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결혼했지만 15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 권태기를 맞은 부부, 식어버린 감정에 다시 불붙을 수 있을까. 영화 <첫 번째 키스>는 <괴물>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의 신작이다.
15년 전 남편과 사랑에 빠진 중년 여성
45살 혼자 살고 있는 칸나(마츠 타카코)는 추운 날 저녁 3년 만에 도착한 유명 만두를 요리해 먹을 생각에 들떠 있다. 퇴근 후 부리나케 만두를 구웠지만 깜박한 사이에 타버려 엉망이 되어버린다. 화낼 틈도 없이 직장의 복귀 전화에 야근하러 돌아가게 되었다.
빨리 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터널 공사라니. 중얼거리며 만두 요리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푸념을 늘어놓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15년 전 남편 카케루(마츠무라 호쿠토)과 처음 만난 여름의 호텔로 돌아간 게 아닌가.
남편은 얼마 전 지하철 플랫폼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다 열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혼 서류를 접수하겠다며 집을 나선 후 벌어진 참사에 이혼이 사별이 되었다. 의로운 건 좋은데 남겨질 가족은 생각도 안 한 걸까. 타인은 구했지만 자신과 가족은 내팽개친 남편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15년 전 만난 29세 남편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어딘가 순진무구한 공룡덕후에 숙맥이지 않은가. 산속 호텔에 학회 발표를 위해 온 남편과 처음 만났던 칸나는 묘한 설렘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남편을 두고 바람피우는 기분이 들면 어떠냐 싶다. 무미건조한 삶에 매끈한 윤기를 선사하게 된 다시 시작된 연애를 위해 칸나는 수시로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어쩌면 남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여러 가능성을 시험해 본다. 과거의 말과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하에 있는 힘껏 과거로 되돌아갈 이유를 만들어 낸다.
이상하게 반대가 끌리는 이유
주인공 칸나와 카케루가 서로 지겨워지는 과정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와 비슷하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시간의 유한함이 감정 변화보다 빠를 때 생기는 아픔을 잘 묘사한 영화다. 동거를 시작하며 전혀 다른 생활을 공유한 커플이 삐걱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게 되는 현실이 담겨 있다.
<첫 번째 키스>에서도 모든 일을 함께했지만 점차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중년 부부의 위기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아침 식사 취향부터 확연히 다른 탓에 점차 멀어진다. 카케루는 칸나의 예술적 꿈을 지지하기 위해 공룡 연구를 포기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연인의 행복이 본인 행복보다 우선이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 꿈을 잃어버려 아쉬움이 크다. 겉으로 보기에 잔잔한 안정은 잠시 눈을 가린 작은 손바닥과 같다. 언제라도 손바닥이 치워지면 무너지고 마는 위태로운 부부로 변해있었다.
연애는 상대방의 단점이 애써 무시하는 흔들린 필름 카메라 같고 결혼은 단점만 선명하게 보이는 4K 디지털카메라 같다. 결혼이란 제도 안에 들어온 부부 관계도 정답보다 공감이 필요하다. 모든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든다.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곧 미래가 되는 것처럼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둘은 반대 성격이라 끌렸던 사실을 잊고 지낸지 오래다. 칸나는 15년 전으로 되돌아가며 많은 것을 느낀다. 더운 날 유명 빙수 가게의 긴 줄을 함께 서 있으며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좋은 추억이 된다. 남편의 최애 고생물 할루키게니아에 별 흥미가 없었지만 일방적인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호응해 준다. 부부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온전한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특정 시간의 반복, 거울 치료가 만든 깨달음
영화 속의 시간 여행은 타임 패러독스에 크게 영향받기보다 유연한 재미를 선사한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특정 시기로 회기해 반나절만 무한 반복되고 도쿄 수도고속도로 공사가 끝나면 타임슬립 포털로 닫힌다.
거울 치료와 비슷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상황을 거듭 재현하는 자기 객관화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하는 감정 복기 시간이 되어준다. 내 감정이 앞섰던 지난 시간을 거울처럼 비춰보면서 깨닫게 된다. 네 탓도 내 탓도 포함 부부 사이의 잘잘못은 서로에게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오래 사귀어 시큰둥해진 장기 연애 커플, 결혼 권태기가 온 중년 부부, 누군가와 이별한 사람에게도 환기가 되어 줄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는 않지만 상상해 보며 각자의 소중한 일상이 보듬어 보기 충분하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되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동안 설렘은 희석된다. 거슬리는 습관이 은근한 짜증으로 바뀔 때쯤.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며 맞춰 갈 것인지, 혐오하며 싫어할 것인지는 선택의 영역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12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 봤다. 처음의 두근거림이 편안함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은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칠 때 마다 나타나 진가를 발휘한다. 그때마다 은근히 서로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상대가 나에게 보내준 격려의 에너지는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선사했다.
어쨌거나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복된 일이다. 부부의 연이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 동경하는 스타라도 상관없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 나가는 일, 그건 부끄럽거나 하찮은 게 아닌 나와 인류 모두를 살리는 기분 좋은 에너지다.
[인터뷰] '사카모토 유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