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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ug 31. 2023

<그녀의 취미생활>섬뜩한 취미생활에 빠져버린 시골여자들

정인(정이서)은 상처 입은 영혼이었다. 남편의 도박과 폭력에 지쳐 도망치듯 이혼하고 고향 박하마을으로 돌아왔다. 금의환향이면 좋으련만 만신창이다.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으로  도피했으나 실패하고  또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급기야 할머니의 죽음으로 생계가 막막해졌다.      


여성 혼자 살아가기는 도시나 여기나 마찬가지였다. 그 집에 숟가락까지 몇 개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단단한 고리가 존재했다. 정인은 어쩔 수 없이 남의 집 과수원과 밭을 돌며 근근이 먹고사는 처지가 되었다.     


사생활이라곤 없는 동네는 확실히 음산하고 살벌했다. 인심 좋은 시골처럼 보이지만 친절보다는 이익이 먼저라 대체로 마을 사람들은 험악했다. 누구 험담하기 좋아하고, 소문도 빨라서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연약해 보이는 정인에게 치근덕거리는 중국집 배달원이나 과수원 아저씨의 직접적인 추파는 기분 나쁨을 넘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그저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소라게처럼 웅크리는 게 전부였다. 정인은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이사 온 혜정(김혜나)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스포츠카를 끌고 온 혜정은 남 눈치 보는 것 없이 당당했다. 본인은 비밀스럽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 다 사별하고 재산 상속받은 미망인이라고 했다. 취미로 밤낚시를 즐기거나 민을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찍으며 대범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윗집과 아랫집에 사는 혜정과 정인은 샛길을 공유하며 교감하기에 이른다. 소극적이었던 정인은 혜정을 동경하며 서서히 변한다. 온전한 취미 생활을 찾아가며 몰랐던 진실에 다가간다. 어쩌면 영원히 봉인되어야 할 개인의 비밀과 박하마을의 거대한 욕망까지도.     


두 여성의 기묘한 취미생활     

<그녀의 취미생활>은 서미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피부색, 스타일, 성격도 반대인 두 여성이 시골에서 만나 동질감을 느끼며 연대감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귀농, 농촌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리틀 포레스트>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 잔잔한 소확행이 이 영화에는 없다. 폐쇄적인 마을에서 풍기는 숨 막히는 공기와 이질적인 두 젊은 여성, 워맨스가 폭발하다 못해 눅진하게 서려버린 몽환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시골하면 떠오르는 편견을 전복한 의도가 눈에 띈다.     


정서, 육체적 학대를 당하고 있던 정인에게 구원자 혜정은 당하고만 있지 말고 반격하라며 부추긴다. 그로 인한 뒷수습은 생각하지 않은 채 일단 저지르라 말한다. 마치 내면의 어둡고 잔인한 자아가 고개를 드는 것 같다. 착하디착해 보이기만 했던 정인의 비릿한 욕망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무례한 박하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정인은 각성하기에 이른다.     


박하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탐색전을 벌이는 전반부의 스릴이 좋았다. 후반부에는 두 여성이 하얀 원피스를 맞춰 입고 쌍둥이처럼 행동한다. 장총을 들고 다니며 동일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점차 두 여성의 연대는 당위성을 키우지만 설득하는 데 쉽지만은 않다. 이미지만 난발하고 여성의 피해와 복수를 전시한다. 이러한 장르적 답습으로 캐릭터의 내밀한 마음은 스테레오타입으로 머무른다.     


저들이 왜 저래야 하는지 당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캐릭터와 상황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만연한 성폭력과 무관심, 돈을 좇는 욕망, 사생활 침해 등을 내세우지만 여러 주제 의식을 던지는 선에서 그쳐버린다.      


여성 서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유발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메타포만 한가득 보여주다가 끝난다. <델마와 루이스>의 여성 연대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잔혹 복수극 <이끼>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비밀, 한낮의 잔혹극은 <미드소마>가 떠오른다. 정인을 연기한 정이서와 혜정은 연기한 김혜나 배우의 연기는 각자 탁월하나, 뭉치지 못하고 겉돌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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