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드래곤 이야기(전반)

by 두버지

아주 오래전엔 인간과 드래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과 드래곤들에게는 애초에 화합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골이 깊어 있었다.



소녀는 고아였고, 돌봐주는 사람도 친구도 없었다. 마을 시장에서 동냥을 하거나, 농가나 가게에서 음식을 훔치면서 연명했고,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골목 뒤편에서 잠을 자며 생활했다. 마을 사람들은 소녀가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멍청하고 예의 없이 동물처럼 행동한다고 싫어했다. 소녀에게는 이름도 없었고, '저것'이라고 불렸다.


소녀가 사는 곳은 성안은 마을 중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다. 소작농, 잡역부,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마을 사람들은 서로 끈끈한 유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소녀를 배척하는 것 또한 한마음으로 행동했다.


소녀가 사는 세상은 드래곤과 인간이 대립하며 지배하고 있었고, 인간들은 드래곤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성을 지었다. 성벽에는 경비병들이 교대로 경계를 섰고, 벙커 안에 대포를 장착해서 드래곤의 침략에 대비했다.


드래곤과 인간의 대립은 100년 전 큰 전쟁 후에, 인간들은 섬의 중앙에 성을 지어서 인간의 구역을 정했고, 드래곤은 섬 외곽의 숲을 드래곤의 구역으로 정해서, 서로 구역을 나누어 침략을 하지 않고 냉전 상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드래곤이 가끔 보이기는 했지만, 성 근처로 다가왔던 드래곤은 없었고, 인간들도 외곽 숲 근처에는 결코 다가가지 않았다.



드래곤은 인간처럼 말을 할 수 있고, 지능이 높았으며, 힘에 의한 서열을 세워, 무리를 지어 살았다. 드래곤의 힘은 덩치에 비례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브레스가 얼마나 강력한지에 달려있었다. 가장 강력한 브레스를 뿜는 드래곤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드래곤은 형태와 특징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누어졌다. 이는 드래곤이 탄생한 자연 혹은 원소로부터 발현되었다. 대표적으로 불에서 탄생한 레드 드래곤이나 물에서 탄생한 블루 드래곤이 있었다.


그중 변종처럼 태어난 나무 드래곤이 있었다. 나무 드래곤은 나무에서 생명을 얻어서 기이하게 홀로 태어난 드래곤이었고, 온몸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는 불에 너무 잘 탔기 때문에, 나무 드래곤은 태어난 후 한 번도 브레스를 뿜은 적이 없었다. 나무 드래곤은 브레스를 뿜다가 자기가 타버릴까 봐 겁이 났고, 그런 위축된 모습은 드래곤의 사회에서 나무 드래곤을 외톨이로 만들게 되었다.



나무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과는 많이 달랐다. 덩치도 크지 않았고, 곰이나 늑대와 싸우면 질 수도 있을 정도로 약했다. 자기 자신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다 보니 다른 드래곤 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았고, 외곽 숲의 동물들도 나무 드래곤을 존중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무 드래곤은 나무 같은 식물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사냥을 할 만큼 강하지 않아도 생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드래곤의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점점 무리 밖으로 쫓겨나는 자신의 모습에 위태로움과 불안함을 느꼈다.

결국 드래곤의 오점이라는 명목하에 나무 드래곤은 외곽 숲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나무 드래곤은 성과 숲 사이 들판의 돌과 수풀 속에 몸을 숨겨 살아갔다.


나무 드래곤은 소심했다.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 먹이를 찾으러 나온 사슴이나 다람쥐를 바라보면서 다가가볼까 고민하다가 나무를 뜯길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두려움에 웅크리고 그들로부터 몸을 숨겼다.



드래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강력했지만, 전쟁 후에 개체 수가 많이 줄었고, 인간 세력은 전쟁 후에도 계속 인류의 수는 증가했고, 성과 영토를 넓히고 있어서, 드래곤들도 어떻게 이 냉전을 끝낼지 고민이 많았다. 드래곤들은 성으로 흐르는 강의 물줄기를 끊고, 밤에 몰래 농경지를 파헤쳐서 농사를 망치게 했다. 시간이 지나 성 내에는 기근이 찾아왔다.


