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호리 Aug 05. 2015

#3.그 아침의 호들갑

맛 없는 커피 마시며 안동 가는 이야기

친척분이 상을 당해서 휴가를 내고 안동으로 가게 됐다. 차를 갖고 가자니 6시간 주행이 너무 부담돼 시외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첫차가 8:40분이라 아침 일찍 나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밤새 옷이랑 준비물을 챙겼다.


AM 6:40


맞춰둔 알람을 듣고 잘 일어났다. 개운했.. 개운한 줄 알았는데. 2-3분이 지나자 이불 밖 엄동설한의 공기가 느껴지며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저절로 이불속을 파고들어가 나른해져 버렸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어이 일어나야지’. 20분이 지났다. '어이 늦는데? 응?’. 이건 뭐 자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마흔을 앞둔 젊은이가 애처럼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할 때는 깨끗이 이쪽 저쪽 모두 닦고 머리 빗고 옷을 입ㄱ~~거웅르 -_-;


매우 분주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후다닥 입고 머릴 말리는데. 이 바쁜 와중이지만 날 지극히 사랑하는 아내가 날 사랑한 나머지 오뎅국을 끓여놨다. 뜨끈하게. 푸드파이터마냥 대충 두어 번씩 씹어 맛있게 먹었다. 여보 고마원.


현관을 나가는데 오랜만에 양복을 입어서 그런지 뭔가 영 어색하다. 심지어 결혼식 때 산 양복이다. 몇 년 새 키가 줄었는지 바지단이 구두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다. 동네 다 쓸고 다닐기새. 심지어 한쪽은 약간 끌린다.


내 다리 왜 이럼? 짝짝이임?


“키높이 깔창!!”


허겁지겁 어떻게 찾아서 집어 넣었는데 내 발이 들어갈 공간은 겨우 2cm… 일단 방법이 없어서 구겨 넣고 나왔다. 신발끈을 조절하면 될 것이란 믿음으로.


잘못된 믿음이었다. 내 걸음걸이는 마치 하이힐을 처음 신은 시골처자 같았다. 삐딱빼딱. 중국의 '전족’ 같기도 했고. 여하튼 어색한 검은정장에 어색한 총총걸음으로 나는 전철역으로 뛰어갔다. 맘이 넘 급했는지 복장은 젠틀맨인 주제에 뒷사람을 위해 문도 안 잡아주는 무례함이 범하기도 하고 부끄러워 다시 총총 뛰기도 하면서 겨우 2분을 남겨두고 플랫폼에 도착했다.


신발끈을 고쳐맸다. 최대한 느슨하게 맸는데 여전히 아팠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서 키높이 깔창을 꺼낼 수는 없었다. “키높이 깔창을 한 상태에도 키가 높지 않은 사람이 키높이 깔창을 넣었다는 사실을 이 전철 승객들에게 알려성 안돼!!!”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 내가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조금만 더 참자.


전철을 올라탄 나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핸드폰을 꺼내 들어 남은 시간을 확인하기로 했다. “오.. 마이…젠장”. 버스 출발시간이 8:40이 아니고  8:30분이다. 뭐니 나의 이따위 인지 능력이란. 전철 도착시간은 8:27분. 이 깔창과 함께라면 난 이미 글렀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렸다. '이미 어를리(Immediately)’


이노무 전철역은 계단이 이리 많은가. 전족(纏足)을 가진 한국의 한 남성은 울면서 계단을 총총 뛰어 올랐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얼마나 쪽팔릴지를 생각하며 그 어색한 걸음에도 신중함이 베어있었다. 겨우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잡기 어렵다는 출근시간 경기도 고양시의 택시를 잡으려 팔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할랑한 그의 양복 깃자락은 바람에 나비처럼 나부끼며 한편의 승무가 되었다.


여하튼. 택시를 겨우 잡았다. 정말 다급한 목소리로 마치 응급차에 올라탄냥 “기사님 버스터미널요!!!!!!!"라고 허덕이며 말했다. 기사는 구국(救國)의 임무라도 받은냥 엑셀을 강하게 밟으며 드리프트 수준의 유턴으로 버스터미널을 향해 내달렸다. '허-억. 하-헉’ 숨을 가다듬은 나는 신발 끈을 고쳐 매기로 했다.


하핳하핳ㅎㅎㅎㅋ.

이게 웬일. 너무 안 신던 구두라 그런가. 신발끈이.

ㅎ하하하하하 신발끈이 뚝 끊어졌다. 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ㅜㅜ


그러니 쉽게 포기가 되더라 ㅋㅋㅋ 빨리 버리자. 깔창을 빼냈다. 마치 암덩어리를 제거한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바지단? 허리춤을 좀 더 위로 추켜 올리면 된다. 좀 배바지 같지만 괜찮다. 다리 길어 보이고 좋지 뭐. 니트로 가리면 되지 뭐. 시원하게 꺼내 택시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나의 이런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본 기사가 긴장이 풀렸는지. 자세를 흩트렸다. 액셀레이터 소리도 줄어들었다.


어느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동댕이 쳐놓은 깔창 두개를 들고 터미널로 뛰었다. 입구로 내달리는 그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치 불법무기라도 소지한 것 같은 기분에 물건을 감추고 싶었다.


헉헉대며 올라온 대합실. 검은 양복을 입은 키높이 깔창을 숨기듯 든 키 작은 남자 사람에게 여유를 부리며 앉아있던 군인, 노인 , 아주머니의 시선이 옮겨졌다. 아하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티켓 자판기에서 표를 끊었다. 이래 봬도 저기 서울 특별시라고.. 그 뉴미디어... 디지털 미디어시티..도시 직장인이라긔요… 아하핳. 서울서 키높이 깔창 사가는 안동사람 아닙니다.


그 난리를 쳤는데. 15분이 남았다 -_-;

택시기사 아저씨 '초하야이(超はやい)’ 데스네..


시간이 이 정도 남았으면 여유를 좀 부려볼까. 난 멋쟁이 뉴뇩커니까.

두개의 커피숍이 있었다. 난 냉철하고 오랜 고민 끝에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들고 차에 올라타 글을 쓰기로 했다.


아 그 신발 깔창요? 버렸어요.

버스터미널 1층 입구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치듯.


발암물질.

매거진의 이전글 #4.어떤 신촌 약(藥)구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