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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Sep 05. 2023

<잠> 몽유병 남편과 점점 미쳐가는 임산부 아내의 사투


신혼부부 수진(정유미)과 현수(이선균)는 반려견 후추와 함께 서로를 아끼며 곧 태어날 아기 생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누가 들어왔다”는 말을 잠꼬대처럼 하던 현수의 이상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병원을 찾게 된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물론, 냉장고에서 고기, 생선 등을 날것으로 마구 먹기 시작했다. 베란다를 쳐다보더니 떨어지려고 하질 않나 밤새 피가 나도록 긁었는지 피투성이 뺨은 밤사이의 전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검사를 해보더니 의사는 렘수면 장애라고 진단한다. 행동수칙을 지키고 약을 꼬박꼬박 먹으면 좋아진다며 지켜보자고 말하지만 현수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태어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부부는 지금부터가 전쟁임을 깨닫는다.     


상대는 밤마다 울어대는 신생아가 문제가 아니었다. 현수의 기행은 수진은 물론 아기의 목숨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현수는 지난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딴 사람 같아 낯설었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났다.     


옆에 잠든 사람이 남편이 아니다?     

<잠>은 몽유병처럼 보이는 기이한 행동을 간밤에 일을 기억 못 하는 남편의 잠버릇 때문에 단란한 가족의 삶이 파탄 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렸다. 자다 깨어난 사람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상황은 흡사 이중인격처럼 보이나, 영화는 빙의를 차용해 한정된 공간과 등장인물 사이에서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이어간다.     


잠이 들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남편은 출산 후 급격하게 달라져갔다. 그럴수록 모성애가 커지는 수진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결국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무당을 집으로 부르고, 무속인은 “남자 둘이랑 산다”라는 섬뜩한 말을 건넨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현대 의학이 소용없자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기 위한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영화는 출산 전후 엄마이자 전사로 변하는 한 여성의 성장을 일상의 '잠'과 연결했다. 섬뜩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을지 궁금하게 만드는데 주력했다. 오히려 증상이 심해지자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은 현수다. 수진은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처음부터 이상한 남편을 멀리하지 않고 보호하며 어떻게든 고쳐보려 발버둥 친다. 거실에 걸려 있는 가훈처럼 ‘둘이 함께 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글귀는 가족을 지키려는 단단함의 상징이다.     

수면 행동 장애를 컨트롤하지 못해 가족을 해칠 수 있다는 공포가 지배되어가는 과정이 독특하게 펼쳐진다. 초자연적 현상, 빙의, 혼령이라는 오컬트, 호러 장르에 가까운 장르지만 클리셰를 따르지 않아 신선하다. 잠들지 않고 살 수 없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수면이 두려움이 되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흔한 점프 스퀘어 없이도 쫀쫀한 공포를 펼쳐낸다.     


집은 더 이상 아늑한 신혼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사건의 발화점이자 증폭되는 현장으로 변모한다. 두 사람을 신혼부부로 설정한 것도 의도된 설정이다. 전혀 몰랐던 남편의 잠버릇을 뒤늦게 알게 된 당혹감과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몇 년을 산 부부였다면 아내든 남편이든 누군가가 집을 나갔을 테니까.     


독특한 1인칭 공포 체계     

전반부가 수진의 공포라면 후반부는 현수의 공포다. 현수는 잠든 사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내의 증언과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자신을 두려워하게 된다. 자신 때문에 급격한 편집 증세를 보이는 수진의 변화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패닉 상태가 되어간다.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10), <우리 선희>(2013)에서 호흡을 맞춘 정유미와 이선균은 이번엔 부부로 케미를 자아낸다.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마치 거대한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저승이나 이승, 그 어떤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 몽환적인 공간 연출력이 탁월하다. 이선균이 맡은 현수라는 캐릭터의 직업을 감안해 보면 진짜인 건지, 연기인 건지 쉽사리 판단할 수없이 모호하게 끝나버려 의문을 더한다.     


데뷔작 <잠>을 연출한 유재선 감독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옥자> 연출부와 <버닝>의 영문 자막 번역 등 이력을 쌓았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며 호응을 얻었다. 봉준호 감독은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봉키즈’라는 별명이 붙으며 주목받고 있다. 한정된 공간과 다양한 제약에도 풍성한 이야기와 배우의 감정을 이끌어 내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능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잠> 정유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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