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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Oct 24. 2017

요리하는 날

미역국 끓이기

 나는 요리라는 것을 할 줄 모른다.


 요섹남이 되겠다는 다짐은 수차례해봤지만, 나랑 안 맞는다는 것을 늘 느낀다. 점점 작아지다가 이젠 포기했다. 방송엔 왜 그렇게 요리 잘하는 남성들이 많은지 나같은 사람을 더 위축시킨다. 

 라면과 김치볶음밥 정도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요리에 포함한다면 나도 요리하는 남자로 자격이 있을 것 같긴 하다. 아무리 쉽게 생각한다 해도 나에게는 어렵다. 도전하기에 벅찬 그 세계... 먼 세계로만 버려둔다. 

 그런 요리의 넘을 수 없는 벽을 넘는 날이 오늘이다. 
 할 수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정성이 필요한 날이다.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여야 했다. 작년엔 나름 성공했는데, 올해는 어쩔까. 미세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다시 도전했다.

 새벽에 일어나 미역을 불려놓고, 쇠고기를 다진 마늘과 함께 들기름에 볶았다. 불린 미역을 물기 빼고 고기와 함께 볶은 후 물을 투입했다. 여기까지는 성공적인 것 같다.

 그 이후로 센 불에 끓이면서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 맞추기만 하면 끝이다. 

 미역의 양이 많아 자꾸 물이 넘친다. 점점 가득차가는 냄비를 바라보며 국간장과 소금을 5번에 걸쳐 간을 보며 투입했다. 
 
 첫 번째 맛. 그냥 비렸다.
 두 번째 맛. 간의 기운을 찾을 수가 없다.
 세 번째 맛. 긴가민가.
 네 번째 맛. 이게 맞나?
 다섯 번째 맛. 음... 미역국이 이 맛이었나?

 이 후로도 두 번 정도 국간장을 들이 부었다.

 물은 점점 쫄아들고 간은 점점 세졌다.

 겨우 완성한 미역국은 비주얼이 새까매졌다. 

 국물을 먹어보니 고기맛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아이들을 깨우고, 아내를 깨워 식탁에 앉힌 후 맛을 보라 했다. 

 일단 아내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여보. 고마워요."
 
 역시 나는 뭐든 하면 잘하는 것 같다. 안해서 그렇지 하면 잘한다. 시도를 안했을 뿐이라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위로로 나를 자평했다. 

 1년에 하루 있는 요리하는 날을 무사히 마친 것이 감사하다. 큰 선물과 화려한 꽃다발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담긴 새까만 미역국에 감동하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역국에 계란 후라이가 다인 식탁에서도 만족해하는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한가지 이상한 건,

 아내가 미역국을 먹으며 자꾸 물을 붓는다. 
 그냥 아내의 입맛이 그래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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