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5.

by 설다람



음... ‘과’ 와 ‘와’나 ‘랑’ 같은 조사는 세상을 조금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가령

듣기만 해도 약간은 흐뭇해지는

‘내가 너와 함께 앉아있다’와 같은 문장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다 비록 ‘너’가 자리를 뜨고 해야 할 일을 하러 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나랑 앉아 있을 수 있다.

거기에 고양이가 사뿐사뿐 걸어온다면 두말할 것 없이 더 행복해지겠지.

그러면

나는 나랑 앉아 있고 고양이가 저 멀리서 사뿐히 걸어오고 있다.

라는 문장을 이제 적을 수 있다.

이제는 자아분열을 시도하는 한 얼간이와

보다 현명한 고양이가 벤치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인데

고양이는 옆에 자리를 잡고 두툼한 엉덩이로 벤치를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쳐들고

하루가 또 가는 군이라고 한 마디를 뱉을 것이다.


나와 나는 그 말이 고양이의 입에서 나와 어디로 도망가는지 유심히 지켜보다가

그 말이 하루를 마감하는 빛을 애처롭게 반사하는 여린 풀잎들 사이로 총총히 사라지는 것을 마저 보고 나서

고개를 들고

다시 노을을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랑 앉아있고 고양이는 저 멀리로 사뿐히 걸어가고 있다.

라고 적으면 이제 하루를 저 산 너머로 보내어 줄 수 있다.


좋은 문장을 쓰는데 필요한 것은

나‘랑’ 나와 ‘고양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물론

한동안은



ps.


현대 아산 병원에서 첫 번째 진료를 보고 나서 국군 수도 병원으로 돌아갈 때 차로 돌아가는 아빠 엄마를 보고 ‘아들 낫는다.’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때는 수술을 어느 병원에서 할지도 어떻게 앞으로 이 일이 진행될지도 전혀 알 수 없는 막연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몸을 돌리니 한 고양이가 눈치를 살피면서 내게로 왔다. 잿빛 무늬가 멋있게 등 뒤에 새겨져 있는 잘생긴 고양이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녀석에게 물었다. ‘잘되겠지 나을 수 있겠지?’라고, 그러나 녀석은 대답도 없이 나를 계속 맴돌았다.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혹여나 병균이 있을까 봐 그러지는 못했다. 미안하긴 하지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니까. 그래도 녀석 덕분에 공연히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면서 병실로 돌아갔다.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로또 당첨이나 겁나게 좋은 직장에 취직과 같은 커다란 행복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일들이 아닐까. (물론 로또에 당첨되고 겁나게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만) 이렇게 지금 우린 사소한 일들로 심각한 일들을 이겨낼 수 있고 또 언젠가 결국에는 심각한 일들이 사소한 일로 기억되는 어느 날에 우린 도착해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삶은 우리를 그런 방식으로 길들여 놓았으니까. 뭐 어쨌거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201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