기근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 안타깝게도 소녀가 살던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다. 다른 마을은 비축해 둔 곡식과 식량, 말린 고기와 생선으로 연명할 수 있었고, 우물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었지만, 가장 가난한 마을은 가진 것이 없었기에 당장 생활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을의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성 밖에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먹을 입을 줄이고 먹는 량도 줄이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마을 사람들은 잔혹해져 갔다.



어느 날 밤, 소녀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마을 창고에서 감자를 하나 훔쳐 나오다가 걸리게 되었다. 예전이었다면 몽둥이를 몇 대 맞거나 돌팔매질을 당하고 끝날 일이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마을 사람들은 쇠스랑과 칼을 들고 소녀를 쫓았다.


소녀는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무작정 달렸다. 마을 사람들은 저것을 잡으라고 소리치며 쫓아왔다. 달리고 또 달려서 소녀는 성 밖을 나가게 되었고, 어느덧 성과 멀리 떨어진 들판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에 달빛은 너무 약했고, 소녀는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큰 돌부리 옆에 쪼그려 앉았다.



소녀는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이 안전한 곳에 숨은 것이 맞는지 걱정했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바위라고 생각한 것의 표면이 바위처럼 차갑지 않고,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다.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바위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녀가 나무 같은 바위를 손으로 만지는 순간 나무 드래곤은 화들짝 놀라서 소녀로부터 먼 방향으로 점프를 했다.


"으악!"


소녀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나무 드래곤은 그 소리에 더 놀라서 몸을 낮게 웅크렸다.


달빛에 비친 나무 드래곤은 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였고, 소녀는 나무 드래곤이 드래곤 치고는 작은 크기였기 때문에 드래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을 공격하거나 해를 입히지 않을 거라는 직감을 느끼게 되었다.


'작은 인간이다.'


나무 드래곤도 눈앞의 생물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게 됐다.

둘의 탐색전은 길지 않았고, 긴장이 풀리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무 드래곤은 작은 인간이 곧 떠날 것이라고 생각해서 원래 있었던 것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웅크렸고, 소녀는 몸을 숨기기 위해서 바위처럼 생긴 나무 드래곤에게 다가가 몸을 기대 누웠다.


'인간 중에서 제일 작은 인간 같다. 나는 드래곤 중에서 제일 작은 드래곤인데, 작은 인간보다는 커서 다행이다.'


나무 드래곤과 소녀가 밤을 보낸 들판은, 숲 외곽과 성의 중간 지점이었는데, 그곳은 인간도 드래곤도 발을 들이지 않는 중립지역과 같은 곳이었다. 아침이 되어도 그곳엔 야생 동물 몇 마리만 근처를 지날 뿐 인간과 드래곤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아침이 되어 나무 드래곤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아닌 것에 안심한 모습이었다. 소녀는 배가 무척 고팠다. 어제 창고에서 훔친 감자를 품에서 꺼내 먹으려다, 나무 드래곤을 쳐다보더니 잠시 멈칫했다. 나무 드래곤은 소녀가 뭘 하는지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감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어 뱉더니 나무 드래곤에게 내밀었다.


"나눠줄게, 보답이야."


'감자다!'


나무 드래곤은 식물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감자 또한 나무 드래곤에게 에너지가 된다. 다만 나무 드래곤에게 너무 작은 양이었다. 나무 드래곤은 소녀가 감자를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숨겨둔 나무 열매를 꺼내서 나눠주었다.


"먹어."

"너 말을 할 줄 아네?"


소녀와 나무 드래곤은 둘 다 자신의 무리에서 외톨이였다. 나무 드래곤은 자기가 들판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녀에게 소개해 주면서, 처음으로 친구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소녀도 누군가가 자기에게 적의 없이 다가온 게 처음이었고, 마음이 금방 열리게 되었다. 소녀는 나무 드래곤이 인간이 아니어서, 나무 드래곤은 소녀가 드래곤이 아니어서, 그래서 둘은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나무 드래곤의 소녀에게 드래곤의 세상을 이야기해 주었고, 소녀도 나무 드래곤에게 성 안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둘은 자신의 세상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소속감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다."

