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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실이 Jan 08. 2024

결혼 좀 허락해 주세요. 제발!

부모님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통보해야 하는가.

2023년 새해부터 출장을 두 군데나 가야 하는 바람에 잠시 그와 10일 정도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의 동생들도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었기에 나와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그의 동생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와서 며칠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동생들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C의 남동생과는 간단히 전화로 인사를 건네본 적이 있었다. 그와는 달리 섬세하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남동생은 내 느낌상 나와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았고 C 역시 그의 남동생과 내가 잘 어울려 지낼 것 같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그렇게 출장을 갔다 오고 C와 언제쯤 볼 지 상의하기 위해서 연락을 하던 어느 날 평소와 같지 않게 갑자기 페이스톡이 왔다. 여자의 촉 발동 시작. 이거 심상치 않은데? 전화를 받았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가 있었고 심각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이쯤에서 그만 만나야 할 것 같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어제만 해도 사랑한다고 우리 둘이 잘 될 거라고 나에게 안심시켜 주던 그가 맞나? 이때부터 내 불안이 수면 위로 드러났던 것 같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갈등상황에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고 우선 그를 타일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보고 그에 마땅한 내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이 내가 크리스천인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이 있으셨다 했고 우리 둘 사이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훗날 우리 자식들을 기독교식의 교육을 가르칠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강하게 안된다고 하셨단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가 가진 종교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에 무교인 자기 가족들에겐 받아 들 일 수 없는 것 중 하나라고 하셨다고. 그래도 페이스톡으로 이별을 하는 건 너무나도 아닌 것 같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타협점을 찾아보자 제안했고 그도 동의해 며칠 후 직접 만나 이야기들을 풀었다. C는 종교에 반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무교이며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굳이 내가 종교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 보니 결혼은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닌 그다음 세대인 자녀들의 문제도 걸려있기에 좀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어찌 됐건 우리끼리 잘 타협점을 찾았다. 나는 내 종교활동을 하고, 그에게 내가 가진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놔두며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겐 교육차원에서 다양한 종교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자아가 형성되는 나이쯤 (대충 사춘기 때)에 자신들이 알아서 결정하게끔 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겨우 아슬아슬했던 첫 번째 이별에 한숨 돌리고 다시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더 사이가 돈독해졌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몇 번이고 그에게 한국에 계신 그의 부모님이 날 달가워 하시진 않으실 테지만 페이스톡으로라도 한번 얼굴을 비춰드리고 싶다 말했고 그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일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계셨던 건 아니다. C도 점점 이직을 하려던 시기였고 30대가 되었으니 자식의 연애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특이하게도 그의 부모님은 여태까지 전혀 그의 연애에 대해 관심도 가지지 않으셨고 더더욱 아무것도 물어보시지 않으셨다. 그래도 이젠 결혼 적령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떠보는 질문을 하셨던 것 같고 그때 C는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간단히 말했다고 했다. 아버지보단 어머니와 좀 더 대화하기가 편했던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나중에 자신이 미래를 함께 하고픈 여자를 데리고 온다면 어떻게 반응하실 거냐라는 질문을 했을 때, "우리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면 됐지."라고 말씀하셔서 그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다고 했다.


1월의 위기를 겪고 나는 더더욱 나의 생활을 그에게 맞췄었다. 12월부터 그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기에 3-4월까지는 그가 신경을 덜 쓰게끔 배려를 해주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그가 내 지역으로 오는 일보다 내가 그의 집으로 가는 일이 더 많았고 한번 있을 때 짧게는 4일, 길게는 9일 정도까지 같이 있어주며 물심양면 다 서포트해 줬었다. 면접하는 기관 또는 대학교에 맞춰 어떤 넥타이 또 정장이 어울릴지 하나하나 챙겨주고 공항에 그를 데려다주고 또 면접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마중 나가고 그 생활을 한 달 동안 했던 것 같다. 그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내가 해주는 배려를 너무나 고마워했고 나에게 뭐든 하나 더 해주려고 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미 그를 사위처럼 대해주고 계셨기에 따뜻한 말로 격려해 주셨고 분에 우리 둘이 하고자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서포트해 주시기 위해 많이 다독여주셨다. 그가 면접을 본 곳 중에 정말 괜찮은 대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에 합격이 됐다는 소식이 들렸고 내 일인처럼 너무 기뻐서 그가 합격했다는 말을 했을 때 저녁을 먹다가 펑펑 울었다.


