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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실이 Jan 10. 2024

검증도 안된 너 따위가 감히 내 아들과 결혼을 해?

결혼반대. 아침드라마 작가님들은 제게 연락주세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C의 부모님과 맞닥뜨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내가 기억나는 대화들을 토대로 써볼 예정이다. 처음 C의 부모님이 나에게 전화를 거신 이후부터 줄곧 악몽을 꿨었다. C 또한 알았다. 결코 좋은 말이 오고 가지 않을 거란 걸. 그래도 그때의 나는 그의 말에 동의를 했던 것 같다. 그래, 어차피 맞을 매 일찍 맞고 똥 밟았다 생각하면 되지 뭐! 반대하셔도 얼마나 심한 말을 하실까 그래도 '남'인데. 사실 2023년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기억이 별로 없다. 신기한 건 우리의 뇌가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하는 생존본능 중에 하나가 아프거나 좋지 않은 기억들을 지워버린다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첫 통화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편의상 C의 어머니를 빨간색으로 하겠다. 그의 아버지는 첫 통화에선 꽤나 점잖게 말씀하셨다. 줄곧 그의 어머니가 화를 내실 때 옆에서 "아가씨가 알아서 C와 헤어져요.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라는 말만 반복하셨다.


-아니 뭐 이야기 들어보니까 만난 지도 그렇게 얼마 되지도 않았고, 뭐 소개팅 앱에서 사람을 만나? 그게 말이 되는 만남이라고 생각해? 그런 앱으로 만나면 상대방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안다고? 근본도 없고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결혼을 한다는 게 말이 되니? 또 우리 아들은 아직 한창일 때야. 결혼할 때도 아니고 얘가 너무 연애경험도 없고 순진해서 뭘 몰라서 휩쓸려서 이러는 것 같은데 아가씨가 생각이 박인 여자라면 남자가 이렇게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옆에서 제대로 얘기해 줘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말씀하십시오.

-C가 정말 뭘 몰라서 하는 얘기야. 그리고 이야기 들어보니까 뭐 악기 한다던데. 악기 하는 사람이 왜 과학 하는 사람 만나? 또 XX사람이라며? (내가 가진 국적에 대해서 얘기하신 거다) 그럼 그 나라 사람 만나야지 왜 한국사람을 만나려고 하는데? 우린 외국인 싫어해! 한국사람이 좋다고!!

-아가씨가 알아서 헤어져 줘요 우리 아들이랑.

-당연하지. 원래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성숙하고 철이 일찍 드니까 알아서 헤어져줘야지. 그렇고 말고. 그리고 연상여자 만난다고 하면 남들 얼굴 못 봐 쪽팔려서!

-... 어머님 아버님께서도 들으셨듯이, 저희는 헤어질 생각이 없습니다.

-어디서 뻔뻔하게 내 아들이랑 결혼하려고 해! 당장 헤어져!

-더 이야기할 것도 없을 것 같네요. 우린 할 말 다 전했습니다. 관계 정리해요.



그렇게 당신들이 할 만만 하시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으셨다. 어느 정도의 반응일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항상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공손하고 남에게 최대한 피해 주지 않고, 내가 손해 보더라도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살아왔는데 얼굴을 보지도 못한 낯선 사람들에게서 이런 식의 말들을 들었던 게 충격이었다. 전화를 끊고 가보니 전화기를 들고 있던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던걸 깨달았다. 멍하니 있다 보니 C에게 전화하는 걸 깜빡했고 그에게 전화가 와서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부모님과의 통화에서도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여보세요?"라는 말을 듣고 목놓아 울었다 엉엉.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몇십 분 내내 울기만 하니 그가 도저히 안 되겠었는지 있던 일정들을 다 캔슬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운전해서 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슬펐는지.. 그가 도착하자마자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 울지 마."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나를 달래줬었다.


이상하게 혼자 남는 게 너무 두려워 그에게 가지 말라고 했고 다행히도 주말이 껴있었기에 그는 며칠 나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의 부모님께서 대충 무슨 말들을 하셨는지 그에게 전했고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과하기만 했다. 이런 식으로 나에게 상처를 줄지 정말 몰랐다며 스스로 자신 부모님에 대해 실망하며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둘 다 부둥켜안고 울다가 조금 진정이 되니 다시 웃으며 우리가 계획했던 것들을 다시 확인해 보고 나쁜 기억은 뒤로한 채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평범하게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며칠을 보냈다. 마지막날 넷플릭스를 둘러보던 중 영화 '사도'가 있길래 그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함께 보았다.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옆에서 간헐적으로 훌쩍거리는 게 들려 옆을 보니 그가 울음을 참고 있었다. 영화 '사도'에서 나온 영조가 사도세자를 위한 사랑이 C에게는 자신의 아버지가 연상이 많이 되었다고 했었다. 사실 그의 부모님에게 큰 아들은 아직 그분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제 고3아들이었지, 성인남자로서는 보지 않으셨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하셨을 때 C가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한 아이라고만 생각하시고 믿으시는 것 같았다.


