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AI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알파고가 인간과 바둑을 둔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챗 GPT로 대표되는 AI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AI는 인간의 친구 아니면 적으로 묘사되는 일이 흔하다. 아마도 금세 따라잡힐지 모를 두려움이 앞선 이유일 테다. 지금은 로봇의 형태지만 점차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갖출 거다. 공상 같은 미래가 현실과 가까워질수록 AI 관련 법, 제도적 시스템이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AI 콘텐츠가 봇물인 가운데 아이의 모습을 한 살상 무기의 역습을 다룬 영화가 이목을 끌고 있다. 폭탄을 투하하고 서로를 죽이는 엄연한 전쟁 중이나 어딘지 모를 따뜻한 감성이 내내 흐른다. 기계와 인간, 대결과 공존의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아시아를 무대 삼아 초현실적인 비주얼을 그려낸다. 다국적 배우들의 연기와 이국적인 풍경, OST가 매력적이다. 드뷔시의 '달빛'과 'Fly me to the moon' 등 기존 음악과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이 시너지를 이룬다.
아이 모습을 한 살상 무기
근미래 인류를 위해 만든 AI가 전쟁을 일으켜 미국 LA에 핵폭탄을 터트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인간과 AI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고 서구권은 더 이상 AI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된 뉴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수용하며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AI에게 외모를 기부하라는 캠페인은 차별받지 않고 행동에 자유로울 로봇권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다.
한편, AI를 만든 창조자이자 설계자 니르마타를 찾으려 위장 잠입한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정보원이었던 마야(젬마 찬)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중요한 작전 중 마야가 실종되어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 부닥친다.
그로부터 5년 후. 조슈아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아내와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전쟁에 다시 합류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모습을 한 강력한 무기 알피(매들린 유나 보이스)를 만나 딜레마에 빠진다. 달라이라마 모습을 하고 종종 신비로운 능력을 쓰는 탓에 보호해야 할 의무까지 생겨 버린 AI 알피. 과연 조슈아는 인류와 기계와의 전쟁을 끝내고 사랑하는 아내와 알피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종의 기원부터 AI까지 다루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인간은 원래 파괴적이고 잔혹한 종(種)이다. 과거 호모사피엔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본능에 따라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 살아남은 유전자는 후대로 진화하고 문명을 만들었다. 자신보다 우월하거나 동등한 종을 허락하지 않는 특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동서양, 종교, 이념 등 갖은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고 땅을 빼앗았다.
그래서일까. AI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그려진다. 동족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를 치르고 연민을 통해 협력하고 신의를 지킨다. 윤회, 환생, 천국, 운명을 믿는 휴머니즘을 지녔다. 반면, 인간은 기계를 이용하고 소모하는 데 그친다. 진짜가 아닌 외모만 인간과 비슷한 가짜기 때문에 착취해도 괜찮다는 논리다. 감정이 메말라 인간성을 잃어버린 존재는 오히려 인간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들춘다. 돌고 돌아 인간과 AI의 공존을 시도하고자 한다. 조슈아와 알피는 영화 <A.I> 의 '데이빗'과 '지골로 조'처럼 여정을 함께 하며 유사 부녀 관계를 형성한다. 조슈아는 AI와 소통하며 유대감과 인간다움을 완성해 간다.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핵심 메시지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묻는 알피에게 조슈아는 착한 사람만 천국에 가지만 자신은 착하지 않기에 못 간다고 답한다. 순간 알피는 선악의 유무보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 자신은 인간이 아니기에 자신도 갈 수 없다며 동질감을 형성한다.
둘은 초반 극명한 대립을 이루지만 곧 동화된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한 겹 벗겨 보면 같은 존재임을 일러준다. 인간처럼 보이지만 진짜가 아니라던 조슈아의 외침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한번 정곡을 찌른다. 순수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진중한 말 한마디가 어느 때보다 묵직한 울림을 준다. AI는 인간적인가, 인간의 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