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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Sep 02. 2024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내향인 파워극복법


반복되는 일상, 무료한 하루, 몇 안 되는 직원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가는 평범한 사무실에 출근한 프랜(데이지 리들리)은 때때로 죽음을 떠올린다. 우울증이거나 고통을 자극 삼는 즐거움이 아니다.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 호기심이다. 그저 현실을 떠나 죽음을 떠올리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게 좋다. 고독을 사랑하고 외로움을 즐긴다. 동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업무를 보는 게 편하다.      


전형적인 내향인의 기질을 타고난 프랜은 타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걸 아는 듯 동료들은 프랜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고 인정한다. 잘 움직이지 않는다. 책걸상과 한 몸이다. 말주변도 없고 대화에 반응도 잘 해주지 않는다. 무표정이나 느릿하고 짧게 답할 뿐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간결한 대답이다. 퇴임하는 동료를 축하하는 파티에도 한마디 거들지 아니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자신의 몫(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자리로 오는 소심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그래서 억지로 행사에 참여하라거나, 함께 커피를 마시자고 하거나 식사를 하자고 강요하지 않는다.    

  

지루해 보이는 업무, 조용한 세상이 너무 좋은 프랜의 일생에 갑자기 큰일이 일어난다. 바로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가 새로운 후 자꾸 그가 신경 쓰이는 거다. 로버트는 회사 생활의 적응과 어려움을 비품 관리자인 프랜에게 토로한다. 사내 메신저로 비품 신청 방법을 묻고 답해주다 짧은 농담이 오고 간다. 둘은 온라인에서 작은 비밀을 공유하다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간다. 티타임, 영화관람, 가벼운 식사, 데이트, 집들이, 파티를 이어가며 관계를 넓혀가지만 그럴수록 프랜은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생겨난다.     


자기 영역으로 넘어오고 싶어 문을 두드리는 로버트를 계속 되돌려보내던 프랜은 본격적인 방문에 스스로 문을 잠가 버리고야 만다. 상처받은 로버트는 프랜을 경계하고 밀어낸다. 자기감정조차 해석하기 버거워했던 프랜은 주말 내내 마음을 되새기며 결심한다.     


극내향인의 관계 맺기 어려움     

데이지 리들리는 절제된 움직임과 표정으로 심리를 표현하는데 공들였다. 대사도 많이 없는 무미건조함은 퍼석거리는 공기 질감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숲속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상상, 사무실에 출몰한 뱀에 물려 죽는 상상, 부둣가 크레인에 목매는 상상, 캠프파이어 속에 아늑하게 있는 상상 등. 힘들 때마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둘의 관계는 겉으로는 로맨스로 보이지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을 빗댄 상징이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로버트는 시종일관 과거, 관심사, 취미(영화)를 쏟아내며 상대와 연결 고리를 찾는다. 반면 감정 표현에 서툰 프랜은 로버트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법을 잘 모르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본인 업무만 잘하면 되는 일 말고는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린다. 결국 프랜은 로버트의 진심을 할퀴는 말로 상처 준다.      


주말이 지나고 다시 시작된 월요일. 태어나 처음으로 도넛을 한 박스 사 온 프랜. 사무실은 화기애애하다. 다들 해가 서쪽에서 떴냐며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프랜은 로버트를 잠시 불러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혹여나 실망할까 봐 하지 못했던 두려운 마음을 꺼내본다.     


“날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나요”라는 프랜의 말에 “나는 당신을 몰라요”라고 로버트는 답한다. 프랜은 실패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가길 선택한 최선의 방법을 시도한 것이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로버트는 프랜을 포근히 안아준다.      

나만의 세상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친구 만드는 게 뭐가 어렵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해 아름다운 거다. 영화는 타인과 어색함이 크고, 낯선 기류 자체를 피하던 자아가 상호작용을 해나가는 과정을 서서히 보여준다. 데이지 리들리가 주연과 제작에 참여해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빛을 보탰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이가 떠오르지 않는 생기 없이 뚱한 회사원으로 변신했다. 팬데믹에 촬영했던 만큼 누구나 고립과 외로움을 견디던 때를 떠올리며 다양한 관점으로 공감이 가능하다. 화려한 볼거리 거창한 메시지가 없어도 영화가 가진 오롯한 힘을 전달받기 충분하다.     


현실적인 사무실과 생활감이 묻어나는 배우들은 일상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온 듯하다. 자연스러운 영화의 분위기에 일조한다. 사무실-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답답함을 부둣가의 전경, 편안한 분위기의 마을을 인서트로 상쇄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도시는 오리건주의 항구도시 애스 토리아다. 처음에는 재미없다고 느낀 영화가 며칠 동안 계속 생각나면서 점점 더 좋아지는 경험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순히 ‘사랑’이라는 열정적 감정보다는 주변의 온기를 느끼는 아주 작은 ‘관심’이란 변화로 천천히 전달된다.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충분히 기다려 주는 섬세함이 기분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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