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으로 이어지는 강줄기와 농경지를 파괴하는 공작을 하던 드래곤 무리들은 나무 드래곤이 성을 향해 돌진하듯 날아가는 것을 봤다.
"장작 같은 녀석이 성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대장님께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 모자란 때문에 자칫하다가 인간들이 전쟁이라도 일으키면, 지금껏 준비한 공작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겠어. 빨리 대장님께 보고하러 가자고."
나무 드래곤은 날아가는 동안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녀가 무사하기를 바랐다.
예전에 외곽 숲에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덩치는 드래곤들 보다 작지만, 무기와 전략에 능해서 상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두 명이면 상대할 만하지만, 만약 그 이상의 인간들을 마주친다면, 무조건 도망치라고 했다.
나무 드래곤은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소녀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속도를 더 높였다.
소녀에 대한 취조는 밤이 돼서야 끝이 났다.
소녀는 드래곤에 대해서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수색대 대장은 화가 났고, 소녀의 뺨이 터질 때까지 때렸고, 결국 포기했다.
"일단 저 계집을 지하 감옥에 가둬라. 내일부터 고문을 이어서 한다."
두 눈과 볼이 빨갛게 부어오른 모습에도, 수색대와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소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하다고 혀를 끌끌 찼다.
성벽 위로 날아오른 나무 드래곤의 눈에, 취조실에서 나와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는 소녀와 수색대가 보였다.
"드, 드래곤이 나타났다!"
"어? 그런데 들었던 것보다 작은데?"
성벽의 경비대는 나무 드래곤을 향해서 대포와 활을 겨누었다.
나무 드래곤을 경비대를 향해서 브레스를 뿜으려 불을 머금었지만, 뜨거운 기운에 포기하고 말았다.
"나무 드래곤, 어서 도망가!"
소녀는 나무 드래곤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무 드래곤은 도망칠 마음이 없었고,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경비대는 나무 드래곤을 향해서 화살을 쏘았고, 나무 드래곤의 약한 날개와 피부에 화살이 박히기 시작했다.
소녀의 앞까지 날았지만 이미 많은 화살이 박힌 나무 드래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거 드래곤 맞아? 왜이리 약해."
"이렇게 약골인 거 보니, 저 계집이랑 다를 바가 없군. 하물며 피부와 비늘도 약해빠진 나무 쪼가리 같군."
수색대는 눈앞에 쓰러진 나무 드래곤을 보더니 조롱하듯 비웃었다.
나무 드래곤은 엉망이 된 소녀의 얼굴을 보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경비대가 가져온 사슬 올가미가 나무 드래곤을 감쌌고, 약한 나무 드래곤은 저항했지만 그대로 포박당하고 말았다.
"그 애를 당장 풀어주지 않으면!"
나무 드래곤이 말을 채 끝내기 전에, 수색대 대장을 창을 나무 드래곤의 등에 꽂았다.
"날개를 잘라버리고, 같이 감옥에 가둬라. 내일 저 나무껍질 도마뱀을 고문해서, 드래곤을 습격한다."
결국 나무 드래곤과 소녀는 차가운 지하 감옥으로 끌려갔다.
간수들은 나무 드래곤의 날개를 자르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질겨서 자를 수 없었고, 날 수 없도록 부러뜨러버렸다.
소녀는 처참한 모습의 나무 드래곤에게 울면서 말했다.
"미안해, 나때문에 너까지."
나무 드래곤과 소녀가 지하 감옥에 갇힐 때, 레드 드래곤을 비롯한 드래곤 무리는 대책 회의를 긴급히 하고 있었다.
행여나 나무 드래곤이 드래곤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인간들의 편에 서서 드래곤이 있는 곳의 정보를 누설한다면,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다행인 건, 그 장작은 이 수뇌부의 위치까진 모른다는 거야. 내일 성에서 나오는 입구에서 대기하다가, 인간들이 장작과 함께 성 밖으로 나올 때, 장작을 먼저 브레스로 태워 죽인다."
