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혼란스러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와 샘 윌슨(안소니 마키)의 협력으로 시작한다. 이는 곧 정치적 문제로 커지게 되는데 비브라늄 보다 강력한 아다만티움 샘플이 원인이다.
가치를 평가받을 임무를 성공한 샘 윌슨과 새로운 팔콘(대니 라미레즈),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는 백악관에 초대받아 들떠 있지만.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쏜 이사야의 돌발 행동으로 금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결국 배후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샘 윌슨은 정치적 문제뿐만 아닌 더 큰 문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극도로 혼란스러워진다.
영화는 MCU의 가장 믿음직한 리더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바통을 이어 받을 후임자를 만나는 자리다. 자신의 뒤를 이을 인물로 ‘샘 윌슨’을 앞세웠다. 흑인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이다. 그는 어벤져스에서 ‘팔콘’으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영화만 시청 한 관객은 혼란스러웠을지 모르겠다. 무거운 이름과 방패를 받은 샘 윌슨의 부담과 걱정은 묻어두고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마주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흑역사가 될 뻔했던 샘 윌슨의 고군분투는 시리즈 <팔콘과 윈터 솔져>(2021)에서 자세히 다룬다. 깊은 서사를 알아가고 싶다면 시리즈를 적극 추천한다. 내려놓았던 방패를 다시 들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담겨 있다.
완성형 아닌 성장형 리더의 자질
캡틴 아메리카를 필두로 등장인물은 한 단계 성장한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실패를 딛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다. 샘 윌슨은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가득하다. 헤쳐 나가야 할 정치적 갈등과 도덕적 딜레마가 연신 충돌한다. 한 인간이자 히어로서 맞닥뜨리게 될 정체성 혼란마저도 피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어벤져스의 후광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블립 사태 이후 어벤져스의 경력은 한낱 휴지 조각이 되었다. 부모님의 유산이자 누나의 생계를 책임질 배를 지키기 위해 찾은 은행에서 보기 좋게 대출까지 거절당한다. 지구를 구했지만 가족을 구하는 데 역부족인 씁쓸한 현실과 마주하며 좌절한다.
히어로의 삶을 끝내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던 그의 앞에 제2의 캡틴 아메리카 존 워커(백인 남성)와 슈퍼 솔져 군단(이민 집단)까지 나타나 괴롭힌다. 샘 윌슨과 버키 반즈(윈터 솔져)는 팀을 이루어 문제를 해결하지만 초능력이나 혈청을 맞지 않은 샘 윌슨은 한계에 부딪힌다.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다양한 사회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여기까지가 시리즈 <팔콘과 윈터 솔져>의 이야기다. 샘 윌슨이 2대 캡틴 아메리카에 가까워지는 인상적인 시리즈다. 1대 캡틴 아메리카와 끊임없이 비교된다. 자존감이 바닥날 듯하지만 자신만의 직감, 공감력, 판단력 등을 향상해 시대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어떠한 힘도 빌리지 않고 오직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 선한 영향력으로 방패의 주인이 된다. 굳이 따지자면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다.
그 과정에서 참전 용사의 지위 복권, PTSD로 힘겨워 하는 요원의 진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세 번의 명예 훈장까지 받은 우수 군인의 안타까운 실책 등이 오버랩된다. 현 미국과 전쟁이라는 큰 주제를 아우르는 정치적 서사로 다층적인 캐릭터와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조화롭게 구현했다.
하지만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에서는 각자의 전사가 충분히 소개되지 않아 아쉽다. 그 예로 1950년대 슈퍼 솔져 혈청 실험 대상 중 유일한 생존자 ‘이사야 브래들리’가 중심에 있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활약해 전설적인 영웅이 되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자 영문도 모른 채 30년간 감옥에 수감되어 생체 실험을 당했다. 개인의 과거가 국가에 의해 은폐되어 늘 감시당한다는 트라우마와 싸우는 중이다. 비뚤어진 신념으로 똘똘 뭉쳐 은둔했던 그를 샘 윌슨은 세상 밖으로 불러내 영웅으로 추대하는데 힘쓴다.
2대 팔콘으로 거듭난 ‘호아킨 토레스’가 샘의 오른팔이 되어가는 과정도 심도 있게 다뤄진다. 마치 샘이 스티브 로저스의 지원군이었던 것처럼, 샘의 팔콘 슈트를 물려받아 눈 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로 거듭난다. 때로는 동료이자, 장난꾸러기 동생, 신뢰할 수 있는 멘티로서 자리매김한다. 영화 속에서도 뛰어난 호흡을 맞추며 사건 해결에 일조하는 공을 세우며 신뢰를 쌓아간다.
시리즈와 연관성,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
영화는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등장뿐만 아닌, 잊힌 캐릭터와 교체 배우까지 가세한 진정한 데뷔 무대가 되었다.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대통령 새디우스 로스는 ‘윌리엄 허트’의 사망으로 교체 투입되었고, <인크레더블 헐크>(2008) 이후 17년 만에 메인 빌런으로 등극한 새뮤얼 스턴스(팀 블레이크 넬슨)는 미스터 블루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MCU 역사까지 되짚어 보게 했다.
세대교체가 진행되었지만 MCU는 아직까지 큰 반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기회는 사라져 버리는 걸까. 전성기를 탈환할 화려한 부활에 부침이 있어 보인다. 점점 더 견고햐진 진입장벽은 여전히 넘기 힘든 산이다. 마블이 디즈니에 인수되며 피할 수 없게 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도 여전하다. 치우침 없이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한데 뭉치지 못하고 겉돈다. 한 영화에 다 넣어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초인적인 힘 대신 지략과 언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위기관리 능력은 박수받을 만하다. 나라 간의 외교 분쟁 및 전쟁, 내부 분열과 대립은 현실 속 이야기 같다. 리더가 부재중인 한국 현실과 미국 대통령의 출범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리더의 자질을 시험하는 해석으로 보인다면 괜한 기우일까. 영화를 뚫고 나온 현실은 종종 상상을 앞질러 묘한 감정을 피어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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