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저택의 비밀을 알게 된 모녀
전직 간호사 출신이지만 현재는 필리핀 출신 불법체류자 신세인 조이(맥스 에이겐만)는 비자 문제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집을 떠돌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딸 그레이스(제이든 페이지 보아디야)를 돌보고 일까지 해야 하는 정신없는 싱글맘이다.
그레이스와 그림자처럼 기생하여 집에 스며들어 가는 방식이다. 이번 주는 가까스로 집주인에게 들키지 않았지만 다음 주가 걱정이다. 도우미로 일하는 집 몇몇에 전화를 돌리느라 분주하다. 때마침 휴가 가는 가족의 일정을 체크한다.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브로커가 요구한 비용에 한참이나 모자란 상황이다.
그러던 어느 날, 거액의 돈을 줄 테니 입주 도우미로 저택을 관리해 달라는 캐서린(리앤 베스트)의 제안을 받는다. 주거와 돈을 한 번에 해결해 줄 조건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딸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 어쩔 수 없이 캐리어에 그레이스를 숨겨 들어와 은밀한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한편, 캐서린은 혼수상태인 숙부 개릿(데이비드 헤이먼)을 돌보고 있었는데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모님 대신 이름을 부르라며 친절하게 대하는 듯 보이나, 원하는 것은 명령하듯 말하는 이중적인 사람이다. 때로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아픈 숙부에게 무자비한 태도를 보여 섬뜩한 장면을 보인다. 조이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남의 가족사에 끼어들지 말자는 생각으로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친다.
하지만 이 집안의 이상한 기운은 가족 간의 불화가 다가 아니었다. CCTV처럼 조이와 그레이스를 감시하는 시선의 초상화부터 히스테릭한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잠긴 방에 있던 그것의 비밀까지 밝혀지자 연쇄적인 분노가 터지고야 만다.
필리핀계 이민 노동자의 현실 공포
영화는 저택이라는 폐쇄적인 장소를 빌어 밀실 공포를 자아낸다. 겉으로는 오랜 가문의 흔한 상속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월주의가 만연했던 가문의 치부가 숨겨져있다. 식민주의와 백인 사회의 불편함을 담는 동시에 인종, 성, 계급 갈등의 메시지, 디아스포라 정체성까지 녹여 냈다. 시대를 반영하는 현실 공포와 조여오는 서스펜스가 몰입감을 선사한다.
필리핀은 다수의 자국 인력을 세계에 파견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특히 간호직이 인기가 많다. 조이는 팬데믹 시기에 아픈 영국인을 돌봐야 하는 필리핀 출신 의료진의 상황이 반영된 캐릭터다. 필리핀계 영국인 신예 ‘패리스 자실라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토대로 완성되었다.
교사였던 어머니가 영국으로 이민 오면서 청소직부터 시작했는데 일터에 쫓아가 말썽 부리며 자랐던 유년 시절을 녹여냈다고 한다. 필리핀 이민 2세대로서 느꼈던 다양한 경험을 녹여낼 차기작 분노 3부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영국 사람을 돌보기 위한 가사, 돌봄 등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된 보상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민자의 아픔이 응축되어 있다.
초반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음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점프 스케어가 주를 이룬다. 필리핀 전통 음악을 넣어 이색적인 공포를 끌어낸다. 필리핀의 유율타악기와 필리핀 사람들의 육성을 딴 함성, 노이즈를 사용했다. 특히 그레이스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내는 게 갑갑하고 장난 좋아하는 개구쟁이다. 엄마 몰래 커피에 소스를 타고 케첩에 잼을 넣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들키지 말아야 하는 조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대담한 행동으로 이어져 숨 막히게 만든다.
주 무대인 본격적인 저택이 등장하면 밀실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로 전환된다. 침실, 주방, 응접실, 계단 등 심리적인 불안함이 일상에서 벌어진다. 이는 조이뿐만 아니라 캐서린, 개릿조차 비밀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인데. 감독은 영리하게 관객을 탐정으로 설정해 저택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추리력까지 발산하도록 돕는다. 이후 저택의 비밀이 밝혀지며 가족 드라마의 모양새를 띈다. 날카로운 인종 차별과 풍자적 시선은 <겟 아웃>, 고용주의 집에 숨어 사는 노동자의 실체는 <기생충>이 떠올라 씁쓸하면서도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