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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05. 2023

<3일의 휴가> 美명문대 교수 딸이 국밥집 차린 이유

대한민국 자식이라면 울 수 밖에..


<3일의 휴가>는 천륜이라는 부모와 자식 간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도 자존심 하나만은 있었던 엄마와 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딸의 기억을 쫓아간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다. 그러나 본능적인 뭉클함, 참지 못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안간힘 쓰며 버티려고 노력했었지만 허사였다. 클리셰 투성이지만 지겹지만은 않았다. 분명 아는 맛인데 먹을 때마다 물리지 않는 김치찌개 같은 영화였다. 정점은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장면이었다. 가족에게 살갑게 굴지 못한 딸이 엄마에게 갖은 짜증을 부리고 화낸 후 벌어진 아픈 상황이다. 순간 귀찮음을 핑계로 부모님을 얼마 등한시했는지 반성하고 후회했다. 오늘 꼭 전화라도 걸어야지 생각이 간절했다.      


3일 동안 딸을 보러 내려온 죽은 엄마     

죽은 지 3년째 되는 날 복자(김해숙)는 3일간 휴가 받아 지상에 내려온다. 딸 진주(신민아)는 복자의 하나뿐인 보석이자 자랑이었다. 미국 명문대 교수로 재직 중이라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건만 이게 무슨 상황인지. 미국이 아닌 시골집에 처박혀서 백반 장사나 하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고 배기겠나.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딸의 곁만 졸졸 따라다녀야만 했다. 같이 온 가이드(강기영)가 말해준 규칙에 따라 그저 지켜보기만 하다 올라가야만 했다. 가혹하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결심한다.     


한편, 속 타는 복자와 이를 모르는 진주는 친구 미진(황보라)과 엄마의 레시피를 찾아 나선다. 알고 보니 진주는 그리움과 애증, 미안함이 뒤섞여 마음의 병을 얻었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엄마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 줄도 몰랐던 복자는 이내 복잡한 마음이 든다. 갈 때 돼서 간 것뿐인데 내 딸을 아프게 했다니 억울함이 밀려온다.     


남동생 공부 시키느라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복자의 인생은 늘 희생과 가까웠다. 가난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까지 동생 내외에 맡겨 두고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 키웠다. 재혼해서 데리고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게 백번 낫다고 판단했다. 엄마는 딸을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다. 다른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다.     


진주의 서운함과 슬픔은 오해를 먹고 자라 커지기만 했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며 외롭게 유년기를 보냈고 그리움이 뒤틀렸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복수할 마음만 커져 있었다. 악착같이 공부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지만 헛헛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상처될 말만 했었는데 미안하단 말도 전하지 못하고, 엄마를 또 그렇게 영영 떠나버린 거다.     


더 잘 알아 폭풍눈물.. 보편적인 이야기의 힘      

영화 속 기억은 곧 인연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가 된다. 좋은 휘발유를 쓰면 깨끗하게 잘나가지만 불량 휘발유를 쓰면 삶이 덜컹거리듯. 좋은 기억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 복자를 통해 충분히 전달한다. 엄마가 깔아 둔 꽃 같은 인생, 내가 대신 살고 있는 거라던 진주는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벌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뒤늦게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불면증까지 겹쳐 사회생활이 힘들어져 버린다.      


결국, 아픈 진주를 보다 못한 복자는 큰 결심을 한다. 딸과 접촉하면 기억이 사라져 인연이 끊어지는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말이다. 복자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네 인생을 오래 살다 오라고, 내가 잊었어도 나를 기억해 달라’는 말을 해야만 했다. 딸이 제발 행복한 기억만 쌓아가길 바랐을 부모의 마음으로 또다시 희생하게 된다.     


영화는 모녀 사이의 애틋함뿐만 아닌 다채로운 집밥을 눈으로 먹는 즐거움이 있다. 음식은 가족의 추억이자 정체성까지 아우르는 삶의 지도다. 딸이 엄마의 레시피로 기억을 더듬고 상처를 치유하며 추억을 쌓아가는 구조다. 묵은지 스팸 김치찌개, 맷돌아 콩 갈아 만든 두부, 무 넣은 만두, 추운 겨울 뜨끈한 잔치국수, 생일날 먹는 잡채와 미역국 등 집밥이 군침 삼키게 한다. 엄마의 손맛을 찾으려는 딸의 노력은 둘을 이어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주의 컬러링과 벨소리인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는 메인 테마곡으로 쓰여 감동을 더한다. 딸이 자기 전화를 받지 않아 지겹게 듣는 노래이자 먹먹한 장치로 쓰였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선율이지만 모녀 사이를 대변하는 가사는 마음을 콕 하고 찌르며 슬픔을 더해간다.     


영화의 주제는 명확하다. ‘부모님 전화를 잘 받자’. 효도는 누군가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철저한 셀프 반드시 오늘 해야만 한다. 내일로 미룬 효도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의 효도를 기다려 주지 않는 까닭이다. 있을 때 잘하자 괜한 후회하지 말고. 해야 할 말을 놓치고 후회하는 가족과 내 옆의 가까운 누군가에게 생각난 김에 당장 전화를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 밥 먹었냐는 안부, 시답지 않는 농담일지라도 그들은 반드시 당신의 전화를 기다렸을 테니까.


사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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