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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an 08. 2019

<시계태엽 오렌지> 롯데시네마 X 스탠리큐브릭 기획전

'스탠리 큐브릭'의 가장 문제적인 작품

© 시계태엽 오렌지, 스탠리 큐브릭, 1971, A Clockwork Orange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롯데시네마 X 스탠리 큐브릭 기획전에서 챙겨본 <시계태엽 오렌지>는 1962년 '앤서니 버지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들이 그렇듯  시대를 앞서가는 탓에 당시 원작자들은  영화화에 탐탁지 않았는데요. 앤서니 버지스 뿐만 아니라 《샤이닝》의 스티븐 킹도 영화<샤이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 자신만의 해석과 완벽한 미장센을 추구하는 탓에 원하는 느낌이 올 때까지 배우들을 혹사시켜 완벽에 가까운 완벽을 구현하는 고집 때문일 테지요.  이로써  '스탠리 큐브릭'이란 이름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독창성을 인정받는 천재 감독이자 세계적인 거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스타일과 과감함이 느껴집니다.





시계태엽 오렌지가 뜻하는 것은?


© <시계태엽 오렌지>의 파격적인 포스터



소설과 영화는 기본적 컨셉은 같으나 결말이 다른데요. 제목 '시계태엽 오렌지'는 작가 또한 매번 말을 바꾸며 혼돈에 빠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만.  외부의 힘에 의해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인간(오렌지)이 기계장치에 의해 변하는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기계가 달린 오렌지처럼 자유의지가 빼앗긴 알렉스를 칭하는 것이기도 하죠.


또 다른 가설은 런던 사람들이 쓰는 숙어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괴상한(as queer sa a clockwork orange)'에서 따온 말로 알렉스 일당을 지칭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만)




© 불한당들은 섞인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미치광이가 된다



영화는 근미래, 코로바 밀크바에서 여성의 자체 모습 기계에서 짜낸 우유를 먹는 알렉스 4인방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십 대(영화 속 17세, 실제 배우인 말콤 맥도웰은 당시 27세)인 알렉스 일당은 정신이 번쩍 들고 폭력 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일종의 마약계) 우유를 마시며 광란의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데요. 강간, 폭력, 무단 주거침입, 라이벌 갱들과의 한 판, 차량 절도 등 각종 범죄를 벌이지만,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밀크바에서 먹은 우유의 취기로  두랭고( Durango) 95를 훔쳐 광란의 질주를 하던 중 작가 부부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알렉스는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겁탈하는 악랄함을 보입니다. 그 후 작가는 반신불수가 되고, 아내는 죽고 말죠. 작가는 이 경험을 책으로 쓰고 있었고 제목은 《시계태엽 오렌지》였습니다.


© 'Singing in the rain' 이 이렇게 무서운 노래였나?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제곡이기도 한  'Singing in the rain'을 사실 아무 노래나 불러 보라는 큐브릭의 주문에 에드리브로 불렀다고 합니다. 희대의 악인 알렉스가 부르자,  아름다운 사랑 노래가 괴기스럽고 섬뜩하게 다가오는데요. 이 노래는 후반부 알렉스가 작가의 집에 찾아올 때 목욕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흥얼 거리게 됩니다.


한 편, 알렉스의 권력에 반기를 든 일원은 알렉스를 함정에 빠트리고 도망치게 되는데요.  고양이를 기르던 여성을 살해하게 되면서 14년 형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로부터 2년을 버틴 알렉스는 교도소 갱생 프로젝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원하게 되고, 2주간 실험에 참여하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생각에  실험을 버티기로 합니다.



© 눈을 감을 수도 돌릴 수도 없는 고문 같은 상황은 자유의지를 박탈한다,이는 또 폭력을 치료한다는 정당성의  또 다른 폭력이다



국가는 '루도비코'라는 범죄 교화 프로그램을 실험 중이었습니다.  구토 유발 약물을  투여한 후 구속복을 입히고, 기계 장치를 머리에 달고,  눈을 돌리거나 감지 못하도록 고정시켜 특정 영상을 봐야 하는 고문과도 같은 실험입이다. 영상의 내용은  폭력, 강간, 살인, 나치 선전 등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알렉스는 차츰 영상을 볼 때마다 구토가 치밀어 올랐고,  나치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베토벤 교향곡 no.9에 대한 거부반응까지 더해져 혼란스러워집니다.



© 악당은 베토벤을 즐겨 듣는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



사실 알렉스는 무자비한 사이코패스지만 베토벤을 우상시하는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었죠. 그중 교향곡 no.9를 좋아했는데, 이제 그 음악을 듣기만 해도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는 알렉스를 통해 범죄자 교화 프로젝트에 성공했다고 자축하며,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줍니다.  



