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지만 살아가는 동안에는 가족, 친구, 지인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관계 맺는다.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나쁜 일도 있기에 인생은 살아가야만 하고, 살아갈 만하다.
혼자만 잘 살면 될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그 끈을 놓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주변이 도움이 필요하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도움의 손길을 꾸준히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은 더욱 따뜻해진다는 걸 깨닫는다.
복권 당첨자가 금세 알코올중독자가 된 이유
싱글맘 레슬리(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거액의 복권 당첨금을 탕진했다. 주변에 축하주를 돌리고 작은 식당을 차리고 싶다며 말했던 게 어색해질 만큼 다 잃었다. 기쁨에 취해 그날의 영광은 과거 속으로 영영 멀어져 버렸다. 유흥으로 모든 돈을 써버렸고 가족에게 버림받게 된다. 억세게 운 좋은 행운아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모텔비까지 연체해 쫓겨난 레슬리는 염치없지만 제임스(오웬 티그)의 집으로 향한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꼬맹이일 때 보고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아직 어리지만 제 앞가림을 하는 아들을 보니 대견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다른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제임스는 여기서 지내는 건 좋지만 술은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지만 실망감을 안긴다. 앞으로 잘할 거라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믿었던 제임스와 완전히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 레슬리는 친구 낸시(앨리슨 제니)를 만나 소원한 감정을 들춘다. 가족 같았던 친구에게 제임스를 맡기고 떠나 큰 상처를 냈었다. 낸시는 레슬리를 곱게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둘은 다툼을 벌이게 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문전박대 당한다.
거리를 배회하던 레슬리는 모텔 근처에서 하룻밤 노숙한다. 다음날 마음씨 좋은 모텔 주인 스위니(마크 마론)를 만나 일자리를 구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삶의 전환점을 드디어 찾은 느낌이다. 스위니의 도움과 응원을 통해 스스로를 구할 힘을 얻게 된다. 늦었지만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밑바닥 인생, 마지막 기회도 놓칠 건가?
<레슬리에게>는 굴러들어 온 행운을 그대로 차 버리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힐빌리의 노래>의 아들과 엄마와 비슷한 설정이 낯설지 않다.
<힐빌리의 노래>가 마약중독자가 된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이야기라면, <레슬리에게>는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의 시선을 따라 처절하게 전개된다. 몇 번이고 재기할 기회를 맞지만 술 때문에 망가지는 무지함을 보인다. 술은 이성을 앗아갔고 하나뿐인 아들과의 관계마저 멀어지게 할 뿐이었다.
아들의 햇살 같던 유년기를 망친 대가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잘 곳을 찾아 푸석한 오늘과 마주해야 했다. 현실은 시궁창이 되어버렸고 미래는 아득하기만 했다. 지난날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과거를 돌이키면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 또 술을 찾았다. ‘그냥 될 대로 대라’는 자포자기는 제일 빠르고 쉬운 처방전이었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게 되고 처량한 신세가 한탄스러워 한두 잔씩 늘어나 삶을 좀 먹는다. 외롭고 쓸쓸하고 스트레스가 쌓여서라는 갖은 이유로 음주를 정당화한다. 십중팔구 자신은 중독자가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반복하게 된다. 술을 마신 쾌감에 중독되어 의지는 더욱 약해진다.
알코올중독은 한 잔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단 한 잔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니, 재발은 걷잡을 수 없이 독이 된다. ‘한 잔은 너무 많지만 천 잔은 너무 적다’라는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의존자 모임) 관련 책자 속 글귀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재발하면 아무리 술을 퍼마셔도 만족하지 못해 더 깊은 중독에 빠진다.
스스로 술을 끊겠다는 열망이 있으면 금주는 가능하다고 한다. 혼자서는 어려우나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는 병이 알코올중독이다. 레슬리는 모텔 주인 스위니의 따뜻한 보살핌에 차츰 회복된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고 다시 맞출 마지막 갱생의 기회인 거다. 많이 힘들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정신을 붙잡고 힘겹게 싸워간다.
영화는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이야기다. 하지만 독립영화부터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연기력을 덧붙여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영화부터 시작해 단역, 조연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변신해 온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높게 평가한다. 비슷한 캐릭터를 통해 다작하기보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신에 능한 카멜레온 같은 모습은 ‘레슬리’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 날개를 달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