C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감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아니, 깊은 속내에서는 감정적인 것에 대한 결핍이 있고 갈구했지만 이성적인 사고로 덮어두려 했던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단 한 번도 그의 가족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던 다 큰 남자가 내 앞에선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그의 부모님과의 통화에 적잖이 충격을 받아 슬펐지만 연인이 이렇게 아파하니 그를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호흡이 조금씩 일정해지니 그의 입에선 충격적인 말이 나왔다.


"아빠가 내가 너랑 결혼하겠다고 하니 칼을 들고 찾아와서 날 죽일 거라고 하더라."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자기 자식을 죽일 거라고?


그제야 정말 실감 났다. 이분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대부분 자식의 배우자를 반대하는 부모님의 경우 한분이 반대를 한다면 다른 분은 중립이거나 마지못해 같이 동조를 해주는데 이분들은 정말 똑같이 나를 싫어하셨다. 아니 저주하시고 증오하셨다. 자신들의 착하고 잘난 아들을 낚아채려는 꽃뱀 같은 여자로 취급하셨고 이건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 정말 나를 꽃뱀으로 몰고 가셨다는 정황이 발견됐다.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나와 정말 가까운 동생과 C와의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해서 고민을 털어놓게 된 날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동생의 시아버지가 C의 아버지가 일하시는 대학교에, 그것도 굉장히 흡사한 과에서 재직하시고 또 따로 부부동반 모임들을 같이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생은 나와 알고 지내온 세월이 길어서 자신의 시아버지에게 C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나에 대해서 좋은 말씀 해달라고 부탁해 보겠다며 나는 조금은 걱정되었지만 그래, 뭐 얼마나 큰일이 생기겠어라고 생각했고 동생에게 너무 고맙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며칠이 안 돼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고 시아버지께서 C의 아버지를 만날 일이 있으셔서 서로 안부를 전하고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반응이 그저, "그렇군요. 세상 참 좁네요."라는 반응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께선 내 나이가 걸린다며 자기는 그럭저럭이지만 집사람이 너무나 반대한다고 동생의 시아버지께 말을 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정말 증오한건 어머님보다는 아버님이었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조금 타임라인을 뛰어보자면 얼마가지 않아 내가 C의 어머니와 만나게 되는 계기가 생겼는데 그 만남을 가지고 난 후 난 도저히 우리 결혼에 대해 확신이 없어져 그와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했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가까운 동생이 전화가 와서 대화를 나눈 걸 써보겠다.


-언니 잠깐 통화돼요?

-응 XX야. 무슨 일이야?

-언니 요즘 남자친구랑 잘 지내시죠?

-어.. 별 다른 일은 없었는데. 사실 C의 어머니를 만났어.

-진짜요? 내가 보기엔 언니랑 남자친구분이랑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오해 만들기 싫어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무슨 일인데 그래?

-언니도 알다시피 저희 시아버지랑 남자친구분 아버님이 같은 대학교에서 일하시잖아요. 저희 시아버지가 언니에 대해서 그분께 좋게 얘기하시고 나서 얼마 안 돼 저희 시아버지한테 "혹시 며느리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셔서 저희 시아버님은 며느리 연락처를 함부로 주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라고 물으셨는데 그때부터 언니 남자친구분 아버님께서, "우리 아들이 만나는 여자애에 대해서 며느님에게 물어보고 싶다. 듣어보니 우리 아들이 만나는 여자가 꽃뱀인 것 같다. 사실 우리 아들은 결혼생각이 하나도 없는데 자꾸만 옆에서 결혼하자고 보채니까 이 여자애를 도저히 떼놓을 방법이 없어서 엄마 아빠가 반대하는 척해서 이 여자 떼내주면 안 되냐고 부탁해서 우리가 이렇게 강경하게 반대를 하는 거다. 그래서 며느님에게 전화해서 도대체 이 여자애의 실체가 뭔지 물어보고 싶다."라고 말씀하셔서 시아버지께서 저한테 연락하셨는데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언니 절대로 그런 사람 아니고 그분들이 이상한 거다라고 말씀드렸거든요.


