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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dler Mar 13. 2019

매일 멋진 백패커(backpacker)되기.

백팩에 대한 단상 @ 붐비는 지하철.

소위 백팩이라 부르는 가방은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사랑받는 가방의 형태다.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가방이 있었는데 기억이 맞다면 상표는 펭귄표였고, 가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납작한 가방을 양쪽 어깨에 둘러메는 형태였다. 그때만 해도 양쪽으로 메는 가방은 초등학생의 전유물이었고, 한쪽 어깨에 멋들어지게 늘어뜨린 기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중. 고등학생 누나, 형들을 보면 그게 어찌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길게 늘어뜨리는 게 유행이었던 그땐 정말로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무릎으로 툭툭 차며 걷곤 했었다.

나 또한 중학생 때부터 한쪽 어깨에 걸치는 가방을 멧다. 당시 뉴스엔 '학생들의 가방이 그들의 척추에 끼치는 영향.'을 보도하는 꼭지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깨와 척추 건강과 멋을 바꾸었던 셈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요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백팩을 애용한다. 소위 말하는 펭귄 군단,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도 브리프 케이스나 크로스백보다 백팩을 선호하는 듯하다. 백팩에 대한 시선이 관대해진 것도 한 몫했으리라.

왜일까?

편함. 두 손의 자유로움.

그렇다. 두 손의 자유는 출퇴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을 다양한 공간으로 바꿔준다.

어제 못 본 예능을 다시 보기 하기도 하고 밀린 넷플릭스를 챙겨볼 수 있고 모바일 게임에 빠짐으로써 출퇴근 시간을 단축시키는 타임머신이 되기도 하고, 어젯밤 술 마시느라 업데이트 못한 지난 뉴스를 읽고, 오늘 퀴즈를 위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발표하기로 한 자료를 숙지하는 독서실이 되기도 한다. 물론 출근 시간에 친구가 되어 주는 라디오를 듣거나 즐겨 듣는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나만의 bar가 될 수도 있겠다.

모든 경우에 두 손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백팩이 주는 편함은 감사하다.


지하철 역사나 지하철 내부에는 '백팩을 앞으로 메라.'는 포스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포스터의 문구에는 그런 행동이 매너 있는 행동이며 남을 위한 배려라는 취지다. 공허하다.

오히려 통화를 조용히, 간단히 하라는 안내방송처럼, 방송이라면 효과가 좀 더 있지 않을까?

예전에 엄청나게 붐비는 지하철 내부 사진을 찍어 올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있는 선반을 보라.'란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많은 댓글은 아니었지만 선반에 자신의 물품, 특히 가방을 올리지 않는 이유 중에 분실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맞다. 행동은 경험으로 비롯할 진데 선반이 위험한 곳이 된 것이다.

최근(?) 2호선에서 주로 만나는 새 지하철을 보면 좌석 한 칸의 너비는 넓어졌고 좌석 위 선반은 없어졌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정일 걸 믿는다.

아까 얘기한 가방을 늘여 메는 게 유행이던 그때는, 선반이 가득했고, 심지어 지하철에선 앉아 있는 손님이 "저기요. 저한테 가방 주실래요?", "아이코, 고맙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맞다. 예전 얘기다.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아주 짧게.

공익광고나 공익포스터를 통해서 듣게 되는 공허한 백팩을 앞으로 메는 행위는 매너나 배려다?

다른 느낌으로 같은 얘기를 하고 싶다.


자신의 편함은 추구하되 스스로 간수하자.


내 편함이 온전히 내 품 안에 있도록 잘 간수하자. 다른 사람의 불편함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한 모습은 멋지지 않다. 쿨하지 않다.

추하다.

그리고 얘기하자. "저기요. 당신 백팩이 날 불편하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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