"나도 안 우는데 자기가 왜 이렇게 울어."

"너무 기뻐서. 자기 고생한 게 생각나서 그래. 난 자기가 늘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 부모님도 너무 좋아하시겠다."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


이제 하나둘씩 걱정하던 일들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느낌이었고 우리에게 남은 가장 큰 숙제인 결혼허락을 받는 것만 잘 해결해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우리 관계에 더 몰두했었다. 사실 나는 계속 불안했지만 그의 앞에선 내색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땐 더 밝고 환하게 웃었고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모습만 보이고 그가 먼저 잠들고 나면 항상 거실에 나와서 소리 죽여 울던 날이 많았다.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표정이 너무 어두웠는지 아끼는 제자들이 하나둘씩 교수님 표정이 너무 안 좋다고 어디 아프신거냐며 물어보는 날이 굉장히 많았다. 2023년 1월부터 매일같이 서치엔진이던 유튜브에 '부모 반대'' '결혼반대'에 대한 글과 영상을 찾아봤다. 지금에서 드는 생각하는 건 이 주제 대해 현존하는 글들은 다 읽어봤을 것 같다.


이제 그가 이직할 곳이 확정이 되었고 나도 그가 이직하는 곳으로 함께 이사 가기 위해 내가 다니는 직장에도 적절하게 설명을 했고 비행기로 왔다 갔다 하며 수업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내 직장에선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맡은 의무는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설득을 통해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다. 그렇게 3월이 지나가면서 언제쯤 새로운 지역에 가서 같이 살 아파트를 찾아볼지 또 새로 이사 가는 지역이 그의 동생들이 있는 곳과 굉장히 가까워서 겸사겸사 그의 동생들과 만나기 위해 여행 계획을 세워보자라는 말에 그는 동의했지만 하루가 가면 갈수록 자꾸 얼버무리거나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다. 3월의 마지막날에 상쾌하게 일어나 같이 운동을 하고 간단한 점심을 만들어 먹고 늘 그렇듯 소파에 앉아 잠깐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가


"우리 헤어지자."


난 또 황당하여있었고 극한 불안감이 휘몰아쳐 흔히 말하는 지질한 모든 짓이란 짓은 다했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또 왜 이러는지.


"부모님에게 허락이나 축복을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저주를 받는 이 시점에선 아닌 것 같아. 축복까진 아니더라도 중립이라도 가야 두 남녀가 함께 살아갈 때 평탄할 텐데... 이건 아닌 것 같아."


저주를 퍼붓는 다라. 물론 부모님의 입장에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걱정하는 마음에 자식이 데려오려는 미래 배우자가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다. 그건 그분들의 자유니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시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는 내가 두 살 연상이라는 것에 대해 그의 부모님께서 정말 싫어하셨다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어느 것도 궁금하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여자애 나이가 몇이니? 하고 내 나이에 대해서 들으셨을 때 단번에 "절대 안 돼. 당장 헤어져."라고 하셨단다. 사실 C는 나에게 몇 번 자신의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마음에 안 드실 만한 점을 굳이 꼽자면 종교와 나이일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으니 그것도 장남이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라는데 심하게 반대하실까 했지만 저주라니. 잠깐의 일화를 덧붙이자면 C의 바로 밑에 있는 남동생도 한때 3살 연상의 여자친구와 교제하고 있던 때 전혀 결혼에 대해서 언급한 건 아니었지만 교제를 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그의 부모님이 뒤집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만났던 여자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인성에 문제가 있었기에 그의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남동생과 C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남동생의 전여자 친구를 반대하셨던 이유는 장녀이고, 홀어머니 밑에 자라서 그렇다고 하셨지 단 한 번도 '나이'에 대해서 언급하시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C에게 그때 남동생에게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우리가 그렇게 반대했었는데 네가 그걸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지금 여자를 만난다는 건 우리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C의 입장에선 날벼락과 같았던 것 같다. 그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과 갈등상황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늘 했었고 대부분은 성공적이었던 결정이었던 터라 그의 부모님도 늘 장남에게 거는 기대와 만족이 충족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남동생은 좀 더 섬세하고 감정이 앞선 사람이라 자라면서 부모님과의 충돌이 많아서 그런지 C보단 어렸지만 이런 관계갈등에서 좀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을 했다. 이 글 초반부에 그의 동생들이 잠깐 그를 보러 놀러 왔을 때 C가 남동생에게만 우리의 결혼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릴 거다 그런데 왠지 긍정적일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을 했을 때 그의 남동생은 부모님의 의견이 뭐가 중요하냐. 둘이 좋으면 하는 거지. 반대한다고 하면 "just xxxx them." (무시하라)라고 했단다.


