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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an 07. 2024

<노 베어스> 가택연금 중 원격으로 찍은 영화의 힘

감독은 이란에서 배우는 터키에서 원격으로 찍은 영화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는 영화제 아니면 찾아보기 쉽지 않다. 데뷔작 <하얀 풍선>만이 이란에서 개봉했을 뿐 고국에서 핍박받고 있다. 영화 <노 베어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재작년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던 지인 추천에 관심이 생겼다. 영화제에서라도 관람해서 다행이란 말도 덧붙였다. 호기심은 더해갔다. 훌쩍 2년이 흘렀고, 드디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격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영화를 이렇게도 찍을 수 있구나 ’라며 감탄했다. 본인이 등장하는 자전적 다큐멘터리 형식 같지만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고 그 영화를 관객이 보며 묘한 경계를 넘나든다.      


영화 제작으로 감독은 자각하고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영감받는다. 셀프 다큐 형식을 빌린 페이크 다큐 혹은 극영화, 시네마 베리테의 형식에 근접하고 있었다. 처음이 아닌 듯 영상통화로 소통하던 제작진은 감독과 오래 호흡 맞춘 상태였고, 초유의 사태에도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      


사진 한 장이 불러온 나비효과     

자파르 파나히는 가택연금 중 인터넷이 되지 않아 국경 넘어 촬영장과 연결이 끊어진 답답한 상태다. 상황은 영화 속 두 커플의 위기와 맞닿으며 실제로 악화된다. 미신을 믿는 국경 근처 마을에서 며칠째 머물던 감독은 사랑의 도피를 계획 중인 커플과 얽히며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     


이 마을은 전통이 법보다 위에 있다. 딸이 태어나면 미래의 남편 이름으로 탯줄을 잘라야 했다. 태어나자마자 겪는 차별. 여성의 의사는 상관없이 진행된 엄연한 폭력인 셈이다. 가부장적 미신은 또 있었다. 명절에 강가에서 발 씻는 행사를 하는데, 남성이 여성의 히잡을 잡아당기면 둘은 결혼해야만 한다. 여성은 어쩔 수 없이 그 남성과 결혼해야만 하는데 어찌 삶이 정해진 대로만 흘러갈까. 한 여성이 운명을 거슬러 다른 남성과 사랑에 빠졌고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감독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나 마을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영감을 얻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다짜고짜 카메라에 불순한 사진이 찍혔다며 내놓으라는 주장을 펼친다. 커플 쪽에서는 제발 멀리 떠날 때까지 함구해달라고 부탁한다. 난처한 상황에 빠져 갈등하는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종교재판까지 휘말리게 된다.     


한편, 터키로 피신 중인 영화 속 커플은 감시망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하려 계획 중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촬영 중이지만 여권 문제로 차질이 생겨 버린다. 남편만 두고 홀로 떠날 수 없는 아내에게 닥친 비극은 감독의 영화 철학, 삶의 근간을 흔들며 지대한 반향을 일으킨다.      


권력의 탄압에 카메라를 든 감독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았다. <하얀 풍선>(2015)으로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받아 주목받았다. 그거 정부의 눈에 본격적으로 든 건 2009년 시위 도중 총에 맞아 숨진 학생의 추모식 참석이 시작이었다. 2010년, 반정부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6년 징역형과 20년간 영화제작 금지, 출국 금지, 언론 인터뷰 금지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감시망을 피해 영화를 제작해 왔다. 가택 연금 상태에서 찍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는 케이크에 USB를 숨겨 칸영화제에 보낸 일화로 유명하다. 가택 연금 중 밀든 또 다른 자전적 영화 <닫힌 커튼>(2013)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불굴의 의지는 세계 3대 영화제의 작품상, 각본상으로 이어졌다. 가택 연금 해제 후, 택시를 몰고 거리로 나와 담은 <3개의 얼굴들>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으나 출국 금지로 참석하지 못했다.     


영화 같은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노 베어스>의 촬영 직후 남은 징역 6년을 채워야 한다는 명문으로 구금된다. <노 베어스>는 2022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지만 배우 미나 카바니가 대리 수상했다. 감독은 이후 옥중 단식 투쟁을 이어갔고 이틀 후 풀려나게 되었다.      


절대 내려놓지 않는 카메라     

<노 베어스>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예술적 기질을 침해받은 대가로 정부를 향한 저항의 목소리다. 마을의 커플과 튀르키예의 커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영화 속 영화, 감독이 겪고 있는 영화 밖 현실, 영화 속 현실이 경계를 넘나들며 연결된다. 현실에 침투한 허구, 허구에 스며든 현실의 영향력은 가상과 실상이 아주 가까운 영역임을 꼬집는다.     


이란을 떠나지 못하는 감독과 이란에 돌아갈 수 없는 배우의 아이러니한 운명도 기막히다. 주연 미나 카바니는 <레드 로즈>(2014)에서 누드 씬을 찍은 후 ‘이란 최초의 포르노 여배우’란 낙인으로 프랑스에 망명 중이다.      


이는 <노 베어스>의 자라를 연기하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 고야 만다. 자라는 반체제를 이유로 감옥, 고문, 추방당했고 10년간 도피 중이었다. 남편 박티아르의 위조 여권 실패로 본인만 떠나야 할 상황에 이르자, 촬영 도중 감독에게 직접 호소한다. 현실을 담는다더니 모든 게 거짓이고 신물 난다며 결국 무너지고야 만다.     

밤에 종종 곰이 출몰한다는 동네 소문은 두려움을 심어 통제하기 위한 권력의 권모술수다. 실제 곰은 없지만 전통을 이어가는 쉬운 수단이며, 허상을 부풀려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같잖은 왜곡이다. 때문에 현 이란 정부뿐만 아닌 세계의 문제점을 빗대는 상징적 제목으로 알맞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창작자의 예술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 사회적 제약을 깨려는 자유가 부딪혀 여러 질문이 생긴다. 감독은 결코 멈추지 않는 카메라로 대답하고 영화로써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사진: 네이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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