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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투표하지 않는 이들에게 투표받을 권리는 없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서 #2 : 대체 정치를 왜 하는 겁니까

by 지원

지난 12월 3일 밤,

모두를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아직 그때의 충격이 다 가시지도 않은

12월 7일 밤,

또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글을 쓴다.



출처 : 연합뉴스


여야를 막론한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지난 4일 새벽 보기 드문 만장일치 표결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통과시켰고


이튿날 야당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

5일 본회의 보고 후 7일 국회 본회의를 열었다.


탄핵소추안의 경우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투표하여야

개표를 진행할 수 있고,

동일하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하여야

가결되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된다.


재적 300명 중 범야권이 192명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민의힘에서 8명만 찬성해도 가결된다.


지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에도 찬성했고

한동훈 당대표 등 일부가 탄핵을 지지했기 때문에

탄핵소추안 가결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탄핵소추안 표결은 끝내 성립되지 못했다.


출석 의원 수 3분의 2 이상 찬성을 기준으로 하는

'김건희 특검법' 표결만 진행한 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투표 자체를 보이콧해버린 국민의힘.


이후 김예지, 김상욱 의원 등이 추가로 투표했지만

결국 정족수가 5명 부족해 개표조차 하지 못했다.


불과 사흘 전, 비상계엄을 신속히 해제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것이 무색하게

그들은 국민의 대표자 자격을 스스로 저버렸다.


탄핵소추안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것과 별개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 그 자체로.



출처 :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 중 유일하게 계속 자리를 지켰던

안철수 의원은 다음의 입장을 밝혔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입니다.

헌법과 국회법에 따르면,
당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소신에 따라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헌법기관으로서 충실하게 투표했습니다.


그가 어디에 투표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비상식적인 당론 대신 소신을 택한 이 모습은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하다.


추가 투표한 김예지, 김상욱 의원도 마찬가지다.

특히 김상욱 의원은 탄핵에는 반대했지만

국회의원으로서 책임을 다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고

당론에 따라 탄핵소추안은 반대했다는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들을 쏟아내고 있다.


나도 절실하게 대통령 탄핵을 기다리는 사람이라

김상욱 의원의 투표 결과를 듣고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최소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보다

아무리 부결이라도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럴 거면 왜 왔냐'라는 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탄핵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명제에 반대한다고

그 투표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굳이 왜 밝혔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직 정치 초보라 감정적 대응이 아니었나 싶다.)



사진출처 : 뉴시스


한편 개혁신당의 이준석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을 설득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힘 초선 위원들, 재선 위원들.
탄핵 찬성한다고 정치 커리어 잘못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반대한다고 결코 (정치) 잘 되는 거 아니고요.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해야 잘된다 생각하고요.
...
영남 분들은 또 내려가서
자기 지역구 이길 수 있다 생각하겠지만은
40명 가까이 되는 수도권 비례의원님들,
앞으로 어떻게 정치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
국회의원들이야 저게 직업이라고 하지만은
몇십만 명의 국민들 세워놓고
나중에 누구와 정치하려고 하는 걸까요.
...
지금 저 자리에서 으쌰으쌰 하지 마시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가장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한테 9명씩 있는 보좌진 식구들,
그리고 아들 딸 조카 며느리 누구든지 간에
여러분을 가장 아끼면서도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들한테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이준석 의원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다른 야당이 할 수 없는, 이준석만 할 수 있는 말.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이렇게 거센 국민 여론을 등지고

앞으로 어떻게 정치하려는 건지 납득이 안 된다.


정치를 할 만큼 한 의원들은 그렇다 쳐도

이제 막 시작한 의원들은 더 자리가 없을 텐데,

왜 눈앞의 상황만 보고 멀리 보지 못하는 걸까.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의총 내에서도 일부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그래도 투표는 하자'라목소리도 있었다는데,

당 지도부가 투표 불참을 밀어붙였다는 것이

참 개탄스럽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진출처 : 경향신문


결국 밤 9시 20분,

국회의장의 선포로 안건의 부결이 확정되자

국민의힘은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신동욱 대변인은 다음의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여당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국정 마비와 헌정 중단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8년 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남긴 것은
대한민국의 극심한 분열과 혼란이었습니다.
그 상흔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
더 낮은 자세로 심기일전하여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함께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꼭 찾겠습니다.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국정을 마비시키고 헌정을 중단한 대통령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기 위해

최소한의 투표도 하지 않은 이들의 입장문이다.


도대체 어떠한 비극을 말하는 것이며,

어떠한 상흔을 감히 말하고 있는 것인지,


국민의 불안은 윤석열 대통령 그 자체임에도

탄핵 외에 어떠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심지어 국회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가서

투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


이에 대해 이 날 MBC 뉴스데스크에서

뉴스 보도를 마치며 한 클로징 멘트가 화제다.

친위쿠데타 같은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야 할 임무는 외면해 놓고
이제 와서 탄핵 트라우마 운운하며 오히려 자신들을 지켜달라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국민들 앞에서 트라우마란 표현을 꺼낼 자격이 있습니까?
군사독재에 오랜 세월 억압당했고 심지어 계엄군에 의해 학살당한
진짜 트라우마가 있는 무고한 국민들이 다시 총든 계엄군에게 위협당했는데
어떻게 지금, 그 표현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습니까?

몇 년 정권을 잃고, 자리를 잃었던 게 트라우마라는 겁니까?
대체 정치를 왜 하는 겁니까?
내란죄 피의자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국민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합니까?

금요일 뉴스데스크 마칩니다.
내일도 함께해 주십시오.


특히 조현용 앵커가 눈물을 머금고 말하는 모습에

또다시 깊은 분노와 허탈감을 느꼈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국민들의 트라우마가 아닌,

한번 정권을 내줬던 자신들의 트라우마니.

심지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회 본회의장

비겁하게 나가버린 이들의 입장이라니.


어느 때보다 한 사람의 투표가 가진 힘을 느꼈고,

국민의 대표를 뽑는 무게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


지금 당장의 위기만 벗어나면 되겠지,

시간 좀 지나면 민심이야 뭐 금방 수그러들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그들에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전한다.


단언컨대, 투표하지 않는 이들에게 투표받을 권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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