사실 이 대화를 스피커폰으로 해놓고 C와 함께 듣고 있었다. 정말 갈 때까지 갔구나.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건 다 거짓말이라고 자신을 믿으라고 했고 자신의 부모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란걸 이제 뼈저리게 알았다며 착잡해했다. 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C의 부모님이 내 이름을 검색해서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 내가 나온 학교들을 다 알아내셔서 모든 곳에 전화를 해서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하시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직접 그의 부모님께 들었던 거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리자 보면 C가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셨단 이야기를 듣고 난 이 일이 정말 심각한 일이란 걸 자각했다. 차마 우리 부모님에게는 알릴 수 없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인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식을 죽이겠다니...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처럼 가족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주변 아시아 나라들에서 온 친구들에게 이 말을 했더니 다들 이런 부모는 처음 들어본다고 정말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말들 뿐이었다. 특히 동남아와 인도에서 자라온 친구들도 계급이나 가족들 때문에 반대하는 연애 또 결혼에 골칫거리인 친구들이 많은데 그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나라에서 자식이 마음에 안 드는 배우자를 데리고 왔으니 그 자식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사람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여러 가지로 글로벌적인 쇼크를 주는 이분들이 C의 부모님이라는 게 참담했다. 그가 너무도 불쌍했다. 이때부터 뭔가 그를 구해줘야겠다는 이상한 '구원자 마인드'가 생겼었고 더욱더 그와의 관계를 놓아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영화 사도를 보고 나서 그가 힘들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마자 무섭게도 내 핸드폰에 그의 어머니의 번호가 떴다. 또 나는 호흡이 가빠졌고 땀이 나서 도저히 받을 수가 없어 멀뚱히 바라만 봤다. C 또한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고 그렇게 놔두니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왜 전화 안 받니? 나 C 엄마다. 보면 전화 걸어라." 나는 전화를 걸었고 스피커폰으로 해놓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 헤어졌니?

-... 어머니 저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헤어질 생각이 없습니다. 어머님께서 절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건 알지만 C의 의견도 존중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저희는 함께 평생을 약속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 아들은 너랑 헤어진다고 했어!! 올해 1월부터 엄마 아빠가 마음에 안 드는 여자 하고는 결혼 안 하겠다고 우리한테 약속했어! 그리고 4월에도 이미 다 정리했다고 했고!!! 너 같은 여우가 계속 내 아들 붙잡고 있잖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나는 죄송하다고 했을까... 이제 와서 후회된다)

-그리고 내 아들이 마음에 약해서 너한테 말만 한 것뿐이지 걔 결혼할 여자애 있어. 예전부터 미리 집안들끼리 결혼시키기로 이야기가 오고 간 여자애가 있어. C도 다 알고 있으면서 너한테 말하기 미안하니까 안 한 거지 너랑 절대로 결혼할 마음 없어. 그리고 남자집안에서 이렇게 반대하면 결혼하는 거 아니다. 너 때문에 요즘 우리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폐인들처럼 살고 있으니까 빨리 헤어져.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는 또 말문이 막혔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리 내지 않고 우는 것 밖에 없었고 C는 자신의 엄마가 했던 말들에 대해서 차분히 설명했다. 자신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고 결혼얘기가 오가는 여자는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전혀 모른다고 자신을 믿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저렇게까지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며 말을 한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여태까지 31년을 살면서 알았던 부모에 대한 생각에 금이 간 듯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인다는 이야기에 정말 자신이 죽을까 봐 겁먹었던 건 아니지만 31년 동안 좋게 지냈던 자신의 부모가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란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정말 힘겹지만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어내면 우리의 관계는 더 단단해질 거라 생각했기에 그래도 우리는 함께 걸어 나가기로 했다. 이젠 정말 우리 둘밖에 없다고. 그렇게 그가 이직할 곳으로 가서 함께 거주할 아파트도 계약하고 그의 동생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좋은 저녁 식사를 하고 다양한 이야기들도 하면서 불편도 했지만 좋은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고 그는 그의 일정 때문에 다른 도시로 갔고 나는 좀 더 남아 친구들을 만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게 우리의 행복했던 마지막 기억이다.


그 이후론 지옥의 연속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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