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재단 직원이 콘트라베이스를 못 숨김 1화

by 설다람

손가락에서 마지막 음이 튀어나갔다.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현예 인생에서 1등은 두 번째 이름이었다. 최상위 성적으로, 최상위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 현예가 재즈 오케스트라부에 들어간 건 의외의 사건이었다. 졸업 후 음대 유학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신박한 농담처럼 들렸다.

전공 악기는 재즈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담당했던 콘트라베이스였다. 대학교에 올라와 처음 잡은 악기였지만, 곧 잘했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는 제법이었다. 1년을 쳤을 때, 현예는 아마추어 이상 수준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첫 배치 고사에서 현예는 수강 철회 안내를 받았다. 사유는 수준 미달이었다. 성적에 따라 A, B, C 반이 나뉘어졌고, 학생들은 반끼리 어울렸다.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음악만 생각했다.

그러나 3등이 한계였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거장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건 2등까지였다. 오전 세션엔 1등이, 오후 세션에는 2등이 올라갔다. 음원으로만 듣던, Thelonious Jamal, Chich Northcorea, Diea Donuto가 눈앞에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연주를 펼치는 동안, 현예의 머릿속에서는 늘 한 가지 말이 메아리쳤다. ‘반드시 가고 만다.’ 그 외침은 끝내,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현예는 콘트라베이스를 팔았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는 노력한 만큼 돌아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위대한 연주자와 훌륭한 연주자, 그리고 괜찮은 연주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실패한 유학은 음악적 사망 선고였다. 더 나아갈 이유가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약속을

취직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음대 졸업장을 숨기면 공백기 설명이 불가했다. 음대 졸업장을 내밀면 서류에서부터 막혔다. 학력을 따지는 사기업에서 음대 석사 학위는 제대로 된 학위가 아니었다. 소벌린 콘서바토리는 음대생들이 선망하는 명문대였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듣보잡이었다. Save Truebeck의 라이브 명반 ‘Live at Soberlin’이 녹음된 곳이 바로 이 소벌린 콘서바토리라는 사실은, 감상자들에게만 유의미한 정보였다. Save Trueneck 섹스텟의 베이시스트 Qrsted Pedersen가 유학시절 학과장으로 지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유의미한 정보가 아니었다.

‘팀의 일원으로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업해서 일했던 경험에 대해 기술하시오’라는 문항에 학기 말 쿼텟 연주에서 악마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와 소시오패스, 성격파탄자와 팀을 이뤄, 악마 같은 스탠다즈곡을 악마처럼 편곡해 실연한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인격이 닳아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던 경험이니, 그 정도의 값어치는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AI가 읽자마자 나가 떨어뜨릴 내용일 테니, 다른 경험 조각을 빌려와 작성했다.

하지만 베이스 줄에 손가락을 댔다는 이야기는 일절 쓰지 않아도, 안일전자, 엔지 파이닉스, 로헴 자동차, 티랜드 어느 곳에서도 현예를 받아주지 않았다.

다른 구멍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공공기관은 평등이라는 가치 아래에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했다. 기관이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현예 역시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묻지마 지원을 했다. 나이와 성별, 학력을 가리고 나자, 탈락하는 서류는 없어졌고, 시험은 껌이었다. 면접에서는 몇 번 고배를 마셨다. 고배를 달게 마시는 법을 깨달았을 때쯤 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최종 합격 메일을 받았다.


2년 동안 현예는 서류처럼 살았다. 정해진 형식에, 맞춰진 시간에 따라, 필요한 행동을 했다. 타인을 대할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상냥함만 준비했고, 집에 갈 때는 모두 비워냈다. 한 번의 승진이 있었지만, 월급은 크게 인상되지 않았다. 다음 승진은 적체가 예고되었다고들 했다. 간신히 숨 쉴 정도의 틈만 허락된 말단 직원들은 우울함을 화장처럼 덮었다. 현예도 달갑지는 않았으나,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불만은 비벼 끄는 것이라고, 입시를 준비할 때 배웠다.

반복, 반복, 반복.

음악에서 반복은 가장 기초적인 원리다.

즐거움을 위한

현실에서도 반복은 가장 기초적인 원리다.

무료함을 위한

오전에 현장 실사 대상지에 대한 서류를 살펴보았다.

‘사파로 1길 251 인형 빌딩 2층 비밥 인 파스텔’

사파로가 힙파로로 뜨기 전부터 영업해 온 재즈 클럽으로, 지난 3년간 급격하게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볼 수 있겠지만, 재즈 클럽이 아니라 디저트 카페였다면, 오히려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을 것이다.

사업주의 태만이 영업 부진의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적어도 현예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그랬다. 재즈는 위험했다. 현예 주변에는 마약이나, 도박보다 재즈로 인생을 말아먹은 경우가 더 많았다. 대학 동기들 눈에는 자신이 그렇게 보일 것이다. 이산대 경영과 아웃풋으로는 내세울 만하지 않으니.

현장실사의 목적은 자금 지원을 신청한 지원자가 실제 해당 장소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정상 영업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전반적인 업무 처리에 하자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주소에 도착하자 제출 서류에 적힌 명칭과 동일한 이름의 가게 간판이 보였다. 검은 나무 간판에는 어린아이가 분필로 낙서한 것처럼 ‘Bebop in Pastel’이라고 적혀 있었다.

