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의 토크쇼>는 시청률에 목숨 건 심야 토크쇼 진행자가 핼러윈을 맞아 특집 방송 중 벌어지는 기묘한 상황을 그렸다. 방송 심의 규정 따위는 무시한 채 일단 틀고 보자는 과열된 시청률 경쟁의 폐단이다. 영상은 그대로 전파를 타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렸고 그날의 녹화 영상이 47년 만에 발견되었다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영화다. 전 세계적 유행인 레트로 열풍이 공포 장르까지 저변을 넓힌 사례다.
생방송 중 험한 것을 소환한 진행자
잘나가던 심야 토크쇼 진행자 잭(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은 최근 부진한 성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급기야 시한부 아내와 러브스토리까지 공개하며 전 국민적 순정남 이미지까지 얻게 되었지만 시청률은 시원치 않았다. 밑바닥까지 고갈된 소재로 고민에 빠져 있던 중 핼러윈 전날 기막힌 심야방송 아이템으로 재기를 꿈꾸게 된다.
1부에서는 기적의 사나이라 불리는 영매 크리스투(페이샬 바찌)와 초자연 현상의 실체를 밝히는 마술사 출신 회의론자 카마이클(이안 블리스)을 초대해 팽팽한 대립구도로 만든다. 거짓이냐 진짜냐 갑론을박 싸움을 붙여 흥분된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2부에서는 사탄교회 집단자살에서 유일한 생존 소녀 릴리(잉그리트 토렐리)가 악마에게 빙의되는 과정을 다룬다. 릴리의 후견인이자 초심리학자 준(로라 고든)과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를 보여줄 계획이다. 준 박자는 릴리를 보살피고 연구한 기록을 《악마와의 대화》에 저술한 바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토크쇼는 음산한 공기를 타고 절정에 이르게 된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괴상한 일들이 벌어져 대혼돈에 휩싸인다. 과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불러내지 말라야 할 것은 카메라 앞에 세웠던 게 화근일까? 비밀리에 붙여졌던 실제 상황이 47년 만에 밝혀진다.
시청률 과열이 부른 생방송 대참사
<악마와의 토크쇼>의 배경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인기 있었던 1977년이다. 비밀 집단, 심령사, 퇴마사, 점쟁이 등이 난무하던 오컬트 부흥기였던 실화에 장르적 재미를 섞었다. 70년대 미국 토크쇼 형식과 말투 분위기를 완벽히 재현했다. 한정된 세트장 안에서 제안된 시간 동안의 생방송이 주는 쫄깃함이 살아있다. 대놓고 저지르는 B급 스타일과 유머, 저예산 영화의 한계점을 장점으로 끌어올리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관객을 생방송 토크쇼의 방청객으로 초청하는 기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영화 속 푸티지 영상도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고증에 진심을 담았다. 불편하고 이상한 환경을 점진적으로 쌓아가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끓어넘쳐 폭발해 버리는 진가를 발휘한다.
방송, 현실, 망상의 화면 비율을 달리하여 직조한 기이한 무드가 러닝타임 내내 지속된다. 올빼미 쇼가 방송되는 화면은 컬러의 브라운관 화면 비율이며,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카메라가 꺼진 후 광고가 나가는 동안 출연진과 제작진의 분주한 모습은 흑백으로 촬영해 현장감을 더한다. 후반부 잭이 보는 환각 장면은 컬러 와일드 스크린으로 담아 생생함을 강조했다.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영화
호주의 형제 감독 ‘캐머런 &콜린 케언즈’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1970년대 인기 토크쇼에서 영매 ‘도리스 스톡스’와 마술사 ‘유리겔라’가 생방송 도중 뛰쳐나가 버린 사고를 모티브로 한다. 유년 시절 보고자란 ‘돈 레인 쇼’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TV 산업의 성공을 위해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불안을 담았다고 밝혔다.
초능력을 입증하면 10만 달러는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던 제임스 랜디와 <컨저링>으로도 만들어진 영매사 워랜 부부,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유리겔라도 대사로 소환된다. 실제인지 허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 재미를 더한다.
레퍼런스 삼은 영화의 장점만 차용해 녹여내 풍자극을 완성했다. 아이에게 빙의 된 사탄의 공포는 <엑소시스트>, <오멘> 시청률에 목숨 건 방송국의 상황은 <네트워크>, 더 자극적인 영상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점은 <비디오드롬>, 진행자와 게스트, 방청객으로 꾸리는 토크쇼 형식은 <코미디의 왕>이 떠올라 많이 알면 알수록 달리 보인다.
토크쇼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출연진, 스태프 모두 진짜가 아니라고 안심할 때쯤, 튀어나오는 도발 상황에 공포감은 배가 된다. 폭언이 난무하고, 사람이 다치고, 귀신에 빙의하고, 심지어 죽어나가더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도파민이 최절정에 달하는 때 중간광고를 내보내는 계산적인 행동까지 철두철미하다.
그래서 현재 대중매체의 시청률 광기는 사라졌을까? 씁쓸하게도 말초적인 것만 좇아 시청률을 올리려는 과열된 싸움은 여전하다. 이는 SNS 인플루언서, BJ나 유튜버 등 방송국이 아닌 개인 매체로 옮겨졌다. 조회수와 구독자 올리기에 급급한 형태로 변질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시청할 수 있고 후원도 가능한 세상의 도래는 곱씹어 볼수록 섬뜩함을 안긴다.
한편,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은 70년대 흔한 토크쇼 사회자의 말투와 스타일을 완벽 재현했다. 자상한 남편 이미지를 두른 겉과 속이 다는 속물 ‘잭’으로 변신해 중심에서 이끈다. 독특한 마스크로 다양한 영화에서 신 스틸러로 활약하기도 한 그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폴카도트맨을 연기하며 오랜 DC팬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듄>, <오펜하이머> 등 세계적인 거장의 러브콜을 받는 배우로 성장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 소화력으로 한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주목할 만한 배우다. 그가 주인공으로 분한 <악마와의 토크쇼>는 작년 부천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 <파묘>로 인한 오컬트 장르의 대중화가 저변에 깔린 상황에서 한국 관객의 까다로운 안목에 스며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