© 알렉스는 감방을 나왔지만 교화되었다고 하지만, 폭력은 진행 중. 함께 나쁜 짓을 하던 친구들은 경찰이 되어 폭력을 대물림한다




하지만 집에는 이미 자신의 방은 없고 하숙생이 아들 행세를 하며 들어와 있었습니다. 부모조차 알렉스를 거부한 상태. 혼자 살아가겠다며 집을 나온 알렉스는 초반부 술주정하는 노인(알렉스 패거리가 노인을 구타했음)을 다시 만나고 그로 인해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마침 경찰이 달려와 도와주지만, 알렉스와 한때 어울리던 패거리였고 역시나 그들의 손에 이끌려 구타와 물고문을 당해 만신창이가 됩니다.



알렉스는 길을 헤매다 정신없이 당도한 집에 도움을 청하는데요. 이 집은 패거리와 범죄를 저지르던 작가의 집이었고, 작가의 복수에 자살 충동을 느끼며 창문을 뛰어내리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습니다.



© 마치 아기 새가 모이를 받아먹는 듯 알렉스의 행동은 가관이다



이후 여론은 정부의 무리한 실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판하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내  내무부 장관이 찾아와  여론을 바꿀 열쇠라며 정중히 사과합니다. 알렉스는 역루도비코 요법을 받아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죠. 그 후 치료가 성공적인지 반응을 살피기 위해 내무부 장관은 거대한 스피커로 베토벤 교향곡 no.9을 틀어 반응을 살피지만,  구토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말끔히 치료된 듯 보입니다. 알렉스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성행위 장면을 상상하면서 이렇게 외치죠.


"나는 완전히 치료되었어!"




인간의 선(善)은 내면의 선택에 의한 걸까?


©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와 알렉스가 받은 루도비코는 닮았다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2017&cid=59039&categoryId=59044



'파블로프의 개'  조건반사의 일종인 교화프로그램은 각종 범죄에 도덕적 관념이 생겨 범죄를 저지를 수 없을 거란 검증되지 않은 실험입니다. 마치 치료된 듯 보이는 알렉스는 폭력성향과 성충동을 느낄 때마다 구토가 밀려드는 고난을 겪습니다. 게다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들을 때도 같은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는데요. 이는 반인륜적이며, 비이성적으로 인간을 대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입니다.



치료는 알렉스의 몸을 교도소에서 빼내주었지만, 정신은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구속을 갖게 된 것이죠. 이는 과연 성범죄자들에게 가하는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율을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영화는 오히려 질문을 던집니다. 범죄율만 줄일 수 있다면 동기나 의도, 인권은 상관없는가? 육체적 고통이 두려워 선함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과연 그것은 진정한 선함일까? 범죄자가 죗값을 치렀지만  피해자의 기억은 그대로라면 죄는 누구에게 용서받은 걸까?  눈에는 눈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은 과연 괜찮을까? 악(惡)은 교화가 가능할 것인가?



© 영화는 오히려 보고 난 후 더 의문이 든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은 아리송한 기분과 수많은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입니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고전이 된 이유와도 일맥상통하죠. <시계태엽 오렌지>는 선정적인 성(性) 묘사가 많아 불편하지만 완벽한 미장센과 음악의 활용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요즘 영화의  폭력 장면에서 역설적이게  클래식이 쓰이는 경우가 있죠.  경쾌함, 아름다움, 웅장함은 '스탠리 큐브릭' 스타일에서 차용된 듯 보입니다. 폭력을 미화한다기 보다 세상을 향한 날선 비판, 조롱, 비웃음을 보여주는 미학이라 할 수 있죠. 희대의 악마도 베토벤을 즐겨 듣을 수 있고,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역설. 스탠리 큐브릭이 선사하는  날카로운 현실 비판은 <시계태엽 오렌지>를  문제적 영화로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그  밖에 알아두면 좋을 이모저모

© 자세히 보면 가운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보인다



영화 곳곳에 스탠리 큐브릭이 심어 놓은 이스터에그가 있습니다. 알렉스가 레코드를 사러 간 음반 가계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보입니다. 실험을 받기 전 투여하는 시약은 ' No. 114'인데 이는 '114'는 스탠리 큐브릭의 다른 영화인 <아이즈 와이드 셧>,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도 등장합니다.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원형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장면은 '빈센트 반 고흐'의 <운동하는 죄수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평점: ★★★★★




한 줄 평: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큐브릭만의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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