‘Bebop in Pastel’은 불세출한 피아니스트 Bud Powell의 대표곡 ‘Bouncing with Bud’의 다른 이름이었다. 솔, 도, 파를 반복하는 긴장감 넘치는 인트로가 끝나자마자 화려하게 내려오는 비밥 멜로디가 일품인 곡이다, The Amazing Bud Powell 버전을 기준으로는 그랬다. 녹음 세션의 베이시스트는 Charlie Parker의 클래식 멤버로 유명한 Tommy Potter였는데, 정통 그 자체였다. 재즈 오케스트라부 감상 모임 시간에 선배가 타닥타닥 모닥불 피우는 소리가 섞인 음원을 들려주며 말했다.

‘어때 죽이죠?’

정말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지, 이 사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같은 표정을 안 지으면 죽을 것 같아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죽을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일을 해야 한다.

실제로 가게가 존재한다는 증빙 자료로 가게 전면 사진을 찍고 현예는 안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사각형 구조로, 따로 단 없이, 한쪽 벽면을 무대로 쓰는 듯했다. 무대와 테이블 간격이 1m도 되지 않았다. 이 좁은 공간에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간다는 게 놀라웠다. 자신의 피아노를 아끼기로 유명한 Peter Einstein이 내한했을 때, 입구가 좁아 공연장으로 피아노가 들어가지 못하자, 한쪽 벽을 일부 허물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이곳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벽을 허물고 들일 정도의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완전히 해체했다 안에서 조립하지 않는 이상.

상태를 보기 위해 피아노 뚜껑을 열었을 때, 음악이 울렸다.

“일찍 오셨네요. 미처 소리를 못 들었어요. 주서규라고 합니다. 미리 말씀하시지, 커피라도 드릴까요.”

서규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친절이 빚은 미소처럼 보였다. 옅게 푸른빛이 띠는 눈동자 때문인지, 쾌청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현장 실사로 나온 신현예 선임입니다.”

“네, 여기에 앉으셔요.”

서규가 바로 앞에 있던 테이블에서 의자를 빼주었고, 둘은 나란히 붙어 앉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먼저 사업주 분 신분증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서규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건네었다. 신분증 속 남자는 지금보다 훨씬 앳되어 보였다.

“좀 다르죠. 고등학생 때 찍은 거라. 그래도 코 이런 데는 안 변했어요.”

어딘가 자랑스러운 말투였다. 형식적으로 현예는 주민등록증 사진과 서규의 얼굴을 번갈아 본 뒤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언제부터 영업하셨나요?”

“3년 전부터요.”

“매출이 급격히 주셨던데, 이유가 있을까요?”

“코로나 이후로 회복하지 못했어요. 발길이 한 번 끊기니, 다시 오지 않더라고요.”

서규는 섭섭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인을 위한 홍보활동은 어떤 걸 하시죠?”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사전에 확인한 사실이었다. 팔로워는 200명 남짓한 소규모 계정이었다.

“부족하지만 기회를 주시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목소리로 서규가 말했다. 현예에게 기회를 주는 권한 같은 건 없었다. 보고 확인한 것을 보고할 뿐이었다. ‘잘되실 거예요.’같은 빈말을 현예는 건네지 않았다. 배경으로 사장이 튼 음악이 흘러나왔다.

‘Orange Was the Color of Her Dress, Then Silk Blue’였다. 버전은 Charles Mingus의 피아노 독주였다. 베이시스트임과 동시에 훌륭한 작곡자인 Charles Mingus는 수준 높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밴드 버전 쪽이 훨씬 유명해, 피아노 버전을 듣는 사람은 소수였다. 현예가 그 소수에 속하게 된 것은 순전히 선배 때문이었다.

“Orange Was the Color…”

머릿속에 떠오른 목소리에 혼잣말을 했다.

“이 곡을 아세요?”

서규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딘가 감탄이 배인 투였다.

“그냥 한 번 들었어요.”

“한 번 듣고 기억하기 쉽지 않은데, 재즈를 좋아하시나 봐요.”

“아뇨. 잘 몰라요.”

대화를 이을 의지가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그래도 반갑네요. 이건…, 진짜 좋은 곡이잖아요.”

투명한 말이었다. 동조할 수밖에 없는.

“진짜 좋은 곡이죠.”

내부 구석구석 사진을 찍고 현예는 가게를 나왔다. 건물 외관도 촬영했다. 어쩐지 들어가기 전보다 더 낡아진 것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현예는 실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잘될 거예요’라는 빈말 대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현예는 최대한 꼼꼼하고 자세하게 사업 운영의 가능성을 평가했다.

‘감염병으로 인한일시적인 매출 감소로, 사업 의지와 수익성을 고려했을 때 향후 정상적인 매출을 회복할 것으로 판단되어, 지원금 대상으로 적절함.’

최종 의견서를 제출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최종 심사 결과는 대출 승인 거절이었다. 심사과 팀장이

빈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시티팝을 틀어도 모자랄 판에, 재즈를 트니까, 가게가 망하지.”

엔터를 세게 쳤고, 딱하는 소리가 났다. 베이스를 치던 손가락 힘은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