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랜드>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첫째도 둘째도 ‘걱정’이었다. 파키스탄에서 상영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를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희망이 어느 곳에서는 꿈꿀 수 없는 절망이라는 점이 마음을 흔들었다. 인간의 고결한 자유의지를 되새겨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파키스탄에서 상영 금지를 받았다. 비록 고국에서 환영받지 못했지만 전 세계의 지지를 얻었다. 2014년 17세로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말라라 유사프자이’가 제작에 참여했고, 화가 ‘샤지아 시칸데르’가 포스터를 헌정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첫 번째 파키스탄 영화로 기록되었으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쓸모를 인정받은 남자
소박하게 살아가는 젊은 부부 하이더르(알리 준조)와 뭄타즈(라스티 파루크)는 형님 부부와 조카, 아버지와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하이더르는 대부분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주부다. 아버지와 조카를 돌보고 집안일을 거든다. 반면 아내 뭄타즈는 신부 메이크업을 해주며 직장에 다니고 있다. 시아버지는 늘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생활비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백수로 살던 하이더르가 트랜스젠더 뮤지션 비바(알리나 칸)의 백댄서로 취직하게 되었다. 뭄타즈는 당장 그만두어야만 했다. 남편이 집에 있으니 일할 명문이 사라져 버린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 원치 않은 임신까지 하자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한편, 하이더르는 백댄서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태어나 춤이라고는 제대로 쳐보지도, 즐겨보지도 않았건만. 땀 흘린 만큼 늘어가는 춤실력에 뭔지 뭐를 뿌듯함이 생겼다.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 준 비바에게 호감도 생겨 버린다. 점차 둘은 묘한 감정에 휩쓸리고 급기야 위험한 관계로 발전하고야 만다.
파키스탄의 가부장적 현실 고발
<조이랜드>는 파키스탄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폐해를 다루면서도 대담한 시선으로 뭄타즈와 비바의 상황을 쫓아 고정된 성 역할의 문제점을 조명한다. 결혼한 여성은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하고, 남성과 여성은 분리된 열차를 타야만 하며, 바다를 만끽하고 싶어도 옷이 젖어 비친다는 이유로 수영을 금한다. 대학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했어도 아들 낳지 못하면 죄인이며.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야간 통행도 어려운 상황이 담겨 있다. 비바는 재능과 실력을 겸비했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메인 무대에 서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 왔다.
가장 큰 희생양은 아무래도 뭄타즈다. 시아버지는 개인의 성취보다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 주길 원한다. 첫째 며느리는 딸만 셋, 최근 아들인 줄 알았던 넷째까지 딸이 태어나자 그 화살은 둘째 며느리에게 돌아가고야 만다.
뭄타즈는 자유를 꿈꾸는 여성이었다. 중매로 만난 하이더르를 잘 알지 못했지만 믿음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니라는 말은 지켜졌고 그런 남편이 더 좋아졌던 건 사실이었다. 직장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시아버지의 은근한 눈치가 흠이었지만 일을 전적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작은 꿈과 소망은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한순간에 무너지고야 만다. 집 안에만 틀어박힌 단조로운 생활은 심신을 갉아먹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조이랜드’라는 제목이 유독 아득하게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는 놀이공원의 이름이지만 환상처럼 와닿았다. 밤이 되어도 화려한 불빛으로 꿈을 밝히지만 불이 꺼지면 각자의 비루한 현실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의 마법 같다. 가까워 보이지만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슬픈 제목이다. 데뷔작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사임 사디크’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개인의 자유와 성취를 꾹꾹 눌러 담아 담백하고 사려 깊게 말한다. 억압된 사회에서는 모두가 피해자임을 낱낱이 꿰뚫어 보여준다. 사임 사디크 감독의 차기작이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