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은 스코틀랜드 소설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그리스 출신의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송곳니>,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 범상치 않은 작품을 연출했다. 대부분 기묘함을 넘어 기괴하며 때로는 혐오감을 선사하는 고집이 한결같다. 기예르모 델 토로와 함께 성인용 환상동화를 꾸준히 제작하는 감독이다. 최근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 영화를 준비 중이다. 어떤 비주얼로 구현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신작 <가여운 것들>에서 엠마 스톤은 모든 것을 던진 연기를 펼쳤다. 주인공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엠마 스톤의 야심이 가득한 당연한 결과다. 프로이트 인간 발달 이론에 따르면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로 발전하는데 성인 여성의 몸으로 아이처럼 행동하는 말투, 표정의 이질감까지도 사랑스러움으로 만들어 냈다.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개미를 죽이는 천진난만함이 잔혹해 보이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벨라의 무례한 행동과 말투는 아이다움이 완연한 본능에 가깝다.
이를 인정받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7년 만에 <라라랜드>에 이어 2관왕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만들었다. 평생 한 번 노미네이트되기도 어려운 타이틀은 두 번이나 걸친 배우로 기록되었다. 감독과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처음 만나 두 번째 협업이며 단편 <블리트>와 차기작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까지 네 작품을 거쳐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페르소나로 등극했다.
죽기로 결심하자, 오히려 살게 되는 아이러니
벨라(엠마 스톤)의 탄생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생물학적 방법이 아닌 인위적인 결합으로 세상에 던져졌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불리는 갓윈(윌렘 대포)이 강물에 몸을 던진 임산부의 몸에 태아의 뇌를 삽입해 살려냈다. 누가라도 하지 않았을 방식이지만. 이미 남다른 생각과 다양한 방식으로 학계의 이단아라 불렸던 갓윈이라 성공한 실험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온갖 실험에 이용당해 흉측한 외모와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과학자다. 그래서인지 고작 실험체일 뿐이었지만 분신이자 자식 같은 벨라를 가족 이상으로 살뜰히 챙긴다. 하지만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유능한 제자 맥스(라미 유세프)를 불러 성장 과정의 기록을 부탁한다. 평소 존경하던 갓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맥스는 벨라의 천진난만한 행동과 아름다운 외모에 매료되어 자신만의 사랑을 키워간다.
한편, 갓윈은 건강이 좋지 못할뿐더러 벨라가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자 걱정이 앞선다. 여느 부모가 자식을 사지로 내몰겠는가. 자신이 받은 상처를 부디 벨라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고, 하루라도 빨리 믿음직한 맥스를 데릴사위로 들여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뭐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벨라의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변호사 덩컨(마크 러팔로)에게 약혼 공증을 맡긴 게 화근이었을까. 덩컨은 의문스러운 조항에 궁금증이 생겨 벨라를 염탐했다. 평소 난봉꾼 기질이 있었던 덩컨은 아름다운 외모와 범상치 않는 분위기에 이끌려 정복욕이 들끓었다. 마침 몸과 마음이 엇나가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경험에 목말랐던 벨라는 더 넓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자는 제안을 수락하고야 만다.
내 몸 사용 결정권, 자유의지 획득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의 성(性)을 억압하는 폐쇄적인 암묵이 통용되던 때다. 본능에 충실한 벨라를 두고 부도덕하다며 손가락질하는 상황은 남성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통제다. 이를 거침없이 뚫고 나온 벨라는 사회의 이질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새로운 개체의 탄생은 유일무이한 존재를 예고한다. 빅토리아 블레싱턴으로 살아 있었을 때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물에 투신하는 극단적인 방법뿐이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통해 벨라가 되자 해방감을 맛본다. 서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벨라는 자신을 속박하고 소유하려는 덩컨을 보란 듯이 차버리며 자기 몸 결정권을 터득한다.
처음에는 성적 쾌락과 재미에 중독되었지만 점차 본인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욕망을 획득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스스로 몸을 만지며 유희를 알아가고 수락과 거절 통해 자의식을 키워간다. 남성에게 성행위를 먼저 요구하거나 하고 싶지 않으면 단호히 거부한다. 몸을 움직여 즐거움과 수입을 얻어 경제적 자립에도 성공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주도적인 선택, 그에 따른 책임까지도 감수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높은 수위와 충격적 묘사의 이면
영화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라 가능한 수위와 미장센으로 한계 없는 충격을 선사한다. 아이의 마음 즉, 벨라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파란만장한 벨라의 인생에 총 다섯 명의 남성이 필요했다.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갓윈, 플라토닉 사랑이자 선생님 맥스, 육체적 쾌락의 촉매제 덩컨, 세상의 이면을 알려준 냉철한 친구 해리, 폭력과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법을 깨닫는 전남편 알프레드다.
남성들은 한결같이 미성숙한 여성을 두고 가르침을 주겠다면 설레발치지만 벨라는 그때마다 통쾌하게 대응한다. 이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변주 그리스신화에서 영감받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의 재해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흔히 괴물 이름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알고 있지만 사실 과학자(창조주)의 이름이며 괴물은 이름조차 없이 버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름답다는 말에서 파생된 '벨라(Bella)'라는 이름을 얻어 한없이 예쁨 받는 존재로 승격되었다. 《피그말리온》은 남성 음성학자가 혼신의 언어 교정 프로젝트를 벌여 시골뜨기 말괄량이 여성을 상류층의 말투와 예절을 갖춘 귀족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
태어나면서부터 얻어진 계급도 교육과 환경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의도된 설정이다. 무미건조한 흑백 화면에서 화려한 총천연색 화면으로의 전환, 인공적이고 초현실적인 미장센과 과장된 의상, 어안렌즈의 관음적 시선이 내내 불쾌지수를 높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망원렌즈의 뚜렷한 시선을 빌어 용기와 희망을 선사하는 긍정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순수한 본능과 합리적 이성의 시너지다.
141분 동안 정신없이 이끌려 가다 보면 정작 가여운 인물은 누구일지 곱씹게 된다. 벨라가 세상을 변하게 만든 촉매제가 되었듯이 AI가 만든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 상황과 겹쳐 기시감이 들었다. 닥치는 대로 습득해 딥러닝 하는 AI와 벨라는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공상과 망상,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괴상한 에너지에 전염된 하루였다. 비단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허구가 아닌 21세기 현실에도 여전히 가여운 것들은 생겨난다는 섬뜩한 경고처럼 들렸다면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