둘 다 눈물 콧물 다 빼면서 새벽시간이 넘어가도록 이야기했다. 나도 축복받는 결혼이 하고 싶었지만 굳이 축복받지 못해도 C와 함께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 결혼을 내 부모님이 반대한다 해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마음을 돌리실 거란걸 난 100프로 확신했지만 C의 부모님은 절대 그러실 분들이 아니다. 워낙 말을 내뱉으시면 그대로 행동하시는 분들이라 물론 나는 항상 C를 통해서 그의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알았지만 내 무의식 속에 그의 부모님은 무섭고 "한다면 하는" 분들이었다. 꼴딱 밤을 지새우고 도저히 뜻을 굽히지 않는 그의 모습에 지쳐 난 그가 잠시 일 때문에 아침 몇 시간을 비운사이 그의 집에서 짐을 챙겨 운전을 하려고 했지만 그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와 자신이 잘못판단했다며 가지 말라고 붙잡아 결국 다시 화해를 했다. 180도로 변한 그의 태도에 난 어리둥절했다. 왜 다시 돌아왔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자기가 말했잖아. 왜 100프로 시도도 안 해보고 이렇게 지레 겁먹어서 끝내냐고. 생각해 보니 난 최선을 다해서 설득해보지도 않았고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아. 자기를 이렇게 보내면 내가 정말 후회할 거라고."


저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이 가기도 했다. 내가 이 남자를 어떻게 믿지? 벌써 이렇게 헤어짐을 말한 게 두 번째인데. 내가 어떻게 너를 믿어야 하냐고 난 모르겠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고 정말 굳건하게 견뎌내고 지켜줄 거라는 말에 둘 다 퉁퉁 부은 눈으로 만우절을 보냈다. 그러고 또 한 달 정도를 행복하게 (지금 생각해 보면 행복하길 바랐던 것 같다) 보내다 또 그가 이별을 고했다. 정말 지겨웠다. 자꾸만 번복을 하는 그에게 너무 실망도 했고 도대체 이 남자의 부모님은 어떤 존재이길래 이리도 30이 넘은 성인 남자를 휘두르려고 하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우습게도 이 세 번째 이별도 바로 대화로 풀었다. 지금 보면 우리 커플이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아서 서로의 싸움해결방식이 어떤지 몰랐기에 한 명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한 명은 상황을 어떻게든 종료시키려 했던 것 같다. 대화로 결국에 늘 풀어졌기에 이걸 다툼이었다고 해야 할지 이별이라고 해야 할지 참 애매하다.


이렇게 여러 번의 번복 때문에 우리 부모님 또한 너무 불안해하셨고 C에게 믿음을 가지실 수 없기에 우리 둘은 페이스톡으로 우리 부모님에게 먼저 결혼허락을 구했고 딸이 좋다고 하니 허락해 주셨다. 곤란한 상황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라는 말을 C에게 하셨고 그때부터 나보다는 그가 더욱더 적극적으로 결혼에 대해서 추진하기 시작했다.


