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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16. 2024

<로봇 드림> 102분 동안 대사 없는데 흐르는 찐눈물


<로봇 드림>은 ‘사라 바론’의 동명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다.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실사 영화 연출하다가 첫 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 제76회 칸영화제를 통해 처음 선보인 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까지 선정되었다.      


최대한 원작의 작화를 살리고 본인이 뉴욕에서 살았던 10년의 경험을 갈아 넣어 완성했다. 따뜻한 표정과 귀여운 작화는 뭉클한 위로를 건넨다.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해 아날로그적인 노스탤지어를 선사한다. 그래서 저 멀리 보이는 쌍둥이 빌딩이 아프지만 반갑다.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듣고 <오즈의 마법사>를 킴스 비디오에서 빌려 보는 장면도 아련하다. 잊고 지냈던 마음속 누군가를 소환하는 시간이 되어준다.     


반려 로봇 못 는 뉴욕 개     

뉴욕에 혼자 외롭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도그는 우연히 TV를 보다가 반려 로봇을 주문하게 된다. 이케아 가구를 혼자 조립하듯 어렵지 않았다. 설명서대로 꼼꼼히 따라 한 결과 나만의 로봇을 완성했고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함께 산책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진도 찍으며 추억 쌓기에 바쁜 나날들. 로봇이 없었을 때는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깊게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해수욕을 즐기며 행복한 한때를 보내다 청천벽력 같은 이별을 맞는다. 신나게 바다에서 놀다 나와 달콤한 낮잠에 빠졌는데 로봇의 몸은 작동을 멈추어버렸다. 안간힘을 썼지만 데려가지 못한 도그는 시간에 쫓겨 로봇을 두고 와야만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집에 홀로 돌아간 도그는 그날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아침 해가 밝자마자 해수욕장으로 부리나케 뛰어갔지만 여름 시즌이 끝나 폐장한 상태였다. 도그와 로봇은 1년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꿈속에서나 짧게 재회하며 내내 애달파한다.     


 없이도 느껴지는 진한 감정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CM송이 문득 떠오른다. 온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원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September’(1978)가 중요 OST로 등장해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워낙 오래 사랑받은 음악이면서도 한국에는 광고에도 삽입되어 더욱 친근한 그 노래다. 영화에서는 개와 로봇이 센트럴 파크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춤추는 장면부터 시작해 다양한 변주로 등장한다. 9월이나 가을을 배경으로 한 가사지만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영화 속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얼마 전 봤던 <나의 문어 선생님>도 생각났다. 슬럼프로 일에 지친 다큐멘터리 감독이 오랜 영감의 장소였던 바다에 들어갔다가 유연히 문어를 만나 교감과 우정을 나누는 영화다. 심지어 이 영화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과 문어라는 종을 뛰어넘고, 바다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1년 동안 매일 서로를 탐색하고 관찰한다.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 속 결말이 아니라, 의아하면서도 아름답다. 도그와 로봇이 재회하는 해피엔딩보다 현실적인 결말이 주제를 극대화한다. 동화에서는 결혼이 해피엔딩을 뜻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해석이다. 한 사람만 기다리며 슬픔으로 평생을 보내지도 않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히게 마련인 거다.      


이별은 해본 사람이라면 반복하고 싶지 않을 감정이지만 때로는 약이 된다. 삶의 깊이를 더해 줄 성숙한 사랑과 우정, 끈끈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다시 꺼내 보기 힘든 아픈 상처, 떼어내도 계속 자라는 굳은살 같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근육을 키워가는 운동이자, 다른 관계의 밑거름이 되어 주는 연료다.     


무성영화를 보는 듯 대사 없는 넌버벌(non-verbal) 애니메이션이 벅찬 감정을 선사한다. 눈빛, 표정, 행동 등 비언어가 미치는 마음의 소리는 신기하게도 상대방을 움직인다.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언어. 어쩌면 말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놓친 건 아닐까 곱씹어 봤다. 102분짜리 무언의 애니메이션, 동물과 로봇을 의인화한 작품이 긴 여운이 남기는 이유는 명확하고 단순했다. 수려한 말로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의 마음도 확인할 수 있지만,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역효과를 부르는 게 말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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