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도시를 떠나 호화 별장에 휴가를 즐기러 온 가족은 유조선을 목격한다. 항로를 이탈한 유조선이 항구가 아닌 해변에 정박한 것이다. 단순한 오류라고 생각하며 별장에 돌아온 가족은 인터넷, 통신, GPS가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과 마주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참에 디지털 디톡스나 하자는 생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날 밤, 집주인이라며 들여보내 달라는 부녀의 방문에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그들은 믿어도 되는 사람일까? 낯선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할까? 부녀는 행사에 가는 도중 사이버 공격으로 급히 되돌아왔다고 주장한다. 아빠 조지(마허샬라 알리)는 렌트비를 돌려줄 테니 문을 열어 달라고 말한다. 아만다(줄리아 로버츠)는 기분 나쁜 태도로 일관하는 루스(마이할라 헤럴드)가 신경 쓰였지만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일단 함께 지내기로 한다.
금방 수습될 거라고 믿었으나 불길한 일들은 연이어 일어난다. 고립된 상황, 두 가족의 심리적 불안함을 극에 달한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아만다 가족은 도시로 돌아간다며 호기롭게 출발하나, 유일한 고속도로가 차로 꽉 막혀 되돌아오게 된다. 다리만 건너면 바로 도시인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과연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붕괴, 3차 대전은 디지털 전쟁?
넷플릭스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루만 알람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샘 에스마일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그는 라미 말렉 주연의 드라마 [미스터 로봇]으로 골든 글로브 TV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미스터 로봇]도 사이버테러 부서의 직원이 밤만 되면 해커가 되어 소통하는 이야기다. 디지털 체제의 구멍에 문제점을 제시하는 날카로움이 영화로 매체를 옮겨와도 발휘된 경우다.
버락, 미셸 오바마 부부가 2018년 설립한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의 첫 극영화 제작으로 주목받았다. 원작 소설은 2021년 버락 오바마가 선정한 독서 리스트에 담겨 있던 책이다. 재임 시절 경험을 녹여 대본에 투영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언제 어디라도 호환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테러, 환경파괴, 국가 붕괴 등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벌어질 인류 공멸 상황을 생중계하듯 보여준다. 굶주리면 사냥하고, 비와 추위를 피할 곳을 찾던 원시 시대로 돌아가기 직전의 혼란스러운 모습이라고 봐도 좋겠다.
영화는 인터넷, 자율주행, GPS 등 편한 방법에 익숙해진 인류를 풍자한다. 기계 버튼만 누르면 어떤 일도 가능하다. 음식 배달, 정보 수집, 자동차 운전 등 기술 발전은 일상을 바꿔 놓았다. 고속도로를 꽉 막고 있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자동차의 박치기 장면, 길 잃고 방황하는 대형 유조선과 비행기의 추락은 꽤 충격적이다.
고유의 생각과 본능을 잃어버린 인류는 도태되어 버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버 공격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국가 시스템을 붕괴한다. 국가가 국민을 버린 상황에서 각자도 생해야 할 상황이다.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타인을 배제해야 할지, 협력해야 할지 선택해야만 한다. 식량 하나를 두고 반으로 나눠 먹어야 하고,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재난 속에서 인류애와 이타심은 발휘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시스템이 마비되면 한 국가를 무너트릴 수 있다는 발상은 서늘함을 이끌어 낸다. 잘못된 이 분법은 국가, 인종, 종교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 편견과 오해가 커지면서 연대해야 할 때 오히려 소통을 거부하는 두 가족은 인류의 축소판이자 아래층과 위층의 분리된 영역으로 상징된다. 국가 비상사태가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두 가족의 상황을 빌어 현실적인 긴장감을 전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호기심을 유발한다. 정보를 차단해 공포를 조성하고 불신을 키운다. 미스터리한 일들이 계속되자 인물들의 심리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면서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매력적이다.
사슴, 새, 홍학 등 저택 주변에 동물이 떼로 나타나 무언의 경고를 보내는 듯하다. 잠깐씩 통신, 인터넷이 연결되면 테러, 공격, 전쟁 등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단어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게다가 사이렌이나 귀가 찢어질 듯 소음은 이들의 분열을 가속한다.
휴가지에서 벌어진 일답게 영하의 날씨 안락한 집에서 본 영화는 주말 내내 잔상을 남기며 공감하게 했다. 다만, 배후로 거론된 국가 중 이란, 중국, 그리고 한국이 지목되어 놀라움을 안긴다. 이는 이 사태를 오랫동안 예측했던 대니(케빈 베이컨)가 한국과 북한을 혼동했다는 설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140분 동안 떡밥만 던져두고 수거하지 않는 결말이 용두사미란 지적도 이해한다. 하지만 로즈가 미드 <프렌즈>의 마지막 화를 시청하는 열린 결말은 다가올 아포칼립스를 예고하는 무한한 상상력을 선사한다.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디지털 전쟁이라는 설정이 설득력 있게 피부로 와닿았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