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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17. 2024

<댓글부대> 대기업 저격 기사 써 기레기가 된 기자


<댓글부대>는 기자 출신인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30년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사고를 각색해 녹여낸 영화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든 안국진 감독의 9년 만의 신작이다. 감독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긴 시간 동안 취재하며 만났던 사람들과 영화 속 상황이 실화에 가깝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며 독특한 연출 의도를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업영화답지 않게 흘러가는 구성과 편집이 이색적이란 소리다. 음모론과 의식, 조작이 가득한 인터넷 세상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시도 같다. 명확한 답을 제기하기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다. 무엇을 믿고 걸러야 할지, 불법인지 합법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      


명확하지 않은 존재에 다가가기 위한 몸부림,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허우적거리는 상황이 러닝타임 동안 지속된다. 서늘한 미스터리를 좇아 공허한 인터넷을 떠도는 혼란스러움이 현실도 이어지고 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오보로 정직당한 기자의 극한 몸부림     

억울하다는 중소기업 사장의 제보를 믿고 작성한 대기업 비리 기사가 오보로 판명돼 정직당한 기자 임상진(손석구).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이 일의 배후가 있는 건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6개월만 쉬라는 회사는 1년이 지나도록 복직을 미뤄 사실상 업계 퇴출이란 말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익명의 작가가 제보를 빌미로 접근해 왔다. 오보를 바로잡고 싶지 않겠냐고 유혹했다. 진실을 알려줄 테니 내 이야기를 기사로 써달라는 요구였다.      


제보자가 소속된 팀알렙은 스토리텔러 찻캇탓(김동휘), 리더 찡킹(김성철), 키보드워리어 팹텍(홍경)으로 구성된 삼인조 여론조작팀이다.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사건이 자기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우리의 손가락에서 놀아났음을 믿으라는 소리였다. 마치 영웅담을 늘어놓듯 성취감에 고취돼 범죄 방법을 술술 털어놨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서서히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짜 댓글부대였던 걸까.     


현상은 있는데 실체는 없는 댓글부대     

영화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질문으로 시작한다. 최초 촛불집회의 촛불은 누가 먼저 들었던 걸까. 무형의 무언가를 쫓는 임상진의 절박한 심정과 겹친다. 임상진은 정의감에 불타 진실을 밝히려는 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 게 아니다. 오로지 본인의 명예 회복이 목적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다는 심정으로 취재를 감행했다.     


그래서일까. ‘100% 진실보다 진실이 섞인 거짓이 좀 더 진실에 가깝다’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인터넷의 보편화로 누구나 의견을 표출하며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며 국민의 알 권리와 만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요즘은 AI와 딥페이크까지 더해져 진실 파악은 더욱 힘들어졌다. 진실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고, 실체 없는 현상만 포착된 상황이다.   

   

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선     

임상진과 팀알렙은 상반된 방 분위기를 통해 의도를 뚜렷이 드러낸다. 서류더미에 갇힌 듯한 임상진의 어두운 방부터 빌딩 숲에 포위된 언론사의 사무실까지 건조하고 답답한 임상진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반면, 팁알렙의 거주지는 화려한 대관람차가 가까운 바다 근처로 보인다. 들떠 있는 휴양지의 분위기가 위험한 일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진행할 수 있는 판타지 세계 같다.


마치 게임의 아바타가 된 듯 우월감에 취해 범죄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극도로 화려하고 몽환적인 네온사인, 컴퓨터와 주변 기기의 밝은 조명은 그들의 욕망과 망상을 그대로 상징하는 메타포다.     


<댓글부대>를 보면서 <특종: 량첸살인기>의 허 기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진실 없는 씁쓸한 현실을 맞이하는 부분이 닮았다. 증명되지 않은 우연한 제보가 불씨가 되어 하루아침에 특종 기자로 승진했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달랐다. 정정할 타이밍을 놓쳐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는 상황이 풍자적으로 묘사되는 영화다.      


결국 모든 혼란을 종결하고 진실을 밝히려 국장을 찾았으나 냉소적인 답은 듣고 현실을 자각한다. ‘뉴스란 보는 사람이 진짜라고 믿으면 진짜가 되는 거다’라며 진실을 덮어 버리고야 만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그것이 사실이 되는 걸까. 기자의 사명감과 인터넷의 익명성, 진실과 거짓이 부표처럼 떠다니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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