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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Sep 01. 2023

<타겟> 중고거래하다가 살인마의 타겟이 된 여성

염통까지 쫄깃한 생활밀착 스릴러


현실 공포였다. 리얼리티 가득한 일상 소재가 피부로 다가왔다. 한 번쯤 중고거래 사이트로 물건을 사고판 적 있을 거다. 동네 주민과 소소한 나눔의 재미, 아나바다 운동의 진화로 불리며 트렌드로 자리 잡은 중고거래. 좋은 점도 있지만 점차 사건화된 경우를 종종 뉴스로 접할 때마다 불편했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고팔던 미덕은 어디 간 걸까?     


매년 수십, 아니 수백 건의 중고거래 사기가 다양한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벽돌이 들어 있다는 사례는 구시대적 산물이 되어버릴 정도다. 박희곤 감독은 현직 경찰, 형사와 만나 수집한 사례들을 접목해 리얼리티를 구현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귀찮음을 핑계로 쉽게 개인정보를 주고받는 게 무감각해진 상황과 느슨해진 경각심을 다잡아 준 이 영화가 매섭게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중고로 세탁기를 샀을 뿐인데..     

평범한 직장인 수현(신혜선)은 얼마 전 룸메이트였던 달자(이주영)와 독립해 이사했다. 부푼 꿈도 잠시, 세탁기가 말썽이었다. 중고거래하면 괜찮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 추천이 솔깃해 30만 원에 구매했다. 그러나 세탁기는 고장 난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수현은 판매자를 수소문하지만,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던 순간, 사기당한 돈과 시간, 발품이 억울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디,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해보자!" 수현은 오기가 발동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똑같은 수법으로 거래 글을 올린 판매자를 찾게 된다. "너 잘 만났다"며 글마다 사기꾼이라는 댓글을 달며 거래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그놈은 그만하라며 경고했지만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사기꾼이겠거니 방심했던 그날 이후 모든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경고는 말로만 끝낼 것이 아니었다. 그놈은 수현의 일상을 깊게 침투했다. 개인정보를 알아내 온라인에 뿌리고 계획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집으로 주문한 적도 없는 음식 배달이 마구 쏟아지고, 엄마를 사칭해 돈을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급기야 한밤중 번호 키를 누르고 서슴없이 들어오려는 남성까지 보내는 충격적인 일을 벌였다.     


대체 무엇을 잘못한 걸까. 정신적, 금전적 피해를 갚아 주겠다는 의도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치닫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것이다. 사기 피해를 겪고 경찰에 즉각 신고했지만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무렵. 담당(김성균) 형사와 판매자의 집을 찾아갔지만 의문의 시체가 발견돼 수사는 전혀 방향으로 향해간다.     


현실 공포.. 타겟 설정 제대로     

영화는 간단한 중고거래로 살인마의 타겟으로 설정된다는 독특한 소재로 강렬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영화 <도어락>(2018)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3)의 소재 및 스타일이 흡사하다. 남성이 혼자 사는 여성을 타겟으로 삼은 것과 집과 스마트폰처럼 일상을 공포로 만들어 버리는 소재가 공통분모다.    

 

판매자에서 사기꾼, 범인 된 그놈은 타겟을 감시하며 호시탐탐 해칠 기회를 노린다. 익숙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닫게 된다. 장르 영화답게 범인의 전사나 범행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오직 수현의 공포만을 따라가도록 했다. 관객을 철저히 주인공에게 이입하게 만들고 몰아붙여,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영리한 방법이다.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대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집은 하루의 피로감을 덜어내고 새롭게 충전할 수 있는 안온한 장소여야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범죄 현장이 됨으로써 긴장감을 유발한다. 수현은 공간을 구성하는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지만 정작 이사 후 이삿짐도 풀지 못하는 상반된 상황에 놓인다. 더불어 세탁기 때문에 사기당한 돈과 시간까지 더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는다. 누적된 스트레스는 귀갓길에 누군가가 쫓아올 것 같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두려움으로 증폭된다. 때문에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며 이사 간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어버리는 트라우마의 장소가 되어버린다.     

이 모든 것을 신혜선이 만들어 낸다. 밝고 경쾌했던 한 여성이 중고거래 사기를 계기로 위협받고, 불안감에 떨 다 서서히 시들어가는 다층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벗어나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다는 절망과 자포자기한 표정까지 입체적인 연기로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후반부에는 당하고만 있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데 이로 인한 클리셰까지도 온전히 끌어안는다.     


2년 전 촬영을 마친 소위 창고 영화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안정된 연기, 트렌드를 반영한 소재와 조여드는 스릴까지 더해져 시너지를 이룬다. 게다가 군백기를 갖고 있는 강태오를 만나볼 반가운 기회다. 마지막으로 음향효과에 힘을 준 티가 역력하다. 오롯이 집중해서 보고 싶다면 반드시 사운드에 최적화된 극장에서 보길 권한다. 입소문을 잘 탄다면 명절 앞둔 다크호스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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