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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호리 Feb 27. 2019

치앙마이 날씨는 하와이급!

치앙마이가 좋은 이유 10 (2) 날씨


2003년. 처음으로 태국을 방문했을 때다.


엄청난 설렘과 기대감으로 공항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정말 1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헉”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밖에서 들어오는 열기.. 아니 거의 화기(火氣)에 가까운 뜨거운 바람과 습하고 찝찝한 기운이 내 온몸을 감싸고 내 콧구멍과 목구멍, 귓구멍과 똥구먹 바짓가랑이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들떠있던 기분을 지하 12층까지 끌어내렸다.


더워서 죽은거니? 태국동물원의 한 듣보잡동물.. 무슨 피그인데..


심지어 당시 시간은 밤 11시 30분. 해가 떨어진 지 여섯 시간이 지났으면 상식적으로는 조금은 더위가 식혀졌어야 하는데, 이 나라는 얼마나 덥길래 이지경인가 했다.


더위로 유명한 대구(a.k.a 대프리카) 출신인 나인데도..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구는 아무리 40도를 찍어도 조석(朝夕)으로는 그래도 살만했다.


하지만 당시 방콕은 정말 더워도 너무 더웠다. 아침부터 더웠다. 밤까지 더웠다. 살갗을 벗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때 내가 느낀 태국은 그런 곳이었다. 더운 곳.. 넘나 더운 곳.. 아 “동남아”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일할 수가 없어서 게으르고 못살고 발전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by dooholee 2019. chiangmai


하지만 요즘 한국이 너무 더워서일까? 아니면 전 세계적 이상 기후로 동남아 기온이 내려간 것일까.. 아니면 너무 자주 간 덕에 이곳 기온에 적응된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태국에 가도 그렇게 숨이 턱턱 막히지는 않는다. 물론 덥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역치 수준의 더위를 경험한 자들이 누리는 특권 같은 것인가..


그런데, 그런 수준을 넘어서서 ‘치앙마이’는 내가 알던 태국의 날씨가 아니었다.. 일단 오늘의 날씨 한번 보실까.


2월 25일 오전 10시경, 태국은 오전 8시 날씨


응?!?! 내가 뭐 잘못본거 아닌가??

방콕이 28도, 치앙마이가 18도??


같은 나라의 아침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나? 불과 비행기로 1시간 떨어진 곳이다. 10도 차이라니..


말이 됨??


근데 말이 된다. 치앙마이는 그러한 곳이다.

심지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자정에는 약간 쌀쌀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사시사철 하루하루 날씨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현실세계 파라다이스 ‘하와이’ 힐로가 15도다..

하와이는 그냥 딱 가면 좋다. 미세먼지 0이고

덥지도 춥지도 않고 너무 공기도 좋고, 비도 안오고

판타지적으로 막 쌍무지개 뜨고 그렇다.


치앙마이가 하와이랑 비슷?


웅..웅.. 뭐 그렇다고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엔 우기때 기온은 꽤 비슷하다. ‘20도 중후반~30도초반’ 비가 미친듯이 와서 말이지.. ㅎㅎㅎ 8~9월엔 강우량이 200mm 이상으로 하루종일 비가 올 수 있으니 조심. 한국 장마철 같은.. 서울은 7-8월 350mm 수준.


출처 : 우남씨 블로그
확실히 방콕이 3~4도 더 덥고. 비도 많이 온다.


2~3월은 건기라 최저기온이 15~17도로 많이 쌀쌀할 때이고 우기로 들어가면 최저기온이 평균 24도 정도로 올라간다. 24도면 한국에서 보통 한여름의 “에어콘 설정” 온도니 더운편이 아니다. 최고기온은 오히려 더 떨어져 30도 초반이 된다.


나는 렌터카를 몰고 다녀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크게 덥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특히 이곳은 나무 그늘이 많고 실내 에어컨이 워낙 빵빵해서 더위를 잘 못 느낀다. 또 야시장이 워낙 잘 돼있어서 밤에 많이 다니다 보니 더위 때문에 힘들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도시 전체가 초록초록. 나무가 엄청 많다.


게다가 만약 내가 이곳에서 산다고 가정해보면, 보통 오전 7-9시 사이 출근, 오후 6-8시 퇴근이니, 사무실이나 학교 등 실내에 있는 시간엔 덥고 출퇴근에는 시원한 셈인 것이다. 일교차가 득이네?


이렇게 좋을 수가?!


