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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저장소만 이용 가능한 인공 반려체들이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순간은 딱 두 가지 경우만 있다. 하나는 반려 대상자의 상태가 위독해졌을 떄이고, 다른 하나는 반려대상자가 유해 정보에 접속하려 했을 때였다. 이 경우에도 경고 알림만 뜨는 것이라, 실제 내용을 알기 위해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물리적으로, 사용자의 디바이스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세록이 옷을 갈아입고 양치를 하는 동안, 하미는 몰래 세록의 폰을 켜 검색 기록을 보았다. 여러 검색어들 사이에서 하미는 ‘장난감용 아아이 매매’, ‘아아이 촬영물 판매’을 보았다. 이외에 비슷한 부류의 검색어가 꽤 있었다. 미토는 방석에 앉아 나무블록으로 성을 쌓고 있었다. 하미는 세록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침대 위에 누워 잠들기 전, 하미가 세록을 뒤에서 껴안으며 물었다.
“요즘 힘든 일 없어.”
“없어.”
더 말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세록은 입을 다시 열지 않았다.
“저기, 나 나가서 일해 보려고.”
하미가 던졌다.
“갑자기 안 하던 생각을 왜 해.”
세록이 몸을 틀어 하미를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벌면 좋잖아.”
“너한테 이자열이 연락했어?”
하미는 지금 대화에서 자열이 왜 언급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토를 파는 문제와 이자열과 관련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응.”
세록이 벌떡 상체를 올려, 누워 있는 하미의 어깨를 잡았다.
“네가 뭔데 그걸 결정해. 그 자식 말을 왜 듣냐고!”
흥분한 목소리로 세록이 화냈다.
“네 주인은 나야.”
하미가 동그란 눈으로 세록을 바라보았다. 세록의 검고 깊은 눈동자 뒤에 무엇이 있는지, 하미는 알아야 했다.
“알아. 미안해.”
세록의 팔을 아래로 당겼다. 천천히 세록의 몸과 하미의 몸이 포개어졌다.
내일 자열을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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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록이 잠들고 나서, 하미는 세록의 폰에서 자열의 폰을 찾아내 저장했다. 다음날 오전 9시, 하미는 자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는 하미의 말에, 자열은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저녁 6시부터 언제든 괜찮아요. 쾌활한 목소리로 자열이 말했다. 저녁 6시에 찾아가겠다고 한 후, 통화를 종료했다. 하미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과 몸을 되짚어 보았다. 하미는 아직 하미였고, 앞으로도 하미일 것이다. 다짐하듯 하미는 쇄골을 한 번 그었다. 이무가 OK 사인 대신 자주하던 제스처였다.
시간에 맞춰 자열의 집으로 갔다. 예상했던 대로 저택이었다. 인터폰으로 '하미입니다'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숲이 펼쳐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꽃이 피어오르고, 풀이 자랐다. 앞을 가리고 있던 덩쿨이 사라지고, 새로운 문이 나타났다. 가까이 가자 자동으로 열렸다. 누구도 인사하지 않았지만, 하미는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벽에는 커다란 황갈색 갈기의 고양이 머리 박제가 달려 있었다. 그 아래 자청비가 도복을 입고 검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홀로그램 속 자신이었다. 누가 이기고 지든, 모두 자청비였다. 자열은 자청비가 1세트를 끝냈을 때 나타났다. 화면에는 진짜 자청비의 승리를 축하했다.
"아, 미안해요 . 갑자기 전화가 와서, 늦었어요."
미안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전화를 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죠? "
자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보였다.
"세록에게 저를 팔라고 하셨나요?"
어젯밤 세록의 행동에서 근거한 추측이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렇게 해요. 하미 씨가 물건도 아니고.”
"전 물건이고 되파는 것이 가능한 존재입니다. 지금 돈을 빌미로 세록을 협박하고 있나요? 혹시 세록이 진 빚이 있는 건가요."
"아. 신세록. 아무것도 안 말했구나."
자열은 눈을 찌푸렸다.
"연구 프로그램에 지원해야 하는데, 재정증명을 위해 계좌에 잔고가 6만 달러가 들어 있어야 해요. 세록에겐 그만큼이 없고, 저는 그만큼을 빌려 줄 수 있죠. 빌려주기로 했어요. 세록은 좋은 연구자고, 좋은 친구니까"
거짓말처럼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선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가로 저를 요구한 거고."
인간이라면 분노라고 할 수도 있을, 태도로 하미가 말했다. 밀도 높게 응축된 덩어리가 세차게, 하미의 회로와 피스톤과, 트랜지스터, 반도체를 비롯한 모든 구성 요소를 흔들었다. 그러나 하미의 목적은 자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미의 목적은 세록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을 해소하고, 세록의 불안증세에 희생당할 수도 있는 미토를 구해내는 것이었다.
"접근 권한이 없는 영역으로 침범하면, 1차 경고가 울릴 겁니다. 1차 경고는 단순 오작동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선을 넘으면, 세록은 물론 인근 자치대에도 신호가 가요."
"어린 아이가 해도, 경고가 울리나요? 예를 들어 우리 청비가 대신 하는 거예요."
자청비가 반쯤 벗겨진 도복을 추스리고 와 하미의 허리를 잡았다.
"전혀 공격적이지 않잖아요. 그렇지 자청비?"
“물론, 물론!”
"자청비랑 전 연결되어 있어요. 스위치를 켜고, 몸을 대면, 자극의 경계가 지워져요."
자청비가 무릎을 굻고 하미의 다리를 핥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이미 황홀감에 젖어 있는 얼굴로 자열이 말했다.
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경고는 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