"최대한 전쟁은 피해야 한다. 우리가 장작을 태워 죽이면, 아마 인간들도 겁을 먹고 한동안 잠잠해질 것이고, 그 사이 우리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인간들은 드래곤과의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아까 보니, 그 새끼 드래곤과 거지 계집이 가까워 보이던데, 계집의 목숨으로 협박하면 그 나무껍질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드래곤들은 교활하다고 하던데, 그렇게 될까?"
"어차피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되니, 내일 계집을 처형해버리죠. 그때 나무껍질이 어떻게 하는지 보면 답이 나올 거 같습니다."
"더러운 년. 지금껏 성 안에서 안전히 보살펴 줬더니, 우릴 배신하고 드래곤의 편에 서다니!"
지하 감옥에서 나무 드래곤과 소녀는 마지막이 될지 모를 대화를 했다.
소녀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내일 절대로 자기를 구하지 말라고 했다.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도망가서 사는 것만 생각하라고 했다.
나무 드래곤은 소녀를 등에 태워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상상 속의 자신은 더 튼튼하고 큰 덩치를 가졌고, 브레스를 뿜어도 멀쩡했다.
부러진 날개가 쓰려오자 나무 드래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다음 날이 되고, 소녀와 나무 드래곤은 마을 공터로 끌려 나왔다.
공터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소녀의 처형을 위해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 드래곤과 함께 끌려 나온 소녀를 향해 마을 사람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욕하기 시작했다.
나무 드래곤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간수의 포박을 뿌리쳤고, 소녀 앞에 서서 돌팔매질을 막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고마웠어. 나도 그때를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나무 드래곤은 뒤돌아섰다.
이미 경비대와 수색대는 창과 활을 들고 소녀와 나무 드래곤을 포위하고 있었다.
나무 드래곤은 심장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입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무 드래곤은 소녀를 등 뒤에 둔 채 인간들을 향해 마지막 힘을 다해 브레스를 뿜기 시작했다.
입은 끝부터 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무 드래곤의 입과 얼굴, 목을 따라 온몸은 브레스 불길에 의해 검게 타들어갔다.
하지만 나무 드래곤의 브레스는 약해지지 않았고, 온 마을을 불태울 만큼 점점 더 거세져갔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나무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서 온 다른 드래곤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녀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인간들은 나무 드래곤의 브레스에 당해 불탔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 달아났다.
나무 드래곤의 브레스는 지금껏 그 어떤 드래곤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드래곤들은 새로운 왕의 탄생과 그의 죽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무 드래곤은 이미 온몸이 검게 불타버렸고, 점점 입 끝은 재가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나무 드래곤의 입 끝은 브레스의 뜨거운 열과 압력에 의해서 점차 다이아몬드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무 드래곤의 온몸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변했고, 회색 재가 바람에 다 날리고 나자 그 형체가 모두에게 드러났다.
다아아몬드 드래곤이 된 나무 드래곤은 소녀를 등에 태워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인간들과 드래곤들은 그저 멍하니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잘 모르겠군, 적어도 죽진 않은 거 같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지켜줘서 고마워. 많이 아팠지?"
"이젠 괜찮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
드래곤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했다는, 아무도 믿지 않은 전설을, 소녀와 다이아몬드 드래곤이 시작하려한다.
둘은 그동안의 수모를 잊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복수를 하거나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저 평화롭게, 방해 받지 않고, 온전히 삶을 느끼며 살아가기로 했다.
이 세상의 새로운 강자가 탄생했고, 드래곤들은 당연스럽게 다이아몬드 드래곤의 명령을 따르게되었다.
소녀를 괴롭혔던 마을과, 수색대, 수색대 대장, 마을 사람들은 이미 모두 불타서 재가 되었고, 왕은 다이아몬드 드래곤과 소녀의 제안에 동의하여 평화 협정을 맻게 되었다.
성의 왕은 소녀에게 새로운 왕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소녀는 싱긋 웃으며 그 제안을 거절하고 다이아몬드 드래곤의 등에 올라탔다.
나무 드래곤이 상상했던 것처럼, 둘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