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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29. 2024

<파일럿>On/ Off 가 다른 위장취업기


얼어붙은 극장가에 훈풍이 예고된다. <파일럿>은 5년 전 <엑시트>에 이은 조정석의 원맨쇼 같은 영화다. <엑시트>에서 윤아와의 케미를 맞췄다면 <파일럿>에서는 생계를 위한 1인 2역을 선보인다. 뭘 맡겨도 찰떡같이 해내는 배우가 조정석이란 배우의 내공이지 않을까 싶다.     


<가장 보통의 연애>로 솔직한 감정과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였던 김한결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평소 조정석을 캐스팅 0순위로 여겼던 바람이 현실이 되어, 자신을 성덕이라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현장과 시너지를 고백하기도 했다.      


실직한 가장의 극단적 선택     

공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출신이자 최고의 비행 실력을 갖춘 스타 파일럿 정우(조정석)는 폭발적인 인기로 TV 출연, 광고 등' 커리어 정점에 올랐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고야 만다. 회식 자리에서 부적절한 발언(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일파만파 커져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다.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퇴사, 이혼, 빚잔치의 악재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정우는 동생 정미(한선화)의 신분을 빌려 여성 기장을 뽑는 회사에 재취업하기로 마음먹는다.     


서류는 프리 패스, 아슬아슬하게 면접까지 겨우 통과해 드디어 합격하지만. 취업 첫날부터 자연스레 남성의 습관이 튀어나오며 들킬 상황을 여러 번 맞는다. 그때마다 재치 있게 모면하며 정우와 정미의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입사 동기였던 슬기(이주명)와 친한 언니 동생 사이로 발전해 든든한 관계로 차츰 적응해 나간다. 정우의 후배이자 정미의 선배인 얄미운 현석(신승호)의 은근한 플러팅까지 받아 일이 커지지만. 일단은 완벽한 항공사의 에이스로 거듭나 취업 성공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는 법. 그동안 잘 버텨왔건만 이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난기류가 찾아온다. 과연 정우라서 안 되었던 일은 정미로서 극복하며 순항할 수 있을까. 은밀한 이중생활은 곧 끝을 보이고야 만다.     


조정석의 원맨쇼, 웃음 폭탄 예고     

조정석의 여장남자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선보였던 만큼 기대 이상이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유방암에 걸 남성이라 여성 속옷을 착용하는 설정이기도 했다. 뮤지컬 <헤드윅>에서 보여준 드래그 퀸의 외모와 연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버전이 <파일럿>의 정미다.      


정우가 취업을 위해 정미가 되었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연기할 때의 외모와 목소리, 제스처를 본인에게 맞게 세팅했다. 평소 목소리에서 하이 음역을 찾아 정미의 다소곳한 목소리에 덧입혔고, 중단발의 웨이브 헤어스타일,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힐, 쿨톤 화장법을 연구하며 희화화하지 않고 아름다워진다.     


2004년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으로 데뷔해 공연으로 다져온 무대 경험은 어떤 옷을 입혀놔도 조정석의 맞춤옷처럼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남성인 정우가 여성인 정미를 연기하는 설정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큰 관건인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여성으로 변신하기 위해 7kg 감량과 혹독한 관리로 세심하게 다가갔다.   

   

조정석을 중심에 두고 한선화와는 찐남매 케미, 이주명과 찐친 케미, 신승호와 미묘한 설렘을 나눈다. 한선화와 실제 남매 같은 무드로 초반 몰입을 확실하게 휘어잡는다. 정우에서 정미가 될 수 있는 신분을 빌려주는 결정적인 도우미다.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의 키즈 크리에이터 경험을 살려 극 중 ASMR 뷰티 크리에이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주명과는 친한 언니 동생을 넘어서는 우정을 나누며 정미가 된 정우의 혼란을 가중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물심양면으로 서로를 돕지만 비밀이 밝혀지면서 서로의 삶에 큰 고비를 맞는 중요 캐릭터다. 신승호는 정우의 공군사관학교 후배였지만 정미의 항공사 선배가 되는 인물이다. 정미의 친절과 관심을 착각해 벌어지는 상황이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다.      


열심히 산 당신에게 위로를..     

열심히 사는데 인생이 왜 이리도 안 풀릴까. 뭐든 진심이지만 잘 안 풀리는 사람이 있고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최근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도 20대 취준생 이미진과 50대 시니어 인턴 이정은은 밤낮없이 일하고 싶어서 안달이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들이 내 모습 같아서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영화는 여름에 어울리는 코미디를 중심에 두고 가족, 성장, 우정 등 묵직한 감동도 함께한다. 정우는 스스로 집안의 가장으로 열심히 살았고, 결혼 후에도 가장의 의무를 다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져 모든 것을 잃는다.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여성이 되기로 결심하며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되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웃고 울다 보면 정우의 간절한 상황에 이입하게 된다. 사느라 바빠 미처 돌보지 못한 본인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파일럿>의 한정우도 집안의 가장, 장남, 파일럿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밑바닥을 보고야 만다. 그렇게 재취업의 문을 두드릴 수 있던 신의 한 수는 뜻밖에도 여장남자였다. 절박함은 사람을 무엇이라도 하도록 독려하고 절실함은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들여 움직이게 한다.     


한편, 텐트폴 영화, 여름 성수기라는 단어가 몇 년 사이 달라진 상황에서 무겁지 않게 웃고 떠들며 감동까지 받을 수 있는 가족영화로 추천한다. 이찬원의 팬클럽 '찬스' 멤버인 정우의 어머니 안자 역의 오민애와 예능 <유퀴즈>를 캐릭터화 한 유재석과 조세호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쿠키 영상에 등장하는 강하늘까지 웃음을 똘똘 뭉친 웃수저의 등장이 기분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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