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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얌전한고양이 Aug 18. 2021

해운대 건물 숲개미들

개미들은 베짱이를 바라봤다

K팀장 W주임 Y사원 그리고 나 네 명은 오늘 야외작업을 하기 위해 해운대의 한 번화가 한복판에 갔다. 50층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건물들이 빼곡하고 그 사이사이로 신호의 색에 맞춰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다녔다.


건물들이 나무고, 모여서 숲이 된다면, 사람들은 개미 같았다. 병원복을 입고 급하게 점심을 먹으러 가는 개미들, 정장을 입고 자동차 매장에 들어가는 개미들, 나무 틈 하나를 얻어 그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개미들, 만들어진 음식을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개미들, 그리고 땡볕에서 측량하는 우리 개미 네 마리.


하지만 개미만 있지는 않았다. 거대한 호텔 나무 앞에서 수영복 위에 샤워가운을 걸치고 걸어 다니는 암수 베짱이 한 쌍, 커플티를 입고 개를 산책시키는 암수 베짱이 한 쌍, 문신을 한 팔을 운전석 창문에 걸치고 배기구를 튜닝한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베짱이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이 점점 강해졌다. 마스크 속은 찜통이 되고 내 코와 인중, 턱은 땀범벅이 됐다. 그리고 마스크에서는 침 냄새가 났다. 마치 손등을 혀로 핥은 뒤 15초 정도 말리고 나서 맡았을 때 나는 냄새 같다.


그 와중에 차에서 내린 W주임은 베짱이들의 눈치를 보며 담배 필 곳을 찾았다. K팀장은 작업하다 말고 몸매가 다 드러난 청바지와 탱크톱을 입은 베짱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Y사원은 여자 친구가 있어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나는 K팀장과 부담 없이 베짱이를 바라봤다. "와 뭐고 뭐고!" 베짱이를 피해 담배 피우던 W주임도 헐레벌떡 달려와서 베짱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해운대 건물 숲 개미들은 베짱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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