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다시보기

다시보기 #2 : 진짜 지옥은 따로 있다?

by 지원


최근 몇 년 동안 넷플릭스 시장에서 K-콘텐츠가 꾸준히 기회를 얻으면서

인간수업, 킹덤, 스위트홈으로 이어진 계보가 작년 여름에 오징어게임으로 정점에 섰는데,

오징어게임과는 전혀 다른 장르인 데다가 다소 심오한 탓에 그 정도 흥행까진 아니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Hellbound)이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전체적으로 아주 흥미로웠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기억에 남는 대사, 장면을 위주로 한번 리뷰해보려고 한다.

※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진출처 : 나무위키 - 지옥(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올해 11월에 공개된 총 6부작의 드라마로,

글 연상호, 그림 최규석의 웹툰 지옥을 원작으로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장르물이다.


크게 1화에서 3화까지를 전반부, 4화에서 6화까지를 후반부로 보는데

어느 날 돌연 나타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전 세계가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이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그들에 대항하여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는 크게 충격을 받으면서도 아주 기대가 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

연상호 감독 특유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아주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징어게임보다 한 수 위였다.



※ 스포일러 주의!!


1.

사진출처 : 넷플릭스 - 지옥(Hellbound)

(경훈) 뜯겨 죽을까 봐 선하게 산다, 그걸 정의라고 할 수 있나요?

(진수) 공포가 아니면 뭐가 인간을 참회하게 할까요? 형사님은 그런 걸 보신 적이 있으세요?

(경훈) 아니, 말씀대로라면 그 신은 인간의 자율성을 믿지 않는가 보네요?

(진수) 형사님, 참 재밌는 이야기를 하시네요. 자율성이라, 그러네요.

그 살해범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법의 처벌을 받고 사회에 복귀해서 잘 살고 있지 않나요?

사람의 자율성이 만든 법 체계가 정말 정의롭다고 생각하세요? 그 살해범은 지금 참회하고 있을까요?

- 지옥 시즌1 1화 中


정체불명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진경훈은 새진리회를 캐기 위해 정진수를 만나는데,

인간이 더 정의롭기를 바라는 신의 의도를 사람들에게 전하겠다는 말에 콧방귀를 뀐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 자율성은,

두 사람의 첨예한 대립을 나타내는 단어이면서 마지막 순간을 결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진경훈이 정진수가 제시한 자율성을 가지고 마지막 순간에 과연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극 중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인간 사회를 더 정의롭게 하는 것은 신의 의도인가, 인간의 자율성인가의 문제는

지금껏 수 천년 동안 풀리지 않은 난제.


이 어려운 문제를 드라마 속에 잘 녹여서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고민할 수 있게 만든,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사들이 기억에 남는다.



2.

사진출처 : 넷플릭스 - 지옥(Hellbound)

(진수) 저는 말이에요, 예언을 들은 후로 지금까지 계속 공포에 시달려 왔어요.

20년 동안 이어진 그 공포가 어떤 공포인지 알아요? 끊임없는 공포예요.

죄를 지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타인의 죄를 방치할 수도 있다는 공포, 끔찍한 고통에 대한 공포!

나는 그 고통 속에서 20년을 살았어. 근데 그 공포 때문에 나는 더 바르게 살 수 있었어요.

신이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공포를 선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공포는 세상을 전보다 훨씬 더 정의롭게 만들 거예요.

그 공포가! 세상 사람들을 죄에서부터 해방시킬 거예요.

- 지옥 시즌1 3화 中


인적이 드문 곳으로 진경훈을 부른 정진수는 자신이 20년 전에 고지를 받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새진리회를 창설하고 전파한 이유는 바로 극한의 공포를 선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애초에 신의 의도 같은 건 모르겠고 공포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길 원한다는

정진수의 마지막 독백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대중을 선동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확실한 건 공포일 텐데,

실제로 미디어와 종교가 이 공포를 이용해 역사 속에서 해온 일들을 봐왔기 때문에

정진수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듣자 하니 촬영 전날 갑자기 대본을 완전히 바꾸고 당일 아침에 급하게 전달된 대사라고 하는데,

A4 한 장이 넘는 아주 긴 대사였지만 원테이크 만에 끝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그간의 공포와 고뇌, 외로움과 처절함을 토해내는 유아인 님의 연기는, 정말 소름이 돋는다.



3.

사진출처 : 넷플릭스 - 지옥(Hellbound)

(형준) 배영재 씨, 내 딸의 죽음이 심판입니까, 사고입니까.

전 제 딸이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해요.

나한테 닥친 이 불행을, 다른 무엇도 아닌 불행 그대로 온전히 슬퍼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지옥 시즌1 5화 中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지옥행 고지를 받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 초자연적 현상에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려 한다.


고대 사회에서 자연재해는 신의 심판이었듯

인간은 일반적인 상식 밖의 일을 해석하기 위해 초월적인 존재를 데려오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해석의 권한을 새진리회가 독점하고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제멋대로 심판하면서

남아있는 그 가족들에게도 죄의 굴레를 씌운다는 것.


그들에게 강력히 저항하는 공형준 교수는 얼마 전 시연당한 딸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딸의 죽음을 신의 의도나 죄에 대한 심판이 아닌 그냥 불행한 사고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시연당한 자녀의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공형준 교수의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고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르는 현상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인간의 속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물론 극의 초반에 나오는 민혜진의 대사처럼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는 그 속성 덕에

지금껏 이 인간 사회가 유지되어온 걸지도 모르겠다.



4.

사진출처 : 넷플릭스 - 지옥(Hellbound)

(운전사) 저는 신이 어떤 놈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변호사님?

- 지옥 시즌1 6화 中


살아난 아기를 끌어안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빠져나온 민혜진에게 택시 운전사가 건네는 대사인데,

이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라는 점에서 상당한 주제 의식을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신의 의도를 이용해 세력을 넓힌 새진리회의 명성이 그들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균열이 간 시점에

살아난 아기는 새진리회의 메시지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택시 운전사의 대사는 마치 그 아기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대변하는 말 같기도 하다.


여기서 또 등장하는 개념이 자율성인데,

전반부에서 초월적인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의 자율성이 잠식되어버렸다면,

후반부에는 여전히 자율성을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지를

민혜진 변호사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모든 이야기를 함축한 이 마지막 대사가 아주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사진출처 : 나무위키 - 지옥(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Hellbound)'은 참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 작품이다.


초자연적 현상을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해석하느냐가 우리에게 불러오는 재앙을 보여주면서

그 중심에 있는 여러 미디어와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데,


보다 보면 과연 지옥이 있긴 하는 건지,

어쩌면 새진리회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 지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드라마 속 세계관인 경우에 말이다.)


동시에, 극 중에서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새진리회의 행태를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끊임없이 근본적인 의심을 제기하는 배영재 PD를 통해

참된 언론인의 역할에 대한 주제 의식도 자연스럽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대중을 선동하는 세력에 대한 경각심,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정의에 대한 논의,

무의미한 것을 참지 못하는 인간 속성,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가페적 사랑 등


다양한 담론과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서 일반 대중들이 가볍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인간에 대한 연상호 감독 특유의 통찰력이 아주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의 여러 국가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모았지만

실제로 이런 류의 논의를 즐기는 프랑스에서 가장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보면 볼수록 더 재미있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Hellbound)'를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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