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홀로 보낼 수 없었다..
미친거야.
사서 고생을 하러 가다니.
정말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였다.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생각이 바뀌었다.
"미친거야."
"맞어맞어 미친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고생이다.
6박 7일 동안 산길을 걷다니.
말이 좋아 '트래킹'이지.
뭘? 뭘 트래킹(tracking) 한다는 거지?
알고 보니 'trekking' 이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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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했었다.
2007년 신혼여행을 네팔로 다녀오면서
히말라야 설산의 광대함을 느끼고,
내 언젠가 다시 이 땅을 밟을 테야..라고
약속은 했었다.
2008년. 2012년.
두 아이의 출산과 육아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와이프를 위로하고자
"둘째 돌쯤 되면, 당신 혼자 히말라야나 한 번 다녀와"
나는 그랬다.
와이프도, 애엄마나 아줌마를 떠나서
나와 똑같은 욕구와 욕망을 가진 인간인데,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라고,
그나마 남편은 '돈 버는 것'을 핑계로
적절히 회식도 하고 사람도 만나면서 사회 생활하는데,
'물론' 와이프도 애친구들 엄마들 만나서 수다를 떨지만,
20대에 꿈꾸던, 누렸던, 즐거웠던 자유들.
얼마나 아까울까...라고.
자아실현? 뭐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누리길 원하는 '자유', '독립' 같은 감정 누리게 해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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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솔직히 약속은 했지만, 설마설마, 했다.
혼자 히말라야라니.
내가 네팔을 안 가본 것도 아닌데,
그 험한 곳을 여자 혼자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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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일구이언(一口二言),
언행일치(言行一致),
싱거운 놈이 되지 말자는 '허세?' 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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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미미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계획은 시나브로 진행되고 있었다.
첫째는 시가에
둘째는 처가에
뭔가 구렁이 담 넘듯 농, 진 반으로 허락도 받았다.
어느 날
"나 티켓 끊어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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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짜 혼자 가겠다고?'
고민이 됐다.
현실적으로 6박 7일간 외국의 산중에
허름한 롯지에 여자 혼자 자도록 놔두는 것도
너무 무책임한 거 같고,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그때 그 억울함은 어쩌나 싶고,
이번에 가면 적어도 5년간 네팔 갈 생각은 안 하겠지라고 생각하니.
내 나이 마흔이 훌쩍 넘고...
보내긴 싫고.. 가기도 싫고...
아!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온갖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
우리가 결혼한지 지금 햇수로 7년 차인데..
신혼이라야, 첫째 임신하기 전 6개월,
그 후로 '둘의 이야기를 나누는 둘만의 시간'이 있었나 싶었다.
둘이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게 전부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아마 자식을 가진 많은 부부들이 그렇지 않겠는가.
'나와 너'는 없고, 첫째, 둘째 이야기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웃고, 울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질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되겠다.
힘든 여정을 거치며, 더 돈독해지고,
서로가 돌아보지 못했던, 챙겨야 할, 생각들.
아직 남아있는 지도 모를 '꿈'들.
이런 거 별 보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망설임이 줄어들었다.
사실 이 한 걸음 떼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겨우 며칠 휴가 내는 거지만,
눈치도 보이고, 휴가보상비도 만만찮다.
그래 '무소유'
다 버리자. 인생 뭐 있나. 싶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때,
할 수 있을 때 저지르자라고.
그리고, 시원하게 결제해부렀다.
백만 개의 별을 담으러
백만 개의 말을 나누러
백만 번의 눈을 맞추러
이제 '네 명'이 아닌 단지 '네 발'로.. '네팔'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