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은 2011년 구파도 감독의 대만 영화가 원작이다.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기록하며 배우 ‘가진동’을 청춘의 아이콘으로, ‘천옌시’를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쓴 소설을 영화화한 의미 있는 데뷔작인 셈이다.
2018년 일본에서 <그 시절, 너의 뒤를 쫓았다>로 한차례 리메이크 되었고 한국식으로 두 번째 리메이크 되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의 풋풋함과 청량함, 가슴 아픈 애틋함과 어설픈 아쉬움이 총망라되어 있다. 감정을 숨기는 데만 익숙해서 함부로 드러내지 못한 망설임의 작은 입자까지 다가온다.
원작의 1994년 대만을 2002년 춘천을 옮겨 오며 각색했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여름을 배경으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품었을 엉뚱하고 순수한 생각이 실현되며 겪는 좌충우돌 상황을 장난스럽게 그려냈다. 지나간 시절만이 간직한 향수가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한국적으로 각색되었다.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한 진영과 다현의 케미스트리가 가장 큰 관전 포인트다. 성(性)적 호기심은 충만하지만 반대로 이성에게 다가가는 데 서툰 성장통이 러닝타임 동안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흘러넘친다. 원작의 가진동을 10대에서 20대가 되며 겪는 감정 변화의 진폭과 무게를 견디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청순 비주얼로 스크린을 장악해 새로운 첫사랑으로 불리게 된 다현은 무대 위와는 다른 표정을 꺼내며 성공적인 연기 데뷔를 마쳤다.
유치했지만 순수했던 우리
곧 고3이 될 수능의 압박과 진지함보다는 세상 모든 게 장난인 고2 진우(진영)는 철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던 중 반장이자 모범생 선아(다현)의 앞자리에 앉게 된다. 그날 이후 진우는 선아를 의식하며 조금씩 변해간다. 왜 살아야 할까?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공부와 담쌓은 채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첫사랑이던 선아를 알고부터 세상이 달라졌다. 전혀 관심 없는 척했지만 선아가 원하는 게 뭐든 해주고 싶은 작은 욕망이 피어오른다. 필기 노트 속 글씨가 예쁘다는 핑계로 공부를 시작할 정도, 사랑의 감정은 감기처럼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손님인 것이다.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아 벌받게 된 선아 대신 교과서를 빌려준다거나, 방과 후 홀로 교실에 남아 공부하게 된 선아의 곁을 조심스레 지킨다. 결국,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 고민 있던 진우는 공부를 핑계로 선아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렇게 고백하기까지 수많은 날을 보내며 대학에 진학해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2002년 월드컵 열기 속 청춘
영화는 2000년 초 세기말의 우울함을 마치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은 들뜬 분위기가 가득하다. 특히 모든 국민을 붉은 열정으로 이끌었던 들뜬 분위기는 뜨거운 여름날의 더위와 모든 것을 삼키고 소화하기 바쁜 청춘과 닮아있다. 미니홈피와 폴더폰이 전부인 SNS, 1세대 아이돌의 전설 핑클과 SES, 슬램덩크로 소환되는 소년들의 일상 등 소소한 재미를 찾게 된다. 그뿐일까. <내안의 그놈>에서 호흡을 맞춘 박성웅이 극 중 진우 아빠로 등장하고 실제 아내인 신은정이 엄마로 분해 실제 부부와 가족의 따뜻한 정서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최근 2000년대 초중반 큰 인기를 끈 대만 로맨스 영화의 한국 리메이크 릴레이 마지막 주자다. 대만 로맨스 영화 리메이크 열풍의 막차를 탔다. 지난해 <청설>을 필두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다리 역할을 하며 흥행에도 청신호가 커졌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까지 개봉해 대만 리메이크 삼부작이 완성되었다.
과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도 성공할 수 있을까. 대만 하이틴 장르 특유의 순수함과 청초함의 재현, 레트로 유행이 불러온 아련한 향수가 계속되는 한 인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4K의 선명함보다 약간 흐릿해서 아름다운 필름 카메라 감성, 대만 로맨스 영화 특유의 스타일도 한몫한다.
처음 실패를 경험해 아픈 좌절을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더해진 감성이 매력이며, 그때 그 시절 감각을 현세대와 공유하고 싶은 욕구도 인기를 부추기는 요소다. 매일 24시간 도파민 터지는 영상과 SNS 글에 중독된 일상을 잠시 벗어나 잊고 지낸 감정, 사랑, 꿈을 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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