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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에밀리아 페레즈> 과거의 언행이 현재의 나를 덮칠 때

by 장혜령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멕시코 마약왕 후안 마니타스 델 몬테(카를라 소피아 가스콘)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와 두 아들을 두고 변호사 리타(조이 샐다나)와 위험한 거래를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유’를 토대로 세 여성의 ‘욕망’이 분출한다.


이를 독특한 뮤지컬 형식으로 차용한 자유분방함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6년 전 보리스 라종의 소설을 잃다가 수술을 원하는 트랜스젠더 마약상을 끄집어내어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단순한 텍스트 시나리오보다는 오페라 대본에 가깝다고 느껴 캐릭터의 본질을 살릴 수 있는 뮤지컬 프로젝트로 꾸렸다. 그 과정에서 누아르, 멜로드라마, 뮤지컬, 텔레노벨라 등의 장르를 섞어 풍요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뮤지컬과 다르고 경험해 본 적 없는 뮤지컬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심각한 내용이지만 엇박자의 비트와 역동적인 춤사위는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과 닮았다. 기존 뮤지컬 영화의 패턴을 깬다.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음악은 적재적소 타이밍에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몸의 언어로 승화된 안무는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말을 건다. 내레이션의 의인화처 같은 뮤지컬 넘버는 캐릭터 설명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생각을 함축해 앙상블을 만들어간다.

모든 것의 중심인 에밀리아는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에 의해 탄생했다.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라이징의 완벽한 조합이 이끌어낸 사례다. 마치 자전적인 소재를 영화로 만든 것처럼 성전환 후 삶의 변화가 그대로 투영 되어있다.


특히 조이 샐다나의 연기, 노래, 춤 실력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영화 <아바타>의 ‘네이티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가모라’ 등 주로 외계인을 맡아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조이 샐다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인다. 자신을 괴롭혔던 난독증과 불안증을 이겨내고 혼신의 연기를 펼쳐 낸다. 이를 인정받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아 자신을 증명했다.


세 여성의 욕망 분출과 시너지

영화는 타인으로 인해 각자의 변화를 맞이한 세 여성의 모순이 교훈처럼 다가온다. 스페인어로 된 우화 한편을 본 느낌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몰입감을 높인다.


리타는 변호사지만 직업윤리와 급여 사이에서 갈등한다. 도입부에서 말하길, 범죄자의 변호를 맡아 구제해 주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돈이라도 벌 수 있어 겨우 붙어 있었지만 능력조차 무시당하고 강탈당하는 상황이 잦아져 고민에 빠져 있다. 그때 델 몬테는 거액의 돈을 제시하며 자신의 성전환을 조력할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드디어 살아 있음을 느끼며 정의란 무엇인지 깨닫는다.


제시는 남편과 불같은 사랑이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무섭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권력과 힘을 가진 남편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해 불만이었다. 몰래 정부를 두고 지속적으로 만났다. 자신도 모른 채 커진 몰래 한 사랑은 이제 남편도 없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즐겁다. 구속에서 풀려났으니 옛사랑을 소환해 자기 인생을 살려는 게 당연한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옛 남편이자 현 고모 에멜리아는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리고, 둘의 갈등이 고조된다.

에밀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강요된 남성성과 과잉 폭력, 범죄에 노출된 채 살았다. 동성애자 아들 보다 차라리 범죄자가 되길 바랄 정도로 완고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부담의 무게에 짓눌린 삶이랄까. 결혼해 아내와 두 아들을 거느린 가장이자, 갱단의 악명 높은 보스가 되었지만 돌연 모든 것을 내버리고 진짜 삶을 찾아 종적을 감춘다.


성전환 수술에 앞서 의사는 ‘성형수술 말고 생각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본성은 바뀌지 않는 진실이라고 말한다. 몸을 바꾼다고 진짜가 되는 게 아니며, 여자의 몸을 가진 남자의 내면으로 더 괴로워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하나의 몸에 두 욕망이 득실거리니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거다.


이에 에밀리아는 리타의 입을 빌려 말한다. 사회적 인식 즉,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게 변하지만. ‘몸을 바꿔야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니, 일단 몸을 바꾸고 싶다’고 주장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결국 가면을 벗고 에밀리아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델 몬테라서 문제가 생겨난다. 이는 영화의 복선처럼 작용해 결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전환 수술 후 향수병에 시달리다 델 몬테의 고모 에밀리아가 되어 멕시코로 돌아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아이를 극진히 살피며 제2의 인생을 꿈꿨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과거가 카르마로 되돌아온다면..

<에밀리아 페레즈>는 안타깝게도 완성도와는 별개로 외적인 논란이 자칫 몰입을 방해한다. 영화 안팎의 시끄러운 대혼돈이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장르와 일치하는 부분은 흥미롭지만. 도덕, 윤리 관념에서 본다면 선뜻 공감해 주긴 어렵다. 사회적 얼굴, 즉 프레임을 벗기는 일은 쉽지 않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성별을 바꿔서라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 과거는 면죄부를 얻는 걸까. 폭력을 행하던 주체자가 폭력의 구원자가 되는 아이러니다.


프랑스인이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멕시코 역사와 문화를 그저 대상화하기 바빴다는 비판과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언행을 피하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로 반드시 작용하는 인과응보 루틴이 영화의 연장선 같다. 그럼에도 에밀리아는 끝내 성녀가 된다. 온갖 속박을 벗어던지고, 새장을 탈출해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되었고 여성으로 성장해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과거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면서 무너졌다. 필모그래피의 정점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실제 삶과 겹쳐진다. 마치 성별을 바꾼 후 새로운 인생의 반짝임을 잠시나마 누렸던 에밀리아와 평행이론 인생이다. 과거에 무엇을 했건 돌고 돌아 현재의 업보가 되어 자신을 덮쳐버린 결과. 새삼 말과 행동의 무게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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