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거북이 팀장
내유외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회사에서 일 한지 어느덧 2개월 반, 나는 문득 깨닫게 됐다. 똑같은 직급에 비슷한 또래지만 그중에서 유독 역할이 많고 책임을 많이 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K팀장이다. 사실 직급은 주임이지만 이미 내 글에는 K주임이 따로 있어서 혼동을 할 수도 있고, 실제로 직급만 주임이지 팀장급으로 일을 잘하기도 해서 나는 K팀장이라고 부른다.
그는 볼품없지만 꽤나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다. 양 무릎이 약간 바깥쪽으로 휘어서 똑바로 서면 X모양이 되는 다리, 볼 때마다 '곱베기'라는 말이 떠오르는 푸짐한 엉덩이, 튀어나온 배 위의 깊은 배꼽은 그가 매일 입는 흰 운동복을 조금 먹고 있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엉덩이와 뱃살이 출렁거리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내 입사동기 K형은 K팀장을 '빵디', 그리고 '카디비'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생각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오리 부리처럼 톡 튀어나온 입술, 입술 양 옆을 조금 그늘지게 하는 입 가의 볼살, 그리고 턱선을 가려주는 턱살이다. 입술만 보면 오리 같다가도 고개를 숙일 때 턱선이 턱살에 파묻혀 사라지는 게 꼭 거북이 같다. 그래서 나 혼자 오리 거북이 팀장이라고 부른다. 만화 캐릭터 중 하나를 실사화 해놓은 거 같기도 하다.
이렇게 헐렁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일처리가 아주 뛰어났다. 현장 일정을 본인이 직접 계획하고, 협력업체와 일정 조율도 직접 한다. 창고의 재고 관리, 직원들 휴가, 비용처리 관리도 한다. 그리고 남이 저지른 실수를 수습해준다. 매일 현장 사람들의 업무 결과물을 넘겨받고 하나하나 검수한다. 여기에 본인이 남들처럼 현장 나가서 하는 업무도 있다. 그 외,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무조건 K팀장을 찾아간다.
이렇게 많은 일을 떠맡아서 회사에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된 그는 사람들이 무시 못할 존재다. 나이 때문에 다들 반말은 해도 무시는 못 했다. 28살의 어린 나이에 이런 위치까지 오른 과정이 꽤 특이했다. 고등학교를 토목과를 나왔지만, 담임선생님이 측량 박사라서 측량회사 실습을 나간 걸 계기로 28살까지 군 복무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 내내 일을 하고 경력을 쌓은 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야간대학을 다니며 4년제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보기와는 다르게 정말 독종이었다. 내유외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그런 과정을 듣게 되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을 거 같은 반전 매력이 느껴졌다.
그래서 K팀장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우리 회사는 다들 편한 업무만 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 외의 업무는 잘 몰라서 쓰임새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정말 회사의 모든 업무를 다 할 수 있었다. 마치 다용도 칼 같은 사람이다. 그런 상황을 의식하고 나니 얼마 전 신입으로 들어왔던 띠동갑 형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본인 할 것만 배우고 그 외는 잘 배우지 않는다', '조금 손해 보는 거 같지만 남들이 신경 안 쓰는 거 조금만 더 신경 써도 돋보일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됐다. 사실 나도 내 업무 외에는 잘 안 배우려고 했었다. 사람들이 귀찮다고 잘 안 알려주려고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한다. 딱히 회사를 위해서는 아니다. 나도 오리 거북이 팀장처럼 다용도 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러면 나도 그 처럼 내유외강의 반전 매력이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