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생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의 첫 여름 텐트폴 라인업이 잡혔다. 작년 텐트폴 영화의 초라한 흥행 성적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았을까. 엔데믹 전환 후 처음 맞는 여름 성수기다. 그중 쇼박스의 <비공식작전>이 가장 먼저 공개되었고 개봉 20일 전 시사회라는 방법을 택했다. 통상 1,2 주 전에 시사회를 하는 것과 달리 홍보 시간을 많이 확보해 꾸준히 관객에게 어필하려는 행보로 보인다.
2023년 관객은 더 이상 "심심한데 영화나 볼까?"라는 말로 극장을 찾지 않는다. 3년 새 가파르게 오른 티켓값과 OTT로 쏠린 콘텐츠 수요 등.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분석하고 후기를 체크한 후 선택한다. 첫 주 성적이 변변치 않아도 입소문이 터진다면 <엘리멘탈>처럼 역주행하기도 한다. 꾸준한 SNS 홍보와 지인 추천이 중요하다.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첫 주자 <비공식작전>은 1986년 레바논 외교관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팬데믹 기간 해외 로케이션으로 모로코, 이탈리아에서 촬영해 30년 전 실화에 현장감,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한국인 피랍 구출 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모가디슈>와 <교섭>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기획되고 만들어진 세 영화는 각각 <탈출>(모가디슈), <교섭>, <피랍>(비공식작전)이란 제목을 달았다. 앞선 두 영화와의 기시감을 지우기 위해 납치와 구출이 연상되지 않는 제목으로 수정한 듯 보인다.
영리하게도 한국인 최초 외교관 납치와 21개월 뒤 생환이란 것만 실화에서 따왔다. 생사를 확인하고 어떻게 구출했는지 과정은 영화적 허구로 채웠다. 5공 시절, 대통령 선거와 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국익이 앞섰던 때가 배경이다. 공무원 하나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 국가와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의 마음이 명확히 대조된다.
흙수저 외교관과 거짓말쟁이 택시 운전사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이번 승진도 꽝이다. 5년째 중동과에 근무하지만 미국 발령을 꿈꾸던 외교관 민준(하정우)은 레바논에 피랍된 동료의 생존 신호를 받고 혈혈단신 비공식 작전에 투입된다. 이유는 미국으로 보내준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다만 공식 지원이 아니라 비공식 지원.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부담이 컸으나 그저 몸값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해 자원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현장은 전쟁터였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도착한 민준은 공항을 빠져나가는 것부터가 생존이었다. 인질 협상 돈을 노린 현재 경비대와 총격전 끝에 예정된 차가 아닌 한국인 판수(주지훈)의 택시에 탑승한다. 판수는 돈 벌러 나왔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일단 태웠으나 끼어들고 싶지 않아 승차 거부한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따따블에 혹해 민준과 동행하게 된다.
판수는 월남과 사우디에서 연이은 사기를 당하고 흘러 흘러 레바논까지 들어왔다. 이곳에서 택시기사로 생계를 이으며 버텨 온 의지의 한국인이다. 돈 되는 일은 뭐든 한다지만 사람을 믿지 못해 정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준과 얽히며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 나간다. 양아치, 사기꾼이 아닌 '건실한 청년'으로 대우해 준 사람을 돕고자 자신이 익혀온 생존법을 나누게 된다.
존엄성과 신뢰, 사명감
영화 <비공식작전> 스틸컷
영화의 끝과 시작은 '인류애'다. 한국의 안기부와 외무부의 보이지 않는 전쟁과 레바논의 내전. 안팎의 어려운 상황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납치된 외교관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파견된 또 다른 외교관과 현지인이 다 된 한국인의 우정을 그린다. 레바논의 택시운전사와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을 해낸 공무원이 만들어 낸 그야말로 미션 파서블이다. 실화를 재현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상상을 통해 드라마적으로 풀었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연대와 유머, 감동으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다.
무거운 주제라고 마냥 어둡지 않다. 버디물인 만큼 하정우와 주지훈의 티키타카 호흡으로 남남 케미를 선보인다. 김성훈 감독은 <터널>, <끝까지 간다>, 드라마 <킹덤>으로 하정우와 주지훈과 각각 호흡을 맞추었고, 두 배우는 <신과 함께>의 강림과 해원맥으로 만난 바 있다. 각기 다른 작품에서 만나왔던 세 사람의 하모니를 한 영화에 모았다.
우연히 이역만리에서 만난 동포는 서로를 믿지 못해 티격태격하다가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마음을 나누게 된다. 함께 모험을 떠나는 여정과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배신과 시련, 위기가 찾아오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믿음'이 있어 '용기'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소시민 영웅의 탄생을 지켜보는 훈훈함이 <비공식작전>만의 히든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