"왜 또 나랑 헤어지려다 마음을 바꾼 거야?"

"자기랑 어제 그렇게 또 다투고 잠들기 전에 자기가 말했던 게 맴돌아서. 나중에 돌고 돌아서 늙어서라도 한번 보자는 그 말. 왜 우리는 그때에만 만나야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부모님의 존재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생을 살 수 없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

"우리 결혼하자 XX야. 우리 같이 할머니 할아버지 돼서도 잘 살아보자."


그의 저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녹아내렸다. 얼마나 엉엉 목놓아 울었는지 다음날 목소리가 다 쉬어버렸고 눈을 뜨기가 너무 힘들었다. "눈물이 너무 많아 공실이는." 나는 정말 눈물이 많다. 다소 인상이 차갑게 느껴질 테지만 정이 많아서 그런지 슬픈 감정이 들 때는 수도꼭지가 된다. 서로 주변 친구들에게 결혼을 할 거라고 알리고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기에 그가 살고 있는 지역 법원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몇몇 친구들과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작은 결혼식을 먼저 하기로 했다. 탄력을 받아서 결혼반지도 바로 사러 갔고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결혼반지를 픽업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근처에 있던 프랑스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셰프가 축하한다며 서비스로 주신 마카롱

"자기야, 우리 혼인신고 하는 거 자기 부모님께 알려드릴 거야?"

"정확한 날짜는 아니지만 우리가 결혼할 거고 대충 혼인신고를 몇 월쯤 할 거라는 건 최소한의 도리로서 알려드리려고."


혹시나 그의 부모님이 오셔서 우리를 막으시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컸지만 그래도 C 나름대로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들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떳떳하게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하루하루 커가는 그를 보면 측은지심이 들었고 나라도, 또 우리 가족이 그를 온전히 품어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힘들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나씩 결혼을 위한 새로운 과정들을 밟아나가기 시작했고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굉장히 설레기도 했다. 아, 드디어 나의 짝을 만나 진정한 성인이 된 거구나- 내가 그토록 바란 내 사람이 이 사람이구나. 그가 이직할 새로운 지역에 먼저 아파트들을 보기 위해 비행기도 티켓팅하고 동생들과의 만남도 약속 잡고 이삿짐센터도 알아봤다. 그렇게 5월이 됐고 불안감보다는 안정감이 자리 잡으려 할 때 갑자기 이른 아침에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 자기야. 일어났어?

- 카톡에 이제 깼어. 무슨 일 있어?

- 우리 부모님이 자기한테 전화 갈 거야.

- 뭐? 내 번호를 어떻게 아시고?

- 내가 알려드렸어. 반대하셔도 우리 혼인신고하고 결혼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며느리가 될 사람인데 한번 통화는 해봐야지 않겠냐고 하셔서 자기한테 동의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번호 드렸어. 물론 안 좋은 말도 하실 수 있어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을 보거나 맞서긴 해야 하니까 차라리 빨리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


그리고 내 전화벨이 울렸다. 국가번호 82가 뜨자마자 알았다. 드디어 마주하게 되는구나 그의 부모님을.


- 지금 전화 거신 것 같아. 끝나고 내가 전화할게.


손이 덜덜 떨렸지만 차분하게 대답하려고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흥분한 목소리로) 어, 저기 나 C 엄마 되는 사람이야.

-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 세상에 이미 C가 미리 말해놨네... 어휴 당신이 좀 얘기해 봐.

- C의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 네, 아버님. 제가 먼저 연락도 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전화로 이렇게 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 죄송할 필요 없어요. 우린 아가씨 못 받아들여요. 아가씨여서 그런 게 아니고 우리 집안은 절대로 연상은 들일 수 없는 집이에요.

- 당신은 뭘 자꾸 존댓말해? 어떻게 여자가 나이 어린 남자를 만나 훨씬 동생뻘이나 되는 애를! 생각이 박힌 애면 어린 남자를 만나면 안 되지! 어디서 나이 많은 여자가 어린 남자를 만나!!!


그의 부모님과 첫 만남은 모욕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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