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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얌전한고양이 Aug 18. 2021

시원 쌀쌀한바람 냄새

그것은 마치 물 같다.

최근까지 8월 중순이어서 많이 더웠다. 늘 폭염주의보가 뜰 정도였다. 일요일이지만 출근 준비를 했다. 딱히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휴가를 나가야 해서 주말 대체휴무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가, 이제 슬슬 진상을 부리던 여름이 가을과 근무교대를 하려고 그런가 아침의 공기는 시원 쌀쌀했다.


가을이나 겨울의 아침에 창문을 열거나 밖에 나가면 어김없이 훅! 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나는 이런 바람을 맞으면 얼른 콧구멍을 벌려서 힘껏 냄새부터 맡게 된다. 그러면 굉장히 상쾌하고 건조하며, 차가운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몽글몽글, 울렁울렁거리는 느낌과 함께 예전의 가을과 겨울에 있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초등학생 시절, 겨울에 눈이 내리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거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동네 천지에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걸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동네 친구들을 찾아갔다. 그러고선 같이 눈을 굴리며 놀았는데, 바닥에 쌓인 눈들은 경비 아저씨들이 치우거나, 차에 밟혀서 까맣게 되니 만지기 싫었다. 잘 뭉쳐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차 위에 쌓인 눈들을 쓸어모았는데, 이게 꽤 쏠쏠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을이 떠올랐는데, 그날은 이제 막 쌀쌀해지니 아이들이 교복 마이 위에 겉옷을 걸치거나, 그게 불편해서 마이를 안 입고 겉옷을 걸치기도 했다. 마이를 안 입고 겉옷을 입으면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나 선도부들에게 잡혔기에, 겉옷을 입고 싶었던 나는 항상 마이 위에 겉옷을 입었다. 그냥 입어도 골판지 같이 빡빡한 마이인데, 위에 겉옷까지 입으니 갑갑했다.


이렇게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런 추억들이 떠오르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내 얼굴에 부딪힌 바람들은 필사적으로 흩어지고 찢겨서 더는 쫓아갈 수도, 손을 뻗어서 잡을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물 같기도 하다. 손바닥으로 건져 올려도 손가락 사이로 주룩주룩 빠져나간다. 빨리 가을이 오고 겨울도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매일매일 시원 쌀쌀하고 몽글몽글, 울렁울렁거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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