴 그 계엄군 청년.
...
쫓아오는 저에게 한번, 두 번, 세 번 거듭 절을 하며 “죄송합니다” 말하던 그 짧은 순간,
당신의 진심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같은 편’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 진심을요.
제가 당신의 인사를 받은 한 시민이자 취재 기자였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새벽을 지켜준 당신의 한 마디를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군복무 마치고 건강한 청년으로 우리 사회에 돌아와 주십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허재현 드림
나도 육군병장으로 전역한 사람으로서 저 청년의 '죄송합니다'
한 마디가 정말 고맙다.
한편으로는 혼자 감당하기
너무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갈 것 같아 안쓰럽다.
부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또 하나,
이번 계엄은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공유했다는 점도 특별하다.
과거에는 타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도록 통제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SNS의 시대, 라이브의 시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시민들은 국회로 모여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면서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빠르게 전파되었고,
나도 방에 누워서 뉴스 중계와 SNS의 사진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회 내부의 모습도 여러 의원들의 유튜브를 통해 송출되었고,
이재명 대표가 담을 넘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은 2백만 명 넘게 시청했다고 한다.
아마 대통령실과 계엄사령부도 전 국민에 대한 압박을 적잖이 느꼈을 텐데,
과거와 다르게 평화롭게 상황이 종결될 수 있었던 아주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상계엄 선포라는 헤드라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이제는 강력한 군병력 통제도, 완전한 언론 통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대가 바뀌었고, 시민의식은 강해졌으며,
민주주의는 절대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3시간 천하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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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하기에 글 만한 게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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