"나도야.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소녀는 나무 드래곤의 등에 타서 하늘을 날아보기도 하고, 같이 들판 어딘가에서 한가로이 낮잠도 자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무 드래곤이 찾아둔 비밀 장소에 가서 맛있는 열매를 먹기도 하고, 해 질 녘의 노을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취하기도 했다. 둘은 함께하는 동안 각자의 세상을 잊고, 외톨이였던 시절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성 안의 기근이 심해지면서, 왕의 명령에 따라 기사, 일꾼 들 중 일부로 차출되어 성 밖 수색을 나서게 됐다. 수색대는 강줄기를 따라서 이동했다. 중앙 들판은 중립 지역이고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은 이곳까지 나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색은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어느덧 그들은 나무 드래곤과 소녀가 지내던 중앙 들판에 이르게 되었다.


"저기 뭔가가 보입니다. 말?.. 아니 드래건인 거 같습니다."



소녀는 나무 드래곤과 장난을 친다고 정신이 없었다. 소녀는 나무 드래곤의 꼬리, 등 그리고 머리까지 나무를 타듯 기어올라갔고 나무 드래곤은 귀찮은 듯 머리를 흔들어댔다.

수색대를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일꾼 중 한 명이 말했다.


"저 계집애, 제가 압니다. 저희 동네의 거지 도둑년이에요"

"아, 그래? 잘 알고 지냈나?"

"아뇨, 모든 마을 사람들 다 저 거지를 싫어했습니다. 더럽고 냄새가 나는 데다가 도둑질을 아무렇지 않게 해댔습니다."


수색대 대장은 몰락한 귀족 출신의 기사였다. 그는 아주 교활했고, 수 계산이 빨랐다. 일꾼의 얘기를 듣고 난 뒤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계집이 드래곤 놈과 꽤 친해 보이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네요. 어떻게 드래곤과..."

"오늘 밤 드래곤이 잠들었을 때, 저 계집을 납치한다. 마을로 데려가서 물어볼 게 있어."


수색대는 대장의 명령에 따라서, 강줄기를 따라가는 임무를 중단하고, 소녀와 나무 드래곤의 거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은신 야영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소녀는 수색대에 의해서 마을로 납치당해 돌아왔다.


소녀는 눈을 떴을 때 마을로 돌아온 것을 알고 기겁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소녀에게 예전같이 무시하고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라 온화한 모습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수색대 대장은 소녀에게 맛있는 음식과 따듯한 집을 제공하면서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캐묻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어쩌면 나쁜 게 아닐지 몰라요. 엄청 착하고, 저에게 잘 대해 줬어요"

"그래, 정말 착해 보이더구나, 혹시 그 드래곤이 어디 사는지도 들었니?"

"그럼요, 숲속 어디라고 했고, 근처까지 같이 가보기도 했어요. 들어가진 못했어요. 나무 드래곤도 외톨이였거든요."

"아, 나무 드래곤이었구나. 어쩐지 나무처럼 생겼더라. 혹시 드래곤이 얼마나 숲에 살고 있는지, 입구가 어딘지도 봤니?"


소녀는 오랜만에 인간이 사는 집다운 곳에 돌아왔고, 따듯한 수프와 빵을 보자, 의자에 앉아서 허겁지겁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수색 대원과 일꾼들은 낮은 목소리로 키득댔다.


'거지 같은 년이 먹는 모습도 정말 더럽군. 돼지가 따로 없구나.'


소녀는 소맷자락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드래곤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세요? 드래곤과 친해지고 싶나요?"

"안타깝지만 그건 아니란다. 너는 드래곤에 대해서 전혀 모르나 보구나."


수색대 대장은 소녀에게 드래곤의 거처와 수를 알게 되면, 작전을 세워서 외곽 숲을 점령할 예정이고, 이를 통해서 인간들은 섬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거란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 더 이상 성 안에서 살 필요 없이 더 넓은 곳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소녀는 드래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수색대 대장은 더 이상 소녀의 궤변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소녀는 사람들이 드래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악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소녀가 그저 멍청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점점 이야기의 논점을 흐려지고,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수색대 대장은 소녀가 먹던 빵과 스프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화를 냈다.

지금 당장 드래곤의 비밀을 얘기하지 않는다면 평생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살다가 죽게 한다고 협박했다.

소녀는 마을에서 도망치던 그날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잊지 못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 모두 그때의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 드래곤이 눈을 떴을 때, 소녀가 곁에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무 드래곤은 소녀의 흔적을 찾다 다른 인간의 흔적과 소녀의 흔적이 섞여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인간들이 사는 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무 드래곤은 황급히 인간의 성을 향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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