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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ug 16. 2023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비밀문서를 들고 튀어라

잘못된 국가 시스템에 희생된 사람들


<오펜하이머> 개봉으로 2차 세계대전 전후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이자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스탈린 피의 대숙청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상상을 덧씌워 메시지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193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실화는 아니다. 스탈린의 충직한 사냥개라 불린 실존 인물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예조프'가 떠오르지만 단지 허구일 뿐이다. 그는 '한 명의 스파이를 놓치는 것보다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초를 겪는 게 낫다'고 말한 장본인이다. 영화의 다양한 인물 속에 예조프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조직의 비밀문서를 훔쳐 달아난 군인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스틸컷

어느 날 비밀경찰 조직 NKVD 대위 볼코노고프(유리 보리소프)가 기밀문서를 들고 탈출한다. 조직에 충성했지만 자신은 그저 조직의 톱니바퀴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반역자 색출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상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다음은 자신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 되었다. NKVD는 내부고발자를 좇기 시작한다. 볼코노고프는 턱밑까지 따라온 조직을 조롱이라도 하듯 미꾸라지처럼 따돌려 숙청자의 유가족을 찾아간다.     


이들은 무슨 죄인 걸까? 반역죄로 숙청당한 사람들은 무고한 시민이었다. 가난한 농부부터 국가를 위해 실험 중인 과학자, 고위 관료 등 각계각층,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들여 자백할 때까지 고문했다. 하지도 않은 일, 처음 듣는 일, 일어나지도 않은 일, 계획하지 않은 일을 문제 삼아 고문으로 죄를 불게 만든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시스템을 유지다.     


NKVD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모진 고문 끝에 결국 숙청당했다. 인간다울 권리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이들의 이야기가 전국에 퍼지자 당의 위상은 공고해졌고 국민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 유리했다. 지목되면 재판 절차 없이 바로 수용소행이거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반역자의 가족이란 이유로 연좌제로 불이익을 받으며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국가 시스템에 희생된 사람들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스틸컷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잘못된 시스템에 희생된 사람과 용서를 다루고 있다.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폭력의 역사를 훑어본다. 고문에 쓰인 방독면과 빨간색의 유니폼은 [종이의 집]이 연상되며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잿빛 도시와 굶주린 사람들의 무표정 얼굴과 대비되며 뇌리에 박힌다. 역사 연구가 진행 중인 실화를 판타지로 가공해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를 더한다.     


볼코노고프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 자각하고 비밀문서를 빼돌려 탈출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구원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그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 볼코노고프는 멈추지 않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간다.     


숨 막히는 추격전은 볼코노고프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차오른다. 조직 내부에 있던 자가 외부로 나가며 목격한 참상은 잔혹함과 슬픔이 공존한다. 스스로 안티히어로가 되어 내적 갈등에 몸부림친다. 볼코노고프를 연기한 배우 '유리 보리소프'의 강렬한 표정과 몸짓이 러닝타임을 지배한다. 한국에는 <6번칸>으로 얼굴을 알렸다.     


영화는 시스템이 잘못되면 누구나 가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함을 보여준다. 시스템을 만든 것은 인간이고 이를 무너트릴 수 있는 것도 인간임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는다고 있었던 일이 사라질까? 여전히 망가진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 윤리적 책임 등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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