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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24. 2024

<파편들의 집>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든 슬픈 아이들


<파편들의 집>은 전쟁, 약물 복용으로 부모를 잃거나 가정 폭력, 알코올 중독, 실업 등으로 가정이 해체된 아이들이 모이는 쉼터에 관한 보고서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에 노미네이트되어 화제를 모았다. 전쟁으로 파탄 난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유산이자 미래인 아이들의 돌봄 문제를 조명한다. 장기적인 전쟁의 흉악한 결과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임시 보호소, 일명 쉼터는 최대 9개월까지 있을 수 있지만 이후는 엄격히 떠나야만 한다. 전쟁과 겨울이 길어지면 더욱 붐빈다. 부모가 개선 의지를 보이며 데려가면 좋지만, 입양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면 국영 고아원으로 향한다. 부모로부터 내쳐지고 국가로부터 선택된다.     


조각난 가족은 다시 붙일 수 있을까?     

에바, 사샤, 알리나, 콜랴는 쉼터에 머물고 있다. 때로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만 천진난만한 얼굴로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보일 때면 낯섦이 가득하다. 에바는 알코올 중독인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조급했지만 다행히 할머니의 입양으로 새롭게 가족을 만나 떠났다.      


사샤는 알코올중독으로 엄마가 집을 나가버려 혼자 생활하다 쉼터로 오게 되었다. 쉼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알리나를 만나고 우정과 희망을 보듬는다. 결국 알리나와 사샤는 위탁가정으로 보내져 헤어지지만 함께 놀았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노라고 선언한다. 둘은 피를 나눈 가족 이상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준다.     

콜랴는 두 명의 동생도 함께 와 있다. 거친 말과 행동, 절도 등을 일삼으며 경찰의 주의를 자주 받는 아이다. 사회를 향한 반항심, 어른을 향한 불신이 커졌다. 결국 엄마와 연락이 끊겨 혼자만 국영 고아원에 입소하게 된다.      


패턴을 깨기 위한 각고의 노력그러나..     

동 우크라이나의 어느 보육원을 비추는 카메라는 다양한 이유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소개한다. 진짜 가족과 헤어져 선택된 가족과 살아야 하는 아이들의 삶을 조용히 관찰한다. 사회복지사 마고의 목소리로 차분히 설명하는 내레이션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경험을 빌어 업무보다 더 괴로운 심정을 전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위기 가정의 아이들이 쉼터에 와 보살핌을 받아 자라지만, 부모는 점점 재활 의지를 잃어가며 친권마저 잃는다는 데 있다. 그 아이는 자라 훗날 부모가 되지만 술독에 빠져 자기 아이를 또다시 쉼터로 보낼 수밖에 없다. 벗어나고 싶지만 계속 같은 자리인 거다.     


자기 아이를 보러 온 부모가 된 소녀는 사회복지사에게 ‘저를 기억하냐’는 말을 건넨다. 기가 막힌 대물림이다. 차라리 부모가 된 소녀를 다시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질긴 굴레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특정 쉼터의 직원들은 이 패턴을 깨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나 잔인한 전쟁의 늪은 쉽게 이들을 꺼내주지 않고 삼켜 버린다.      


긴 전쟁과 겨울이 만들어낸 슬픔     

영화는 오랜 전쟁이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아이들의 미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처럼 암울하기만 하다. 좋은 부모를 만나 입양 가는 것도 대안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못하고 곪는다. 친구 관계를 우정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는 데 집중되어 있는 불안함이 감돈다.      


쉼터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체조를 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 안에서도 사랑과 우정이 꽃 핀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하며 사춘기를 겪는다. 밝고 건강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은 부모의 이야기만 나오면 참았던 설움과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친척이나 조부모가 데리러 오거나 위탁가정에 맡겨지는 정도가 잘 된 사례다. 대부분 쉼터에서 지내다가 고아원으로 들어가고 성인이 되면 준비 없이 사회에 나와 가난, 폭력, 중독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늪에 빠진다.     


한창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트라우마가 되어 내내 따라다닌다. 일찍 철들어버린 지옥 같은 현실에 놓인 아이들은 진짜 가족을 포기하고야 만다. 집에 가고 싶다고 떼써도 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게 더 가슴 아픈 일이다.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는 아이는 극도의 두려움 감추는 게 더 익숙하다.     


다큐멘터리 장르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극영화라 느낄 만큼 생생하다. 쉼터 밖을 떠나지 않는 카메라는 철저히 한 장소의 아이들만 담는다. 철이 일찍 들어 어른스러운 아이, 사고 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 짧은 시간 동안 소울메이트를 만든 아이 등등이다. 표정과 몸짓, 극적인 사건까지 극영화의 방식을 취한다. 카메라가 일상이 될 때까지 함께 지내며 자연스러웠을 제작진의 노고가 보이는 듯하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한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고문당하듯 힘들었다. 돌고 도는 악순환이 좀처럼 개설될 기미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잔혹동화 한 편을 보는 듯 슬프고 아픈 사연이 지구 어딘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유해야 할 이유가 된다. 시몬 레렝 빌몽 감독은 그들의 목소리를 증폭시켜 세상에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라며 영화가 해야 할 일에 관한 심도 있는 책임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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