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모여 있는 현재

by 이성규

描山描水摠如神(묘산묘수총여신)

산과 물을 그린 것이 귀신같아

萬草千花各自春(만초천화각자춘)

모든 풀과 꽃이 저마다 봄이로다

畢竟一場皆幻境(필경일장개환경)

필경 이 모두가 한바탕 꿈이려니

誰知君我亦非眞(수지군아역비진)

그대와 나 또한 진짜가 아님을 누가 알리


題山水屛(제산수병) / 김수온


아무리 잘 그린 산수화 속의 풍경이라 할지라도 진짜가 아닌 가짜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인생도 그림 속의 경치처럼 하나의 환영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어차피 모두 사라질 테니까.


‘익스트림 딥 필드(XDF)’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우주의 가장 먼 공간을 찍은 사진이다. 2012년 NASA가 공개한 이 사진에는 132억 광년이나 떨어진 은하가 포함돼 있다. 즉,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XDF 속의 한 점은 132억 년 전에 반짝인 빛이다. 태양계가 형성된 것이 약 50억 년 전이니 그 빛이 출발했을 당시 지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천문학자들은 향후 50년 안에 우리은하 내에서 육안으로도 관측이 가능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보통 은하 하나에서 평균 100년에 한 번 꼴로 초신성이 나타나는데, 우리은하에서는 1604년의 케플러 초신성 이후 400여 년 동안 초신성이 폭발하지 않았다.

현재 초신성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별은 용골자리에 있는 ‘에타 카리나’다. 남반구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이 별은 태양 질량의 100배가 넘는 불안정한 별로서, 언제 폭발을 일으킬지 모른다. 만약 에타 카리나가 폭발을 일으키면 지구에서 밤에도 신문을 읽을 만한 밝은 빛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에타 카리나의 폭발 시 수십 일간이나 계속될 우주 쇼를 보기 위한 관광상품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에타 카리나는 이미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에타 카리나는 7천500년 전의 빛이니, 이 별이 어젯밤이나 아니면 1천 년 전에 이미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는데도 아직까지 그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극성은 옛날부터 항해자나 나그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허나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북극성 역시 800년 전의 빛이다. 즉, 우리는 13세기 초에 출발한 빛을 바라보고서 그 곳이 북쪽 하늘임을 알아차린다.

지금 우리 피부에 따스하게 와 닿는 햇볕은 약 8분여 전에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평균 약 1억 4,960만㎞이니, 빛이 1초 동안 진행하는 속도인 30만㎞로 나누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498초 정도 걸린다.

바로 우리 옆에 앉아 있는 가족들의 얼굴도 사실은 약 1억분의 1초 전의 과거 모습이다. 가족과 떨어져 앉아 있는 거리를 빛이 이동할 때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모습은 과거이며, 그 과거의 순간들이 촘촘히 박혀 현재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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