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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얌전한고양이 Aug 18. 2021

수습직원의 비애

연차? 교통비? 그게 뭐예요??

닦을 '수'에 익힐 '습', '학업이나 실무 따위를 배워 익힘, 또는 그런 일' - 표준국어대사전


나는 현장업무를 주로 하는 회사에서 수습기간을 보내고 있다. 2개월 차 수습직원인 것이다. 힘들긴 하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고, 급여가 너무 짜서 관둘까 싶다가도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거 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계속 다니고 있다. 돈만 보기보다는 하루하루 출근하는 과정에서 성실해짐을 느끼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깨작깨작 자기 계발을 하며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했던 말 중에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시간은 금이다'라고 바뀌었는데, 나는 퇴근을 하고 자기 계발을 할 때마다 이 말이 와닿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해도 참으로 차가운 현실에 유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수습직원에 대한 회사의 대우를 체감할 때이다. 근로자가 1년에 받을 수 있는 휴가는 15개이다. 하지만 우리는 법정공휴일 중 6일은 쉬게 해주는 대신에 이 15개에서 6개를 뺀 9개를 수습 3개월을 제외한 나머지 9개월 동안 주는 것이다.



그럼 수습기간은 휴가를 아예 못 나가느냐? 그건 또 아니라는 말씀.. 우리 회사는 무려 '주말 대체휴무제'라는 게 있다! 바로 토요일 또는 일요일, 즉 주말에 일을 하면 하루 당 주말근무수당 8만 원 또는 대체휴무를 준다..! 그래서 수습직원 주제에 감히 휴가를 나가고 싶으면 주말을 기꺼이 바쳐야 한다. 그렇다고 주말에 항상 일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회(?)'를 '얻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나는 얼마 전에 토, 일, 월요일에 가족 여행을 가려고 월요일에 쓸 대체휴무를 만들기 위해 그 저번 주 토요일에 일을 했다! 이번에는 월, 화요일에 타지에 사는 친구들 보기로 해서 그날 쓸 대체휴무를 만들기 위해 토, 일요일 둘 다 일한다고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에게 식비와 교통비를 지급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습직원에게는 교통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아~ 회사는 수습직원들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고 주유도 무료로 하는 줄 아는가 보다!


사실 이 수습기간 3개월 동안 연차와 교통비를 주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직원들이 언제 그만둘지 모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회사' 그것이 바로 우리 회사인 것이다. 직원들도 사업주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주임 1명과 2주 된 수습직원이 퇴사하는 걸 봤다. K주임의 말에 따르면,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네댓 명이 무더기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원에게까지 온전히 복지를 베풀기에는 위험성이 크니 3개월의 검증기간을 갖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나는 21년 최저임금 거기에 식비를 합산한 금액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 21년 최저 시급은 8,720원이다. 하루 근무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을 뺀 8시간이다. 일급여는 69,760원이다. 한 달에 평일이 22일, 주휴일 4일이니 총 26일이다. 69,760원*26일 = 월급여 1,813,760원이다. 여기서 하루 점심식비 10,000원, 평일 22일에만 준다면? 10,000*22 = 한 달 식비 220,000원이다. 1,813,760 + 220,000 = 2,033,760원이다.


뉴욕 양키스의 요기 베라가 한 명언이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다, 아직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 '세전' 2,033,760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후 급여는?



나는 식비를 기본급에 합산해서 받기 때문에 비과세액이 없다. 그러므로 세후 1,844,000원이다. 내가 실제로 받은 1,844,850원과 거의 비슷하다. 이렇듯 나는 3개월의 가난한 수습기간을 거치고 있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화나고 슬프고 비참함을 느끼지만, 딱히 내가 큰소리 칠만큼 업무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일단은 웅크리고 있다. 언젠간 평사원이 되고 나름 큰소리칠 수 있을 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업무를 닦고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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