퇴근 후 밤시간에는 매일 가을 선선한 초가을 날씨의 축제가 열리니.. 이곳이 천국일세.. ㅠㅠ


긴팔 남방을 입은 치앙마이 어린이와 긴바지 내딸래미


그늘진 곳으로 가면 정오에도 약간 초가을 느낌이랄까? 그렇다 보니 사람들 옷차림이 매우 다양하다. 긴팔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오토바이 운전자 중엔 목도리를 한 사람도 봤다. 오히려 하늘하늘 얇은 옷차림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


목도리를 한 오토바이 운전자. 까만헬멧
수영을 시도했다가 너무 추워서 포기한 아들

오후 6시, 해가 떨어지고 나면 급격히 기온이 떨어져, 일과를 마치고 온 아이들이 추워서 수영을 못할 정도다. 실제로 평소 물에 들어가면 나올줄을 모르던 애가 몇 분 놀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오후 10시경, 추워서 점퍼를 착용한 우리애들
마누리는 패딩까지 입음. 앞에 아가씨는 청잠바


우기에는 어떨까. 내가 치앙마이의 우기는 잘은 모르겠지만, 5월~6월에 푸켓이나 후아힌 같은 곳을 여러 번 다녀본 결과.. 나쁘지 않다. 스콜성 비라는 것이 한번 시원하고 빡세게 내렸다가 금세 해가 쨍쨍 뜨니 거리의 미세먼저도 청소하고 적절한 습기도 만들어지고 좋은 점이 있다.


푸켓 6월 초, 갑자기 비가 왔다가 그침


오히려 이곳은 볕이 많고 비가 많이 오다 보니 식물이 잘 자라고, 식물이 많으니 곤충도 동물도 많고 자원이 넘나 풍부해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걱정이 없다. 우리가 보릿고개에 굶어 죽을까 얼어 죽을까 걱정하며 감자 고구마 묻어두고, 짠지 담아두고 하는 거랑 비교가 된다.


그랬다.. 이 사람들 너무 풍족하고 여유로워서  당장 내일 먹을것을 걱정하고 빨리빨리 생존해야했던 우리가 봤을때 느릿느릿 게을러 보이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바나나와 코코넛이 막 떨어지고, 고기와 생선이 넘쳐나고, 밭농사 논농사 삼모작 사모작 하고..


생각해보니 정말 대박이었네.. 적당히 살아도 걍 다 ‘먹고는’ 살고, 불교국가라 윤회를 믿으니 그냥 그냥 그렇게 만족하고 살아도 되지 않았을까..


길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코코넛


지금까지 정수라의 노래 <아! 대한민국>에 나오는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은 불만 갖지 말고 살라는 계몽가였다. 우리는 그게 최선이고 진리인 줄 알고 살았다..


나 역시 첫 해외여행 전에는 우리나라만 뚜렷한 사계절인 줄 알았다. 다른 데는 희미한 사계절이거나 냉대거나 온대거나.. 뭐 그럴 줄 알았다. 사람이 어떻게 사나 싶었다. 뚜렷한 사계절이 무조건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뚜렷한 사계절 따위


게다가 요즘 한국은 봄가을은 거의 없고 춥거나 덥거나인데, 이거 뭐 옷도 몇 번 안 입으면 새로 사야 하고, 계절성 레저나 취미는 지속적으로 즐기기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관광산업도 한철 바짝 장사하다 보니 늘 바가지에 콘셉트도 철학도 없고 퀄리티도 엉망이 되는 것이다. 철 지난 강원도 스키장 주변에 가보면 유령 가게들 엄청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망고스틴 1kg 1700원

<조국찬가>에 나오는 ‘오곡백과(五穀百果) 풍성한~’ 이란 대목도.. 세상물정 모르고 한 말이었다. 여긴 오곡백과가 넘쳐나다 못해 발에 밟힐 지경. 한국에서 귀한 무화과나 망고 백향과 이런 게 너무 싸고 흔하다. 두리안, 망고스틴, 로즈애플, 스타후룻, 드래곤후룻, 파파야, 리치, 잭푸룻, 람부탄, 아떼모야, 구아바, 스낵파인... 이름도 다 못외울 지경이다.


한국과 일본에만 나오는 특산물인 줄 알았던 딸기는 치앙마이 특산물이기도 한데, 크고 단 상품이 2팩에 겨우 3천 원이다.


치앙마이 특산물 딸기 한봉다리 50~70바트


곡식도 흘러넘친다. 태국은 인도에 이어 전세계 쌀 수출 2위 국가다. 무려 1100톤의 쌀을 수출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의 부엌이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다. 그러니 식당에 가면 어떤 음식을 시키든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막퍼준다. 고기도 야채도 과일도..


100% 타이백귤 착즙 쥬스. 30바트
90바트(3000원) 스무디볼.. 아낌이 없다
생과를.. 3000원에 이게 가능해?
유바리 메론.. kg에 5000원


성경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흘러넘치고

오곡백과 풍성한 곳은 바로 이 곳이었다.


이곳은 정말 축복 받은 땅이다.


진짜 꿀이 흐른다. 롱간허니 쫀득하고 매우 달콤
너무 맛있었던 아이스크림 + 꿀과 화분
과일이 남아돌아 유기농 쨈으로



PS. ** 천천히 쓸려고 했는데, 아는 동생이 제 글을 보고 당장 치앙마이 티켓을 끊는 바람에, 먼저 알려드릴 사항이 있어요. 나중에 '치앙마이 안좋은점 10'을 쓸 계획이었거든요. 그중 하나가 '미세먼지' 입니다. 이 천국 같은 곳에 웬 미세먼지냐구요. 이 지역은 밭에 난 잡초나 잡목을 태우는 '화전(火田)'을 하거든요. 특히 2~3월이 화전기라 공기질이 매우 안좋습니다. 참고하셔요!


https://abnb.me/e/d466nCPm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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