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목 Jun 14. 2024

[인문] 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인생 상담 종결판

시위에 참여했다가 투옥되고 그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가 된 후에는 폐쇄 정신 병동을 개방형 정신 병동으로 바꿨다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학자 이근후. 그가 펴낸 책 중 <살 만큼 살았다는 보통의 착각>, <어디 인생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던가요!>, <괜찮아, 나도 그랬으니까>를 읽었었다. 이 책 역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산을 올랐으면 내려와야 하는 법이건만 지나놓고 보면 내려와야 할 때를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적당한 기회를 잊은 사람치고 내리막 길이 순탄한 사람은 보기 힘들다. 노욕을 떨치지 못해 그런 경우도 있고, 내리막 길을 오르막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서 그런 경우도 있다." 19쪽, 내가 누구냐 묻는다면


운명일까? 스스로를 알아채는 것에 대한 글을 읽다가 초 단위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제 오후 사직서를 썼다. 대충 면담은 끝낸 터라 하던 일을 마무하고 제출해야지 했다가 깜빡 잊고 그냥 퇴근해 버렸다.


깜빡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펼쳐든 책에서 맞닥뜨린 문장에 결심이 섰다.


'무엇이 두려워 오르고 또 오르려고 아등바등 했는지 모르겠다'라는 그의 말에서 비록 지금 내 처지가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지만 멈춰야 할 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냥 이렇게 될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써야겠다 수만 번 고민하고 썼는데 흔들리는 통에 괜히 속만 시끄럽게 하고 있었을지도.


70쪽, 왜 우리는 불행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을까


자신이든 남이든 '탓'을 하는 데에 따른 심리적 사례를 읽으면서 나는 '나'보다는 '남'을 탓하며 사는 편이겠구나 싶다. 현생에서 아쉽지만 오늘만 살 수 있을 형편이 되지 않으니 내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느라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 연속이다.


허나 이런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님에도(사실 시스템의 문제이긴 하지만) 나는 있지도 않은 누구를 찾느라 오늘을 참 피로하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내 삶의 중심이 나일 것이므로 부모도, 자식도, 동료도, 친구도 그저 지나치는 인연도 그 '누구'는 아님이 분명하다.


아, 책장이 넘어갈수록 끝도 없이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이 말인즉, 내가 사람이 덜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 고승인 경봉 스님이 "너는 그것을 버려라" 하셨다는데 놀랍게도 의미를 깨달아버린 그에게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정답이든 해답이든 코 앞에 들이대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 뻔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끝 내용은 정승우 씨만 보연 답답해하고 혈압이 끓어 오르는 내 심성을 꾸짖는다. 너는 바로 그것을 버리라고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기통찰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 강조하는데, 읽다 보니 자연스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생각났다.


136쪽, 사회는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사직원을 던진 지금 후회해도 늦었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당장 카드값이 조금 불안한 정도랄까,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 평가와 취업 이야기는 은근 각성하게 한다.


직장 내 갑질도 아니고 성격이 안 맞는 동료들 때문에 마음 부침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마 무시한 직장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퇴사를 하고 싶었을까?


이렇다 할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그냥 지쳤다는 걸 알았다. 왕복 50km가 넘는 출퇴근에 러시아워를 피하느라 평균 출근 시간이 7시 30분 언저리였다. 또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먹은 아침은 일어나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고, 그나마 날이 궂으면 심해지는 다리 통증에 근육이완제 양을 늘려야 했다. 그 결과는 죄다 늘어진 근육에 힘이라고 쓸 수 없어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려 놓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목숨을 내놓고 운전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결정타, 연거푸 이어진 두 차례 낙상은 어깨를 만성 통증에 시달리게 하고 있는 데다, 코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피딱지와 고름이 흡착되어 숨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으니 지칠밖에.


카드 값에 떨다가 목숨줄 놓겠다 싶어 사직원을 선택했으니 후회도 탓도 하지 않길 소망한다.


158쪽, 나를 평가하는 당신은 나를 얼마나 아는가


"그러니 지금 발버둥 치고 있는 모든 이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으로부터 낙제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그 평가가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나의 가능성은 나도 나조차 정확히 알 수 없어 미래가 되어야만 확인되는 법이다. 직장에서 밀려 났거나 사업에 실패했어도 괜찮다. 인간관계에서 실수했어도 끝은 아니다. 나를 평가하는 모든 잣대 앞에서 당당해 지기를 소원 한다." 161쪽, 나를 평가하는 당신은 나를 얼마나 아는가


아,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표를 내던졌어도 내 앞날은 나조차 모르는 일이고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될 테니 미리 쫄아서 후회하진 않기로 한다. 조금은 당당해질 수 있겠다.


"얼굴 아는 이야 천하에 가득하되, 마음 아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175쪽, 인연이 무엇이기에-명심보감


술술 잘 풀리는 실타래처럼 책장을 넘겨가다가 뜬금없는 인연 이야기에 가슴에 총 맞은 것처럼 휑한 바람이 뚫고 지나갔다. 얼마 전 메신저에 쌓여있는 이름들을 보며 1년이 넘도록 안부 한번 전하지도 받지도 않은 사람들을 정리했었다.


이중 스치듯 한두 번 만남이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수년간 봐왔던 지인이나 동료 친구들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날 일이나 연락을 주고 받을 일은 없겠다 생각해 미련 없이 지웠는데 저자의 이야기에 여러 생각이 뒤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락 한번 없는 이들에게 괘씸한 생각도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 얼마간 기분이 내려 앉는다.


172쪽, 인연이 무엇이기에


이 책은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법한 일들을 저자의 지혜 넘치는 혜안으로 간결하지만 큰 깨달음을 전한다. 읽었던 저자의 책 중에 단연 으뜸이다. 삶의 고민이 있거나 없거나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인생상담서의 종결판이라 하겠다. 강추한다.



#인생에더기대할게없다는생각이든다면 #이근후 #책들의정원 #서평 #책리뷰 #에세이 #인생상담 #철학 #북인플루언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