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아주 원초적인 후회를 하게 된다
아, 결혼은 왜 해가지고
이 고생을 사서 하나
가끔은 퇴근 후 무한 장난감 치우기 굴레에서 벗어나 쉬고 있는 남편에게 ‘그때 크게 싸우고 헤어진 날 내가 장염으로 응급실만 안 갔어도.. ‘ 이런 말을 하면 남편도 ‘그러게 왜 쓸데없는 거 집어먹고 아파서 이 사달을 만들었냐?’ 하며 받아친다.
결혼 전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첫째가 태어나기 전엔 어떤 사람이었나?
둘째가 태어나기 전엔 어떤 사람이었나?
하나하나 과거를 되짚어 보면
참으로 속좁고 소심하고 그러면 어느 땐 이해심이 하해와 같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 집착하는 사람이었다가 사소한 사건에 획 돌아서는 냉정한 사람이었다가.. 열심히 주변을 챙기는 관계중심형 사람이었다가 이도 저도 지치면 다 놓아버리는 아웃사이더도 되었다가
그러다 지금 엄마라는 사람이 되었다.
원래도 정체성이 흐릿했던 나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 되면서 흐릿하다 못해
존재 자체도 찾아볼 수 없게 될 지경이 된 듯한
기분이 가끔 든다.
오로지 내 기분상 가끔 그런 생각이 들뿐,
어느 날은 세상 좋은 엄마였다가
어느 날은 마녀 같은 엄마였다가 하는 게
이랬다 저랬다 하며 일관성 없는 게
참 나답다.
지인 중에 이런 일관성 없는 나를 아주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26살 한참 창창한 나이에 취업을 못하고 빌빌대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갔을 때 알게 된 언니다.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넌 결혼하면 안 돼 결혼하고 안 어울려
넌 혼자 살면서 여행 다니고 글 쓰고 하는 게 어울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언니의 말에 ‘이 사람 참 날 모르네’라는 생각을 했다.
취업대란으로 20대의 삶이 약간 버라이어티 하긴 했지만 난 정말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한편으로 언니가 예리한 건
마음속 한 켠에 늘 자리 잡은 내가 바라는 삶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능력만 된다면 용기만 있다면 이나라 저나라 여행하면 소소한 내 일상을 글로 담아내며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언니의 그 말은
너무 평범한 나의 일상에서
언젠가 내가 내 꿈을 이루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자그마한 희망을 준다.
나다운 나는 사실 언제나 여기 내 삶에 있다.
내가 찾지 않아도
나는 이미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나답게 살고 있다.
다만 조금 더 나답게
내가 원하는 삶을 꿈꾸게 하는 건
나를 과대평가해주는 언니의 말이다.
그 언니는 내가 남편과 싸워
불평불만을 쏟아낼 때면
“그러게 왜 내 말을 안 들었어!! “
라고 나보다 더 분노한다.
나에게 꿈이 있다.
두 아이에 엄마라도
누구 덕분에 잊지 않을 꿈
어쩌면 허황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꿈꿔본다.
나를 더 나답게 할 그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