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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Aug 07. 2015

#4.어떤 신촌 약(藥)구매기

역대급 삽질 약사러간 썰. 이런 호들갑은 처음이지?

#. 모월 모일 11시 : 신촌

"약은 꼭 주변에서 사셔야 돼요. 

  멀리 가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점심 약속을 앞두고 신촌에 있는 병원을 다녀왔다.

12시 전에 복귀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탔다. 


"광화문요"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튼실해 보이는 형광 야생마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야생마의 빠른 발놀림에 멍멘탈의 리듬을 맡기며

겨우  500미터쯤 지났을까..


갑자기.. 생각이 나버렸다...


난 다급한 목소리로 버벅댔다.

"아.. 아.. 아저씨 가까운 약..약국으로 좀 가주세요."


택시기사는 대단한 미션이라도 받은 듯 

속도를 줄이며 약국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500m를 갔을까. 아저씨가 지나치게 두리번 대는 게 불안해서..

"없는 것 같군요. 그냥  가주세요"라고 하는 찰나... 


오른쪽으로 약국이 지나갔다..


나는 어찌나 배려심이 많았던지, 

아저씨가 그렇게나 슬로우모션으로 열심히 두리번 대고도 

약국을 찾지 못한 것을 덮어 드리기 위해...

입 밖으로 멈추라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묵언수행.exe)


그렇게 1km를 지났을까? 아현역에 가까워진 무렵.

기사가 "여기 약국이 있네요"라며 차를 세웠다. 

"잠시 약만 받고 올게요"라고 강조하며 미터기를 켜둔 채 약국으로 들어갔다.


앞에 3명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바심이 났다.

왜 요금을 주고 택시기사를 먼저 보내지 않았냐고?

불경기에 꽉 막힌 광화문까지 가는 손님을 태운 

택시기사의 희망적 기분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재벌마인드.txt) ... -_-;


내 차례가 되었다. 약사는 처방전을 보더니.

"이것은 병원 근처에서만 판매하는 약들입니다"

라고 했다. 허허허.. 허허.



그동안 야생마는 어디까지 달려갔을까?

야생마는 왜 쉬지 않는 것일까...

택시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기다려준 마음에 보답하고자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유턴해서, 제가 탔던 곳에 내려주세요" 

택시 미터기의 야생마가 '이힣힝~~' 하는 포효(咆哮)를 질러대며 아현역 방면으로 내달렸다.

아현역 굴다리에서 아저씨는 유턴을 해서 다시 내가 왔던 신촌로터리 방면으로 향했다.

현대백화점을 지나 KFC가 보이자 나는 침착한 어조로 점잖케 정차(停車)를 요청했다.


"여기서 세워.. 주시겠어요?"


요금이  7천 원을 곧 넘을 기세였다.

손에 땀을 쥐며 미터기를 주시했는데, 야생마는 얄밉게도 100원을 더 달려버렸다.

8천 원을 내고, 900원을 거슬러 받았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뭔가 우울한 공기와 씁쓸한 찬바람을 맞아야 했다.

그냥 뭔가 내 삶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애써 차를 세운 곳에서 병원까지 아직도 200m 정도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돈 쓰고 시간 쓴 주제에 '무엇을 아끼려고 했던 건지...' 

나는 200~300원 아끼자고 이제 힘까지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병원에서 나온지 20분이 지난 지금 


다시 원점(原點)으로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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