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그리고 나의 나 1화

by 설다람

수십 년 동안 애완행위반대주의자들의 집요한 노력 끝에 마침내, 애완행위가 부끄러운 행위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애완행위금지법이 통과되었다. 막대하게 높아진 보유세 덕에, 소수의 부자들만이 애완행위를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제 법에 의해 종식된 것이다. 동물은 동물의 삶을 살았고, 인간은 인간들의 삶을 살았다. 인공반려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였다. 인공지능개발제한조약(AIDRT-AI Development Restraint Treaty) 이후 다소 주춤하던 강 인공지능 사업이, 규정 완화를 통해 활기를 되찾게 되면서,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 애완행위를 가능케 하는 안드로이드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개발하고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공 반려체는 감각 기관으로 전달 받은 정보를 모두 로컬 메모리에만 저장할 수 있었고, 신경망을 통한 직접적인 네트워크 연결을 불가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제약으로 인해, 인공 반려체는 '인간'다울 수 있었다.


급진적인 애완행위반대주의자였던 엄마, 이무는 세록이 6살 때. 인공반려체 하미를 집에 들였다. 동물해방연맹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여유롭지 않은 살림이었기에, 변변한 가전 로봇 하나 없던 집에, 하미는 유일하게 세련된 존재였다. 사회적 명망과 달리 이무는 그리 좋은 양육자가 아니었다. 생명 보호 활동에 전념하느라, 세록을 돌볼 시간도, 경제적 여력도 없었다. 세록은 냉장고 위에 올려진 전자렌지, 싱크대 아래 식기 세척기, 벽장 안 건조기와 다를 바 없었다. 사물과 생명체 언저리에서 위태롭게 자라나던 세록에게, 어느 날 나타난 하미는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무한한 신뢰가 키워줄 수 있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적어도 반 친구들과 무리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사교성은 갖추게 되었다. 학년이 높아져 가는 것과 동시에 세록의 영민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뒤따라온 스트레스는 영민함에 대한 대가였다. 그런 세록을 하미는 몸으로 위로해줬다. 처음으로 옥시토신이 분비되었고, '존재'를 애착하게 되었다. 애착은 질병 같았다.


대학 입학을 위한 연합고사 당일, 하미는 도시락을 가방에 넣어주고 나서, 세록의 이마에 입맞췄다. 전날 사무실에서 밤새고 돌아온 이무는 범퍼가 찌그러진 트럭으로 세록을 고사장까지 바래다 주었다.


"이게 중요한 시험인 건 맞지만, 절대적인 시험은 아니야. 다른 사람이 네 가치를 평가하게 내버려 두지 말렴."


이무가 세록에게 말했다. 활동가다운 응원이었다. 이 말을 조금 더 빨리 해줄 수는 없었을까. 세록은 시험을 치는 동안, 이무의 조언을 접었다가 펼쳤다. 마지막 교시 종료 종이 울렸고, 세계연합사(世界聯合史)를 치지 않는 학생들은 먼저 고사장을 나왔다. 세록은 마지막 뒤에 남은 마지막 시험을 봤다. 수도인 한서로 올라가기 위해선, 연합사를 반드시 공부해야 했다. 연합사로 배운 사실은, 세상은 단 한 번도 인간들에게 상냥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합격자 발표날,


세록은 짐을 쌌다.


한서로 올라와 구한 자취방은 굳은 해산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었다. 새우껍데기로 채워진 오른쪽 벽면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하룻밤을 잤는데도, 온몸에 비린내가 진동했다. 세록은 근처 시장에 가서, 10cm 단열재를 사와, 벽면에 덧대었다. 덕분에 방이 좁아지긴 했지만, 냄새는 완전히 사라졌다. 원룸은 부엌과 방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부엌에 난 커다란 창으로 야경이 보였다. 고향인 서울도 비록 지방이긴 해도 작은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서는 확실히 수도답게 규모 자체가 달랐다.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러 처음 학교에 갔을 때도 같은 인상을 느꼈다. 이곳엔 계급차가 있었다. 같은 특성화고 출신들은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다른 고등학교라고 해도, 유명한 애들이 있었다. 서울과 개성 출신은 그나마 꽤 되었지만, 양평북도나, 상해남도에서 내려온 학생은 거의 없었다. 전쟁이 끝난지, 30년이 지났어도, 격전지였던 지역은 아직까지 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지리 과목에서 경제적 지표가 낮은 대표 지역으로, 양평북도와, 상해남도를 제시하는 것이, ‘척박한 동네’라는 두 지역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루한 학사 일정 소개 끝나고, 곧바로 새터 장소인 금강산으로 이동했다. 40인승 버스 7대가 줄지어 도로를 달렸다. 세록은 창측에 앉았고, 통로측에는 나준이라는 여자 아이가 앉았다.

나준은 말이 많았다. 차를 탄 지 20분도 되지 않았는데, 세록은 나준이 한서 토박이이고, 운전자석 뒤에 앉은 보라색 머리칼 남자애와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사실 한때 짝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구하고도 절절한 가슴앓이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았다. 세록은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맞장구를 대신했다. 능선을 타고 오르자, 창밖으로 수려한 산세가 보였다. 자연을 경이롭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세록도 잠시 감상하게 되는 경치였다. 하미도 이런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하미는 집과 마트 외에는 돌아다닌 곳이 없었다. 하미가 하는 일이 집과 마트에만 있었으니까.

폭포가 나오자, 나준이 한 팔을 창에 대고 앞으로 상체를 숙이는 바람에, 세록은 하마터면 나준의 어깨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세록이 작게 ‘아’하고 신음을 내자, 비로소 나준이 사과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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