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사정
오랜만에 야근을 즐기는데
전화가 왔다. 영상통화인 거 보니 아이들이다
“엄마! 언제 와? ” 하며
이미 한바탕 울어버린 아들의 얼굴이 보인다. 또 무슨 일인가? 요즘 남편도 육아 번아웃이 왔는지 예전엔 한없이 받아주던 아빠는 없고 종종 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상황이야 눈만 감으면 보이고
나도 매일매일 겪는 일이라 속이 부글부글 끓을 남편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한다고 앉아있는데 …
한번 영통이 시작되면 끝이 없다
다음부턴 작은 화면 사이로 엄마와 마주 보는 게
재밌어서 몇 번이고 전화가 걸려온다
적당히 끊어주면 좋으련만
남편도 아이들도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평일 등하원은 단축근무를 하는 내가 전담하지만
당직이나 저녁 회의, 행사가 잡히면
남편에게 미리 말하면 남편은 반차, 재택 등을 활용해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집을 구할 때부터 애들을 생각해 내 직장 주변으로 자리를 잡았고 남편의 출퇴근 시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나름 꽤 잘 돌아가는 시스템이지만
난 이 구조적 불합리성에 늘 열폭한다
언제가 퇴근하고 아이들과 학교 앞 놀이터에서
무한 개미지옥에 겨우 빠져나와
초딩가방 하나, 유딩가방 하나, 내 가방 하나, 놀이터에서 먹고 남은 쓰레기봉투, 손에 먹을 걸 쥐고 있느라 타지 못하는 둘째 킥보드까지 이고 지고
집으로 향하는데
첫째가 대뜸 아빠한테 전화할래!
짐이 많아 핸드폰을 건네니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어디야? 언제 와?! “
“아~ 아빠 집 앞 병원이야~ 금방 갈게”
순간
나의 빡침 게이지는 끝도 없이 올라간다
매일 도돌이표처럼 애들을 이고 지며 싣고 나르고 있는데 일찍 마쳤음 와서 짐이라도 가져가든지•••. 그놈의 병원
남편은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이 참 많다
치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딴엔 오랜만에 일찍 마쳤으니 내 볼 일 좀 봐야지
하고 본인 병원을 투어 한다
평소엔 일이다 육아다 시간 내기가 힘들고
주말엔 애들과 나다니느라 시간 내기가 힘드니
나름 재택 하는 날 점심시간을 활용하거나
평일 야근이 많은 날은 그 시간만큼 단축한 시간을 활용해 병원, 미용실 등 자기 볼일을 본다
나름 최대한 일상적인 패턴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그 노력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당장 닥친 내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심이 바닥을 찍고 ’ 넌 나의 노고를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아! 넌 내가 있으니까 그렇게 혼자 시간 쓸 생각을 하는 거야! “라는 결론에 이른다.
첫째가 어렸을 때
한참 지금 우리 애들 나이 때의 조카 둘을 키우고 있던 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형부 욕을 했다. 뭘 저렇게까지… 이야기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난 요즘 딱 그만큼 남편 욕을 한다
요즘 언니는 평안하다.
아이들이 자랐고, 형부는 자란 아이들의 니즈에 맞춰 잘 챙겨주고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되었다.
(원래 그런 형부였다, 그땐 몰랐을 뿐)
한참 싸울 때다 그래도 애들이 자라는 만큼
너도 편해질 거야
그래, 남편의 사정은 그때 내 몸과 마음에 평안이
왔을 때 즈음 이해해 보자.
지금을 일단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